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 초등학생들과 함께 읽는 세계역사 , 1권이 끝나고 드디어 2권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침 브리튼에 간 오거스틴이 당시 브리튼 남부를 다스리던 에덜베트 왕의 허락을 받아서 캔터베리에
살게 되고 그 곳 주민들에게 기독교에 대해서 가르치고, 수도원과 교회를 세우게 된 이야기, 결국 그는
그 곳에서 캔버베리 대주교로 임명되는 이야기, 수도사들이 수도원에서 무슨 일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함께 읽다보니 저절로 중세의 수도원을 잘 그린 영화 장미의 이름을 다시 보고 싶어지더군요.

소설로 읽으려다가 진입장벽이 높아서 못 읽고 말았던 책, 시간 간격을 두고 세 번 영화를 본 셈인데
볼 때마다 새롭게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어서 점점 흥미로운 영화감상이 되기도 했지요.
몇 몇 장면때문인지 18세 이상 관람가이긴 하지만 사실은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생각거리를 많이 던질
수 있는 영화가 아닐까 싶네요.

때는 1327년으로 못을 박아 놓았더군요. 이탈리아 북부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회의가 열리게 되고
이 곳을 찾아온 윌리엄 수사와 그의 제자 아드조, 이 이야기는 그 때의 강렬하고 불길했던 경험을 아드조가
세월이 오래 흐른 후에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를 합니다.
윌리엄 수사는 프란체스코 파인데요, 두 파 이외에도 이단으로 몰리던 ,극단적인 청빈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나오고, 종교 재판관을 지내는 베르나르도 귀, 교황청에서 보낸 추기경, 프란체스코 파에서 한 편으로는
위대한 자로 다른 한 편으로는 이단으로 몰리는 인물도 나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희극 책을 둘러싼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수도원, 그러나 내막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겐
이것이 악마의 소행으로 보인다는 점, 그래서 묵시록의 예언이 실행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루머가 돕니다.
한 편 수도원 밖에 사는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이 비쳐지는데 이 경우에도 여성이 더 희생자가 되는
이유는 여성이 자신의 몸으로 육체적인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수도사들에게 몸으로 대가를 받게 되고
이것이 발각되었을 경우는 역시 마녀의 소행으로 몰리게 된다는 것

열렬한 신앙과 광기는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윌리엄 수사의 말,
실제로 늙은 호르헤 수사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면 신앙은 공포에 의해서
유지된다고 믿는 그의 세계가 허물어질 것을 두려워 했지요. 그는 독을 묻힌 그 책의 페이지를 결국 스스로
씹어 먹음으로써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치게 됩니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호르헤의 그런 광기어린 집착은 지금 우리들에게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신앙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에 대해서 과연 우리는 거리를 두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는가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영화였습니다.

중세 수도원은 성스러운 공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역시 인간이 살면서 생기는 많은 문제들이 동시에
산적해 있는 공간이란 점, 그래서 더욱 흥미있게 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지요.
이제 드디어 장미의 이름으로를 책으로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된 기분이 든 날이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