겐초지를 나오기 전에 물었습니다. 가마쿠라로 가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은가 하고요
그랬더니 밖으로 나가서 계속 걷다보면 멀지 않으니 걸어가라고 하네요. 그래요?
걷다 보니 벽에 써 있는 글씨. 이상하게 글씨라면 무엇이든 관심이 가는 묘한 증상에 가끔은 전생에 공부 못하고
죽은 귀신이 붙은 것인가 하고 웃기도 합니다. 아무튼 읽어보니 아, 도겐, 일본문화사 시간에 본 이름이라 가까이
가서 둘러보게 되었습니다.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은 눈이 그대로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는 것이 아닌 모양입니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거나 읽은 적이 있을 때 기억이 눈을 통해 같은 대상을 다르게 보게 하는 것 아닌가 갑자기 그 시간에
그런 생각을 하던 순간이 떠오르네요. 선종이 수용된 곳이 바로 가마쿠라 막부,그러니 이 곳에 선종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지만 원래 여행 계획에 가마쿠라가 없었던 탓에 준비부실이 아쉽기만 하더라고요.
다시 걷다 보니 토요일 밤 마츠리 행사로 북소리를 들었던 바로 그 신삭라 연결이 되네요.
그 날 못 본 보물관에 들러서 구경을 했지요. 물론 사진은 금지, 나오면서 금지된 곳을 피해서 살짝 카메라를 누르고
이 안에서 일하고 있는 여성들은 일종의 여성 신관인가 아니면 직업으로 일을 하는가 궁금했지만 물어보기엔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그냥 참은 것이 지금은 아쉽게 느껴지네요.
이 곳 말고도 국보를 전시하는 곳이 따로 있다고 하지만 새벽부터 움직여서 그런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니, 그것은 패스하고 근대미술관에 가보는 것이 어떨까 하고 마음을 바꾸었지요.
평일인데도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고, 더구나 전통옷을 제대로 차려 입은 어린 아이가 보여서 신기한
마음에 뒷 모습을 한 장 찍었지요.
토요일에 보려다 놓친 전시, 정신이 확 깨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미술관으로 들어가기 전 곳곳에 배치된 조각을 보는 즐거움을 누렸지요.
회화도 물론 그렇지만 조각이야말로 현장감이 중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바로 그 자리에서 보는 것
배치된 자리와 빛과 그림자까지를 포함하는 것이 바로 조각의 묘미가 아닐까 싶거든요.
미술관옆 동물원인지 동물원옆 미술관인지 정확한 이름은 잊었지만 그런 타이틀이 재미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데
신사옆의 미술관이라, 그것도 고미술관이 아니고 근대 미술관이 함께 한다는 발상이 묘하게 신선하더라고요.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 미리 두루 두루 경험하는 시간도 좋았습니다.
전시중인 화가는 도쿄 출신인데 가마쿠라에서 화가로서 오랜 세월 살아가면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라고 하더라고요
이름은 잊었지만 색이 강렬하고 자신의 작품세계를 하나로 고정하지 않고 계속 변화를 추구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식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소묘로 표현한 것도 눈길을 끌었고 많은 책의 표지 그림을 그린 점, 자신의 그림에 관한
생각을 잡지에 소개한 많은 글들도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도 역시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그의 독특한 블루였습니다.
이브 끌랭의 블루가 눈길을 끌듯이 이 화가의 블루도 묘하게 변주곡을 눈으로 듣는 기분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불루였거든요.
보통은 두 번 정도 돌아보고 나오기 마련인 전시관을 세 번 돌아서 나오는 길, 게시판에 다양한 전시 포스터가 있네요.
이 포스터 덕분에 발견하게 된 전시, 그래서 수요일에 목요일 오전에 고토 미술관을 찾아가게 되었으니 이 곳이
맺어준 인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