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에서의 일정이 아쉽다고 하니 보람이가 말을 합니다. 엄마, 그러면 오전중에 내가 요코하마에서 미용실에
있는 동안 엄마는 가마쿠라 좀 더 보고 요코하마로 올래? 그렇게 하고 싶지만 자신이 없더라고요. 시간을 맞추고
장소를 찾아가고, 이런 번거로운 것이 싫어서 그냥 함께 요코하마로 가기로 했습니다. 미리 카톡을 통해서 꼭 그 날
머리 손질을 해야 하니 그 시간 동안 엄마가 혼자 시간을 쓰고 만나도 되냐고 물었기 때문에 양해를 했지요. 일단
카페에 들어가서 가마쿠라의 책방에서 구한 소설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조금 맛만 보다가 밖에 나가서
동네 구경을 하고 싶었는데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읽다보니 벌써 머리 손질을 끝낸 보람이가 나타나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새로운 도시와의 만남이지만 태풍을 예고하는 방송이 이어지고 날씨가 심상치 않네요. 월요일까지 휴일이지만
아무래도 신칸센이 불통될 확률이 있으니 일단 요코하마에서 퓌시킨전을 보고 나면 엄마가 꼭 보고 싶은 곳
한 두 군데 둘러보고 바로 도쿄에 예약한 숙소까지 찾아주고 본인은 빨리 가야 한다는 보람이, 그래서 마음이
급하네요. 작년에 나고야에서 만났을 때도 바로 이런 상황, 신칸센이 언제 끊어질지 모른다고 걱정이 가득하더라고요.
그 때도 날씨가 나쁜 날이 있어서 지진이나 태풍의 피해가 심한 나라에서의 예방교육의 효과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푸쉬킨전이 있다고 했을 때 사실은 혼자 오해를 했습니다. 보람이가 왜 푸쉬킨전을 보고 싶어 했을까? 러시아
문학에 대해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니 뭐 나로서는 좋은 선택이니까 상관없지만
아무래도 엄마를 배려한 것일까, 소설을 쓴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가서 보니 러시아의 푸쉬킨 미술관에서 온
프랑스 미술 300년전이었습니다. 물론 전시는 훌륭했고 제가 본 적이 없던 마티스의 그림을 비롯한 여러 작품을
발견해서 고마운 전시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더 흡족스럽고 놀랐던 것은 이 미술관의 상설전시였답니다.
요코하마 미술관에서 고른 표지는 르노와르, 만약 저라면 포스터에 무슨 작품을 고를까 생각해보니 역시 저는
마티스였어요.
러시아, 보고 싶은 그림들이 많은 곳, 그중에서도 푸쉬킨 미술관과 에르미따쥐 미술관에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고
마음에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이런 마음이 쌓이면 기회가 생길 것이라는 묘한 미신을 믿고 있기도 하고요.
특별전은 카메라 사용이 허용되지 않아서 마음으로 두 번 세 번 돌아가면서 그림을 본 다음, 여기까지 왔으니
상설전에도 이왕이면 가보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콜렉션이더라고요.
모네의 그림 세계에 영향을 끼쳤다는 화가 용킨트네요.
상설전은 플레쉬를 쓰지 않는 한 사진이 허용되므로 이 때야말로 찍고 싶은 그림이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이
움직인다는 증거라서 그림보기에 더 몰두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로나 르동의 그림을 요코하마에서 만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기습적인 경험에 해당하는 것이었다고 저는
지금도 느끼고 있어요. 여기저기서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이번에 유독 르동을 여러 번 만나고 나니 그에 관해서
조금 더 알고 싶은 욕구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물론 처음 본 그림인데요 인상이 강해서 오래도록 생각하게 될 그림이라고 생각한 것중의 한 점입니다.
일본에서 가장 빈번하게 만난 조각가, 역시 로뎅인데요 마치 우에노의 경우에는 여기가 로뎅의 본거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의 작품이 다양하게 소장되어 있더라고요.
그림도 물론이지만 조각은 도판으로 보는 맛과 실제 현장에서 보는 것은 느낌이 상당히 다르지요. 어떤 환경에 배치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같은 조각이라도 분위기가 다르고요.
늘 갈등하는 것은 좋은 공간에 들어가면 여기서 얼마나 더 시간을 보내고 싶은가와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는 것에
대한 호기심의 충돌입니다. 그래도 이왕 온 곳, 한국이 아니니 다음에 다시 온다고 보장할 수 없는 곳에서 보고
싶은 만큼은 시간을 쓰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사진이 너무 많아서 한꺼번에 소개하는 것은 무리네요. 기습처럼 다가와서 좋은 인상을 남긴 상설전, 나머지는
다시 정리해서 소개를 하도록 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