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일,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 여행기를 한 자리에 앉아서 제대로 정리하기가 쉽지 않네요.
가마쿠라에 다시 간 날, 여러 곳의 절을 들러서 사진이 한가득입니다.
겐초지라고 읽으려나요? 자신이 없지만 아마 그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상당한 규모의 절이 떡하니 나오는 바람에
이 곳에서 시간을 많이 쓰게 되었답니다.
자주 보면 익숙해진다는 말이 있지요. 일본의 절은 한국의 절과 상당히 분위기가 달라서 처음에는 낯설더니
다양한 절에 가보게 되면서 그 사이의 유사성이 눈에 들어오고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묘하더라고요.
차이를 느끼는 감각과 차별하는 마음은 분명 다르겠지요? 한 나라를 여러 번 다니면서 처음과는 달리 분별하고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고 나니 상당히 자유롭게 되더군요.
같은 공간인데도 어디서 찍는가에 따라 사뭇 분위기가 달라서 여러 장 찍어 본 곳입니다.
서양 건축사를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한 번 보는 것과 다시 보는 것, 혼자서 묵독으로
읽는 것과 여럿이서 함께 모여서 소리내서 읽어가면서 모르는 것 묻고, 도판으로 보고, 영어로 읽은 다음 한글로
비슷한 부분을 보충해서 읽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시야가 확 넓어지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책을 골라서 불교와 불교미술, 절의 건축에 대한 것들을 기본부터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날
함께 합시다 하고 의기투합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것을 상상해보게 되네요.
여러 절을 다니면서 보통의 공간이지만 거기에 단 하나의 나무막대기를 놓음으로써 들어갈 수 없는 공간이
되는 상황을 여러 번 만났지요. 그 때 갑자기 금기란 결국 약속이로구나 머릿속이 환해지는 느낌이더군요.
성소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니 우리가 만들어놓은 규정에 매여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거기에 아우라가 생기고
그것이 오히려 우리를 구속하는 이상한 권위를 갖게 되는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 고행으로 갈비뼈가 드러나는 부처상을 만날 줄이야.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공간에서 기습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참 많은 여행이더라고요.
부처상이라고 쓰고 나니 고행하는 중에는 아직 깨달음의 단계가 아니니 싯타르타라고 써야 하는 것인가 싶네요.
그건 그렇고 위를 올려다보니 천장에 그려진 그림에 눈길이 확 가네요. 일본 미술사에서 만난 그림, 그런데
누구의 그림인지는 생각이 가물가물,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절의 규모가 커서일까요? 여행객으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고 절의 신자로 보이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려니 오늘 본 그리스 건축 도판에서 목조 건축물의 흔적이 남은 곳이라고 해서 유심히
본 것과 이 사진속의 일부가 비슷해보여서 갑자기 궁금증이 솟아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 확인해보고 싶네요.
다음 주 수업에서.
이 곳은 임제종의 절인 모양인데요 임제종, 천태종, 밀교, 이런 말을 읽어도 과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 곳을 찾아오는 신자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절을 고르는 것일까 모르는 것 투성이어서 답답하더라고요. 찾아보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두었습니다.
장미의 이름을 읽을 때도 , 이렇게 거창하게 장식한 절을 볼 때도 생각을 하게 되네요.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전하고자 한 선각자들은 사실 소유나 장식에 관심이 없었을 터인데 그들의 가르침을
받드는 사람들은 존중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겠지만 본말이 전도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홍법대사라, 그렇다면 이 절은 구카이랑 관련있는 곳인가 답답한데 물어도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네요. 모른다는
말뿐.
이 절에서 일반인들이 명상을 하는 시간이 있더군요. 젊은 남녀들이 법당에 모여서 스님의 설법을 들으면서
가부좌 하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서 화요일인데 그렇다면 휴가를 내고 일부러 와서 명상을 하는 사람들인가
싶어서 조용히 그들을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절을 다 둘러보고 나오니 빛으로 인한 그림자가 더 길어진 느낌,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컷 찍고 겐초지와는 이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