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가을에는 여러 집이 함께 모여 여행을 했지요. 지하철 갈아타기가 복잡하다고 소문난 도쿄 그러나
지하철 노선도 보고 척척 찾아가는 사람들 덕분에 저는 뒤를 따라다니는 것으로 충분해서 어디가 어딘지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혼자서 나리타 공항에 내리니 보람이가 카톡으로 보내준 지도가 갑자기
미스테리처럼 보입니다. 일단 작년에 사용한 스이카를 다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역무원에게 물어서 (한 번 물어서 해결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러 번 물어야 하는 일이 많아서 묻고 또 묻다보니 여행의 끝에는 선수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 충전을 하고 숙소를 찾아갑니다. 긴장한 상태라서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기도 어렵고 해서 주변을 살피고 옆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도 하다 보니 갈아탈 역이 나오는데 맙소사, 보람이에게 전해줄 음식이
든 무거운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는 상황, 기운을 쓰고 나니 완전 힘이 빠져버리네요. 밖으로 나오니
지도를 제대로 못 읽는 저는 어디로 가야 이 숙소를 찾을 수 있을지 암담합니다. 벤취에 앉아 있는 여성에게 물어보니
지도를 살피고는 따라오라고 합니다. 덕분에 편하게 숙소까지 도착, 문제는 아직 체크인이 되지 않는다는 것 일본의
경우 다 그런지는 모르지만 오후 4시에야 체크인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짐만 맡기고 그 다음 가려고 마음먹은 도쿄역
주변에 대해서 어떻게 가는 것이 빠른지 카운터담당에게 물어서 일단 길을 나섰습니다.
숙소가 도쿄역과 가까우니 첫 날은 미츠비시 이치고 미술관, 그리고 브리지스톤 미술관을 보고 시간이 남으면
주변을 둘러보고 들어오는 것으로 해야지 하고 마음을 먹고 떠난 길, 도쿄역에 내려서 점심을 먹고 미츠비시 이치고
관에 가려고 물어보니 오늘은 전시가 없다고 하네요. 전시가 없다고요?
그렇다면 계획을 수정해서 마루노우치 주변을 보고, 조각공원에도 가보고, 거리를 익힌 다음에 그림을 보러 가는 것으로 하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건축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건축사 수업을 통해서였습니다. 사람이 변하는 것은 아주 작은 계기로도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건축사라는 분야의 책을 일부러 찾아서 읽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건축사 수업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은 일부러 찾아가보고 싶은 건축물도 생기고 한 나라의 국보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고 보고 싶다,
가보고 싶다, 해설이 잘 된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도 하니까요.
도쿄역에는 떠나는 사람, 도착하는 사람, 도착해서 역사를 구경하는 사람, 사람이 아주 많았습니다. 역이란 바로
그런 장소여서 여러 세대의 사람들이 섞여 있고 외국어 소리도 가득하네요. 서로 다른 언어가 충돌하면서도 묘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장소에 한참 서 있었지요.
처음 만나는 장소와 한 번 와 본 곳의 차이는 상당하더라고요. 일단 전혀 낯선 곳이 아니란 안심이 있다고 할까요?
물론 처음 만날 때처럼 완전히 새롭지는 않지만 혼자서 떠난 길에서는 그런 안심하는 마음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금요일이라 브리지스톤 미술관이 저녁 8시까지 하는 날, 그렇다면 조금 여유있게 거리를 다녀도 되겠다 싶어서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구경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벤취만 보면 앉아서 무엇을 읽고 싶어지는 저로서는 경계 발동령, 그렇지 않으면 앉아서 언제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건물 창으로 비치는 나무가 마음에 들어서 일단 건물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잘 키우지 못해서 일까요? 잘 자란 나무를 보면 저절로 마음이 설레는 것은
그 건물안의 구조가 재미있어서 찍게 되었지요.
메이지 유신 이후에 서양화에 매진했던 일본, 도쿄의 곳곳에서 여기가 일본인가 싶게 서양의 흔적을 보게 됩니다.
여기가 어디지 하고 살펴보니 이 길을 건너면 황궁의 바깥 정원이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렇다면 조각공원도 좋지만
낯선 곳인 저 곳으로 가보자 마음을 먹고 건넜습니다.
앗 여기가 에도의 원점이 되었던 곳이란 바로 그 곳이네, 제대로 찾아온 셈인지요.
도심안에 이런 녹지가 있다니 신기했습니다. 사람들이 점심 시간을 마치고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문제는 여기서도 대낮에 신문지 덮고 자는 사람들, 윗옷을 벗고 벤취에 술에 취해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 지 마음이 착잡하더라고요.
밖으로 나와서 공원을 안내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기가 황궁 정원이라면 황궁은 어디있는가 하고요
그랬더니 자신은 모른다는 겁니다. 어이가 없어서 그렇다면 저쪽에 보이는 곳은 무엇하는 곳이냐고 물었더니
가 본적이 없어서 모른다고요. 그 순간 앗 이런 것이 바로 자신이 할 일에만 충성스럽고 다른 것에 눈감는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정신구조인가 비약하는 생각에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습니다. 아히히만 재판 생각으로 이어지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건너가보자 싶어서 도착한 곳에서 만난 안내문, 여기가 사쿠라다몬, 그렇다면 바로 역사의 현장 한 복판에
와 있는 것이로구나.
일본 역사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갖고 있는 시기는 쇼토쿠 태자 시대, 다이카 개신, 전국시대, 그리고
메이지 유신 직전의 열기, 그 중에서 마지막 시기가 가장 관심있는 시대라서 사쿠라다몬 문이란 팻말을 보는 순간
여기를 둘러보자는 마음이 들었지요.
여행을 처음 시작할 때와 참 많이 달라진 저를 봅니다. 예전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가기 급급해서 자연을
바라보거나 건물을 보거나, 거리의 사람들, 가게의 물건을 본다거나 그런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율은 많지 않아도 시간 배분하는 것에 변화가 와서 여행하는 중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요.
문제는 이 장소에 대해서 설명해줄 사람들이 없다는 것, 물어도 잘 모른다고 하고, 답답하네요.
그래도 여행 첫 날,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서 출발하는 것을 보니 웬지 이번 여행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될 것 같은 기분좋은 예감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