히가시 혼간지를 밖에서만 보고 니시 혼간지를 찾아 나선 길, 물어물어 가다보니 동상이 보이네요. 다가가보니 신란
일본 문화사에서 만난 이름입니다. 호넨과 신란은 100명의 인물에서 만난 인물이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거의 다
온 모양이다 싶어서 길거리의 일본인에게 물으니 여기는 혼간지 인터내셔널 센타이고 조금 더 가면 니시 혼간지라고
합니다.
니시 혼간지에 왔습니다.
먼저 달려온 아이들이 절 앞에 나란히 서 있어서 우선 한 장 사진을 찍었지요. 몸상태가 갑자기 나빠져서
달래가 고생한 날, 평소하면 질문도 감탄도 많은 아이가 기력이 없어서 마음이 아프더군요. 함께 간 엄마는
얼마나 마음 조렸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그 시간의 안타까움이 떠오를 정도네요.
어느 절이나 오래 된 나무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 나무는 계절의 느낌을 살려주는 기분이라서 가까이 가보게 되더라고요.
니시 혼간지는 사진 촬영이 허용된 공간이라서 내부에서도 이 곳 저 곳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었던 경험은
마침 절안의 젊은 스님에게 말을 걸어보니 대답을 아주 충실하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불교 용어를 자유롭게
구사할 수 없는 제겐 질문자체를 쉽게 하는 일이 관건이었는데 제가 쉽게 물어도 그 쪽에서 알아서 길게 답을
해 준 덕분에 호넨과 신란의 관계, 정토종과 정토진종의 차이등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요.
스님의 얼굴이 깊은 산속에서 수행하는 구도자의 느낌이라기 보다는 막 대학원을 졸업한 신진 학자같다고 할까
아니면 회사원이지만 너무 진지한 느낌이라서 회사생활에는 부적합할 것같은 그런 인상이라고 할까, 자리에 앉아서
차분하게 설명하는 스님을 보면서 차마 사진 한 장 찍자고는 할 수 없었습니다, 일행이 없다면 조금 더 차분하게
이런 저런 의문점을 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드는 때가 바로 이런 상황이지요. 그러나 다른 때는
역시 이렇게 여럿이서 다니는 것이 여행의 맛이기도 하다고 느끼니 사람 마음이란 얼마나 형편따라 움직이는
것인지요!!
아침에 글을 쓰다보니 카메라에서 받은 사진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런데 휴대전화에 찍어놓은 사진은 N드라이브에
넣어두었지만 오랫만이라 갑자기 사용방법을 아무리 해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결국 열어보고도 쓸 수 없어서
결국 글을 쓰다가 어정쩡하게 마무리하고 말았는데 저녁에 학생들에게 도움을 청하니 바로 눈앞에서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아무리 간단해도 내 안에서 재생되지 않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구나, 그럼에도 물어서
다시 배우면 되지 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지요.
이 절에 기증한 봉납에는 확실히 그 사람의 이름을 새겨서 기념하는 것이 확실한 문화, 이것은 니시 혼간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신사나 신궁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우리 일행이외에는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공간에서 편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
이상하게 본능적으로 그림에 끌리는 제겐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거의 못 간 이번 여행에서 그래도 위로가
된 것이 바로 절의 장벽화를 만난 순간들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먼저 나가고 나서 저도 떠나려고 하는 순간, 한 일본인이 들어와서 절을 하네요. 실례가 될까봐
멀리서 한 컷,
니시 혼간지를 보고 있자니 우리 절, 중국 절, 이런 절의 기원인 인도의 절은 어떤가 갑자기 궁금증이 생깁니다.
그래서 여행은 내 안에 있는지도 모르고 잠들어 있던 호기심을 깨우는 역할을 하는지도 몰라요.
아직도 실력이 모자라서 커다란 건축물을 한 눈에 보기 좋게 담는 것은 어렵구나 실감을 하면서 니시 혼간지를
둘러본 사진을 다시 감상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