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보고요~~~~~~~~~~~
그러나 빠삐용의 '악마의 섬'도 생각납니다.
드래퓌스도 유배되었던 남미 남태평양 상에 있던 정치,살인범 수용소.
위태위태 파도치는 부선 위의 저들을 보니 아래 장면이 떠오르고.
각설하고,
저기가 어딘고 하니 겨울철새들의 낙원 서산 천수만 방조제 중간쯤에 있는 간월도입니다.
더 정확히는,내가 서있는 곳은 간월도,앞 섬은 간월암.
간월도는 정주영의 80년대 천수만 방조제 공사로 육지가 되었습니다.
섬이 바다에 떠 있는 연꽃 같지않나요.
그래서 '연화대'라고도.
하루 두번 모세의 길을 만듭니다.
밀물 때는 사진처럼 부선에 올라 육지와 연결된 줄을 당기며 오가고.
看月庵입니다,,,달을 보는,,,,,,왜??
무학대사가 저 암자에서 달을 보며 깨쳐서요.
행정 번지수는 서산군(시) 부석면 간월도리,,,간월암이 있어서 간월도리가 됐다는.
섬에 있는 사찰이여선지 산신각 대신 용왕당이 있습니다.
인근에서 무학대사가 태어났습니다.
왜 舞鶴인고 하니,,,
아버지가 관가에 빗을 져 야반도주했고 대신 어머니가 서산현 관아로 끌려갔다네요.
도중에 애를 낳았는데 수풀 속에 피덩이를 남겨놓았고.
다시 와보니 학 한마리가 날개를 펴고는 지극정성으로 아이를 돌보고있더라는.
그래서 학이 춤추는 '무학'이 되었습니다.
간월도 어리굴젓도 유명하죠.
간월암에 머물던 무학이 이성계에 어리굴젓을 보냈는데 이후 진상품이.
간월암은 삼국시대 부터.
조선조 중기 이후 폐사되었다가 만공(1871~1946)이 새로 지어 간월암이라는 이름에 편액도 써 걸었고.
현 편액은 만공의 작품입니다.
만공이 누군고 하니,
사그러가는 조선의 선 불교의 불씨를 지핀이가 경허(1849~1912)라면 심지를 돋우어 활짝 꽃피운 이가 만공입니다.
내 자주 가는 청계산,
그 청계산 청계사서 출가한 경허에겐 장강의 뒷물결같은 걸출한 세명의 제자가 있었으니 수월,혜월,만공.
만공은 만해와 더불어 데라우치 총독의 조선불교 일본화에 항거도했죠.
그리고 선불교 중흥의 중심 사찰이 만공이 머물렀던 예산 수덕사입니다.
수덕사,정혜사도 만공이 일궜고.
무학은 달을 보며 깨달았다는데 만공스님은 범종소리였다죠.
근세 선승 중 만공만큼 일화가 많은 이도 없습니다.
만공 찾아 수덕사에서 비구니가 된 원조 패미니스트 '청춘을 불사르고'의 저자 일엽스님 얘기도.
가요 '수덕사의 여승'의 주인공,,,一葉이라는 법명도 만공이 지어줬고.
아이러니하게도 일엽과의 연으로 나혜석도 수덕사 만공을 찾아왔으나 거부당했죠.
수원 출신 나혜석은 파리 유학 최초 여성화가.
그녀는 수덕사 아래 수덕여관서 농성에 들어갔는데 그때 청년 고암 이응로가 찾아왔고.
연으로 이응로는 후에 수덕여관을 인수했으나 독일로 젊은 제자와 가버리자 본부인이 지켰습니다.
도반으로 의상과 원효가 당나라도 향하던 곳도 이곳 서산,태안,당진.
서산,태안,당진은 행정 단위로 나뉘어졌으나 지리,삶,문화가 거의 한 묶음입니다.
의상이 귀국한 곳도.
임오군란 후 청군이 들어온 곳도(마산포).
갑오농민전쟁 때 전주성 농민군 향해 제물포를 출항한 일본군이 입항 한 곳도.
귀국한 의상이 지은 최초 사찰은?
영주 부석사가 아니고 바로 서산 '부석사',,,뒤이어 영주 부석사를.
서산 부석사는 간월도 바로 위쪽에 있습니다.
삼국시대 이후 때 서산,태안,당진은 대당 전진 기지로 지금의 인천이나 부산같은 곳.
그래서 개심사,서산마애불,수덕사 등등 백제계 사찰이 많았습니다.
부여,공주를 출발한 대당 사신단 및 행상들이 이곳 사찰서 묶고 시주도 하고 등등.
인물도 아산,예산,서산,당진,태안,홍성 쪽에 넘칩니다.
성삼문,추사 김정희,몽유도원도의 안견,한용운,박헌영,
김대건,김좌진,윤봉길,이순신,최익현,김옥균,최영(공주),홍명희(괴산)신채호(대덕)등등.
인물이란 인물은 죄다 모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