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 숙소를 일찍 나섰습니다. 가마쿠라까지 찾아가는 길에서 버릴 시간까지 계산을 하고, 절은 아무래도
일찍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도 들고요. 지하철로 가니 출근하는 사람들, 사람들, 어제는 휴일이라 몰랐는데
오늘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네요.
물어물어 드디어 북가마쿠라에 닿았습니다. 토요일과는 달리 한 번 와 본 길이라서 역안에 설치된 간판을 볼
여유도 생기더라고요. 무엇이든 두 번 세 번 해 볼 여유가 있다면 인생도 마음놓고 실수하면서 돌아갈 수 있으련만
엉뚱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 번의 여행에서 갔던 곳을 다시 가는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서 저도 화요일의 이 하루가 각별한 느낌이었습니다.
처음 목적지를 찾아가는 도중에 만난 피아노 교실의 간판, 이런 간판이라면 배우러 들어가보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오른쪽이 레스토랑인데 개인집에 차린 들어가는 입구가 아름다운 곳이더라고요. 이른 시간이지만 커피 한 잔
마시고 싶은 그런 장소, 그래도 우선은 갈 길이 바빠서 참고...
인기척이 전혀 나지 않는 절이 환한 햇살아래 서 있었습니다. 어제의 태풍이 말끔히 가셔버린 날,
어제의 아사쿠라에서 본 절, 블상과는 달리 정갈하다는 느낌이 드는 곳, 처음 가마쿠라에 와서 아무리 마쯔리를
보아서 좋았다고 하지만 미진한 마음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하루를 잡아서 이 곳에 왔는데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네요.
초록의 향연, 빛의 어울림, 손끝이 야물지 못한 저는 이런 정갈한 장소에 오면 놀랍기도 하고 마음이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묘한 감정에 시달립니다. 제게 결여된 것들이 무엇인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아니 그러니까
이런 장소에서 대신 충분히 즐기면 되지 않나, 스스로를 설득하기도 하고요.
이곳에는 묘지를 상담한다는 팻말, 상담소는 여기라는 표지판도 있더라고요. 한 동네에서 살다가 같은 묘지에
묻힌 사람들, 절은 이런 기능도 할 수 있구나 처음으로 동네 절의 또 다른 역할에 눈뜬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햇빛이 묘지쪽으로 환하고 오히려 사람이 오고 가는 공간이 어둠에 잠겨 있어서 묘하게 대조를 이루는 장면이
확 마음에 와 닿아 카메라를 누르던 순간의 기분이 지금도 떠오릅니다.
인기척이 없어서 절 구경만 하고 돌아나와서 다음 목적지로 갑니다. 토요일에 본 두 절은 패스하고, 걸어가는 길에
저 앞에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그렇다면 이 길이 맞나 싶어서 저도 따라가는 중
길거리에서 만난 글씨, 아직 문을 열기 전이라서 글씨만 한참 바라보았지요. 요즘 글씨의 매력,어떤 것은 뜻도
모르지만 쓴 사람의 기운이 느껴지는 글씨에 매혹되는 저를 주목하게 되네요.
제 앞에서 걷고 있던 노부부, 그들을 뒤따라서 찾아오게 된 절,
앗 소리가 절로 나는 이런 절묘한 순간이 좋습니다.
여행은 둘,혹은 여럿이서 다니면 그 나름의 재미가 있지만 혼자서 다니면 스스로 마음대로 시간을 조절하고
일정을 바꾸기도 하고, 늘리기도 하고, 가끔은 앉아서 책을 보기도 하는 이런 자유가 좋더라고요. 물론 길에 어두운
저는 길 찾느라 소비하는 시간이 있지만 그런 과정에서 만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으니 그러고보면 모든
여행을 그 나름으로 즐기면서 하고 있군요.
복부가 독특한 불상, 아마 이 부분을 만지면서 복을 비는 것일까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지만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물어볼 수가 없네요.
들어가서 누워보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공간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