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라고 하기엔 제겐 새벽인 시간,오늘은 아들을 깨우고,그 아이가 나가는 것을 보고는
바로 잠이 들지 못했습니다.잠들지 못했다? 가 아니고 잠자기가 아까웠던 것이 맞는 표현일까요?
원인은 어제 음악회에 갔을 때 구해온 디브이디의 연주가 궁금해서였는데요
MITSUKO UCHIDA가 지휘와 연주를 동시에 하는 모짜르트 협주곡 13&20,어떤 음색의 모짜르트를 만날까
호기심에서 잠깐 들어보고 다시 자야지 하다가 그냥 눌러앉아서 다 듣고는 잠이 멀리 달아나버렸습니다.
보너스로 수록된 인터뷰를 듣기 전에 음악을 다시 한 번 들으려고 돌려놓고,불현듯 이 음악에 어울리는 그림으로
함께 보고 싶은 화가가 생각나서 (이런 조합은 물론 개인적인 취향이기도 하고,지금 당장의 느낌이기도 합니다.
물론 다음에 모짜르트를 듣고 있을 때 어떤 화가의 그림이 떠오를지는 감이 잡히지 않지만) 마루에 앉아있다가
들어왔습니다.

그러고보니 요즘 시청하고 있는 일본 드라마중에 엔젤 뱅크라는 조금 이상한 제목의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는
무슨 내용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일까? 의아했거든요) 드라마가 있는데 재취업을 돕는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 내용인데요,내용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드라마의 주무대인 한 방에 클레의 그림 한 점이
걸려 있어서 볼 때마다 그 그림에 눈길이 가곤 했었거든요.
드라마안에서 만나는 그림들,좋아하는 그림이 벽에 걸려있으면 공연히 그 드라마를 보는 일이 더 즐겁게
느껴지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모짜르트를 듣다가 클레를 선택하니,갑자기 그 장면이 선명히 떠올라서 신기합니다.

지금 듣고 있는 음반에는 사연이 있어요.자랑스런 사연은 아니고,사실 처음 그 음반을 음반점에서 보았을 때
연주자가 일본인이길래 무심코 넘겨버리고 말았습니다.아마 일종의 선입견일까요?
처음 보는 연주자이기도 하고.그런데 어느 날 라디오에서 지난 해 뉴욕에서 팔린 음반순위를 소개하면서
2위에 오른 음반으로 이 연주자의 모짜르트를 꼽고 있더군요.어? 그래? 지난번에 보고 지나친 그 사람인
모양이구나,그런데 어떻게 연주하면 모짜르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아주 훌륭한 연주라고 하는 것일까?
호기심이 일어서 다시 찾으러 갔는데 아무리해도 잘 보이지 않는 겁니다.
없으니 더 들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까요?
갈 때 마다 뒤적이다가 드디어 어제 한 구석에서 발견하니 공연히 더 반가워서 바로 구입을 했습니다.

계산대에 가니 여승 두 분이 음반을 골라놓고 서있었습니다.순간 여승이 음악을? 하고 놀라는 자신에
제 자신이 더 놀라고 말았습니다.일종의 편견인데요,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들이 계산대에 물어본
말이었는데요 택배로 음반을 구할 수 있는가 였습니다.
자신들은 예술의 전당 회원인데 그러면 전화로 주문해도 되는가,이렇게 이어지는 대화를 듣는 일이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지만 신선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풍경이 될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떤 세계와 만나게 될 때 온전히 자신의 선택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라해도,일단 그렇게 만나고
나면 그것이 일시적으로 끝나고 마는 수도 있지만 강한 힘을 갖고 있는 경우 반복되면서 매번 달라지는
관계를 이룰 때가 있는데요,음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한동안 일부러 찾아서까지는 듣지 않았던 모짜르트가 이상하게도 작년 가을부터는 묘한 울림으로 마음속으로
스며들어와 요즘은 아침을 여는 곡으로 자주 선택해서 듣게 되는데 이 음반으로 인해서 조금 더 자주
듣게 될 것 같은 즐거운 예감이 드는 아침

디브이디 소개글이 누군가에게 나도 이 음악을 들어보고 싶다는 감흥을 일으켜서 공명이 되는 것을
상상하면서 토요일 아침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