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부터 여러 번 문자가 오고 가고 나서, 드디어 지난 토요일 점심 약속을 잡았습니다.
두 명의 여대생과의 약속인데 두 아이는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하고 각기 다른 대학에 진학한 여학생들이지요.
둘이서 한 번도 같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는데 도서관에서 공부하다 만난 사이로 그 뒤로도 계속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는 모양이더군요.물론 드물게 저도 함께 만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명은 8월 말에 다른 한 명은 10월 첫 날에 한국을 떠나서 공부하러 가게 되었다고 인사겸 만나고 싶다고
반가운 연락이 와서 오랫만에 먹고 싶다는 음식을 주문하고 한동안 못 본 이야기가 넘쳐 흐릅니다.

두 아이 다 한 명은 오빠와 여동생을 다른 한 명은 누나와 남동생을 함께 가르쳤던 경우라
그들 각각의 안부도 묻고 지금 무엇을 하면서 살고 있는가에 대한 안부도 물은 다음 중국에서 어떻게
지낼 것인지, 독일에서 어떻게 지낼 것인지 생활에 대한 것, 앞으로 하고 싶은 것,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
이런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옛날 함께 공부하고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을 만날 때 느끼던 초조하던 감정이
떠올라서 쓴웃음을 짓기도 했지요.

아, 이 아이들은 앞으로 죽 자라나고 성장할텐데 나는 같은 일만 하고 있구나, 그런 마음이 제게
채찍이 되어서 그대로 사는 것은 곤란하다는 자각을 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졸업하고 대학생이 된 아이들을 만나도 그런 시달리는 마음이 사라진 것을 보면
그 때 느낀 그런 초조감으로 방향을 잡아나간 삶에서 나름대로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되돌아보게 되네요.


아이들의 한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갑자기 오래 전 멀리 떠나서 공부하고 싶어했던 기억이
의식의 표면으로 솟아 오르면서 불쑥 너희들이 떠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도 공부하러 가고 싶어지네
소리가 절로 나오네요. 무슨 공부를? 하는 표정의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말하고 싶은 언어가 쓰이는 현장에서 이제까지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모여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 그 속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가는 그런 공부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에 아이들에게도 수업에만 치중하지 말고 다른 세계를 보고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여행도 많이 다니는 그런 생활을 하면 좋겠다는 말을 꺼내기도 했지요.

길을 떠나거나 떠났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압도적으로 여학생이 많은 것이
눈에 띄는군요 .이런 현상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꼬 생각해보게 되는군요.떠남으로써 얻기만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먼 길을 떠나서 낯선 곳에서 진짜 나는 누구인가 고민해보는 시간, 자신이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허물어지는 경험을 해보는 시간, 그리고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그것이 젊은이만의 특권은 아니겠지요? 갑자기 스멀스멀 올라오는 떠나고 싶은 욕구에 놀라고 있는
주말 아침입니다.

일년후 이 아이들이 돌아와서 다시 만날 때는 어떤 이야기보따리를 들고 올 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그리고 그 때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