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과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온 arhet님이 본인이 좋아하고 잘 만드는 점심을 준비할테니
운동가기 전에 들러서 점심 먹을 수 있는 날을 알려달라고 소식을 보내왔습니다 . 그녀의 음식솜씨에 대해서는
이미 들은바가 있어서 한 번 빼지도 않고 (번거롭지 않는가? 이런 식의 제스처도 없이 ) 바로 화요일이
좋다고 답을 보냈지요.
문제는 아무래도 점심을 먹고 나서 이야기하다보면 운동하러 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 그렇다면 오전에 미리
운동을 하고 오후에 넉넉하게 놀다오는 것이 좋겠다 싶었는데 마치 그런 부지런함을 보상이라고 하려는듯
체력단련장에 초록별님이 등장, 혼자서는 하기 어려운 복근운동을 보너스로 제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arhet님을 처음 만난 것은 아마 철학모임의 특강때가 아니었나 싶은데요, 일산에 사는 사람이라고
artmania님께 소개를 받았지요. 그러나 오전중에는 출판사일로 바빠서 스터디 모임에서는 만나기 어렵노라고
해서 그렇구나 하고 인사만 나누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학부형으로, 그리고 스페인어 공부의 동료로
만나게 되고, 운동하는 곳에서도 가끔 서로 얼굴을 보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그녀와의 거리가 조금씩 줄어들고
일요일 낮에는 비는 하염없이 내리는데 마침 도서관에 커피가 하나도 없어서 전화로 혹시 커피 믹스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부탁을 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더라고요.
초등학생인 그녀의 딸 윤교가 첼로를 배우는 중이라 가는 길에 첼로 연주가 멋진 디브이디 두 장을 챙겼습니다.
도착하니 음식 준비중이어서 음악을 틀어놓고, 집구경도 하고, 윤교가 폴리에서 이미 배운 책, 배우고 있는 책
구경도 하고 있으니 아트마니아님이 등장, 잘 차려진 식탁에서 (제겐 천지개벽이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이는 ) 음식을 먹으면서 이야기꽃이 만발했는데 사람의 인연이란 얼마나 신기한 것인가
저절로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각자 하고 있는 일이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자신에게 의미있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시간이 하염없이 달려가네요.
윤교가 손가락을 풀고서는 첼로 연주를 해주었습니다. 한 곡으로는 부족하다 싶어서 앵콜을 청하자
두 곡을 더 켜더군요.
제겐 언제나 첼로소리가 로망이어서 마음속으로 언젠가 첼로를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오길
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되었고, 오늘 아트마니아님이 자신의 바이올린을 새롭게 구한 이야기를 듣고
실물을 보고 나니 하루가 다 끝나고 난 시간, 공연히 저절로 연습에 힘이 들어가서 혼자 웃던 기억이 나네요.
그녀의 집에서 인상적인 것중의 하나가 오래된 식탁에 타일을 붙인 작품이었는데요, 미리 색을 맞춘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그 자체가 멋진 작품이 되었다는 것, 언제 기회가 되면 우리 집의 식탁도 이렇게 예술품으로
바꾸어 달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고 왔는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 기대가 되네요.
화요일 낮 시간의 멋진 나들이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언제 또 우리를 초대해달라고 말하고는
집을 나서는데, 사람이 사람과 어울려 살아가는 일의 묘한 파장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좋은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낳고, 거기에서 자신에게 있는지도 모르던 욕망을 발견하거나, 있는지도 모르던
기운을 주고 받기도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그 시간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서 고른 화가는 모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