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 너머에 일본어 공부를 하러 다니던 시절, 히부님의 제안으로 이 책을 읽기로 정하고
한동안 조금씩 읽어나갔지만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게 되고는 슬픈 외국어가 정말 슬프게도 서가에 그대로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혼자 읽기엔 다른 일들로 늘 치여서 한 두 번 조금 읽다가 다시 제자리에
마음만 앞섰지 제대로 실천이 되지 않아서 부담이 되던 어느 날, 일본어 전공인 유진씨와 이 책을 함께
읽게 되었지요. 한 주일에 딱 한 chapter 읽기로 정하고 주로 제가 모르는 부분을 표시해서 일본어 수업후에
남아서 개인지도를 받은 셈인데요,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이런 계기가 없으면 책을 읽게 되지 않으니
서로에게 좋은 것이라고 제 마음의 부담을 줄여주기도 했답니다.

한 학기 내내 매주 모여서 읽은 책이 드디어 오늘 다 끝났지요. 고마운 마음에 오늘은 커피 한 잔 사겠다고
일부러 권해서 토 프레소에서 책을 마무리했는데요, 수유 너머에서는 책이 어려워서 간신히 제가 맡은 부분만
번역해가는 것에 급급했다면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힘으로 다 읽었다는 것에 크게 의미를 둘 수
있답니다.

무라카미 하루끼가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읽혀도 그의 소설에 대해서 별로 흥미를 못 갖고 있었는데
이 에세이 덕분에 그의 다른 글, 특히 재즈에 관한 글을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도 또 하나의
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때는 이야기되고 있는 재즈를 찾아서 들어보면서 책을 읽는 것도 즐겁지
않을까 싶고요.

새로 시작하는 책은 3시간만에 읽는 세계 역사를 알게 되는 책이란 제목으로 3권의 단행본으로 된 책인데요
고대에서 명,청대까지는 둘이서, 그리고 제국주의 시대부터 현대까지는 수요일 일본어 모임에서 이렇게
읽어보기로 했습니다. 일본어로 읽는 세계 역사,나도 흥미가 생기는데 함께 할 수 있을까 궁금하신 분은
언제라도 합류하셔도 됩니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온 자신에 대한 상으로 바흐의 곡을 크게 틀어놓고 들으면서 그림을 골라서
보고 있는 중인데요, 공연히 기분이 좋아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날이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