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철학모임을 공지하면서 아트마니아님이 2008년 3월 4일이 첫 모임이라고 그러니 두 돌이 된 것이라는
점을 환기시켜주었습니다.두 돌이라,시작은 흐릿해도 무엇인가 일단 시작하고 나면 그것 나름의 생명력을 갖고
뒤바뀌기도 하고 덜어지기도 하고,그러다가 어느 순간 문득 늘어나기도 하는 멤버들과 더불어 늘 조금씩은
달라진 모습으로 만나게 되는 것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사실은 3월 1일 하루 종일 수유공간너머에서 있었던지라 몸이 많이 피곤하여 아침에 일어나서 꾀가 나더군요.
몸을 생각하면 하루 정도는 오전에 뒹글뒹글하다가 오후 수업에 가면 좋겠지만
마침 일산의 목요일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중에서 두 명이 새롭게 철학모임에 합류하기로 한 첫날이라서
예의가 아니다 싶더라고요.그래서 마음을 다시 불끈 다지면서 일어나서 정독도서관으로 출발을 했습니다.
역시 나서고 나니 그래도 마음이 가벼워서 지하철에서 내내 리영희 프리즘을 읽었지요.

그런데 방을 찾아서 기웃거리고 있는 한 멤버를 발견했습니다.이미 시작했을 시간인데 이상해서 물어보니
장소가 바뀐 모양이라고 하네요.이상하다? 생각하면서 방에 들어선 순간 낯선 남학생이 한 명 앉아 있더군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둘러보니 다른 사람들은 그대로라서 아하,저 남학생때문에 순간 착각한 것이로구나
다다가서 물어보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이런 모임을 발견하고 오늘 처음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대학생같은데 이상하다,학교에는 하고 당연히 생각하게 되지요.
휴학중인 대학생으로 문화쪽으로 공부의 방향을 바꾸고 싶어서 쉬면서 생각중이라고 합니다.
여성들,그것도 어머니또래,혹은 이모또래의 여성들만 가득한 방에서 어떻게 공부하려나 조금 걱정이 되긴
했지만 본인이 스스로 선택해서 찾아온 곳이니 아무래도 상관없지 않겠나 싶어서 서로 인사나누고
수업을 시작했지요.

어제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중에서 계몽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과
대중문화가 마르크스의 예언과는 달리 노동자들의 혁명의지를 어떻게 잠재우게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지요,그가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와 세이렌,그리고 노젓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끌어들여서
계몽의 이야기를 하는 과정을 설명하다가 발제자가 오디세우스의 입장이 아니라 세이렌의 입장에서
그 글을 파악한 여성주의 관점의 책을 소개하면서 역시 글을 읽다보면 푸코를 인용한 것이 많아서
다음에는 푸코를 읽어보고 싶다고 하네요.푸코라고? 나도 수유공간너머에서 함께 푸코를 읽고 싶다고
이야기한 상태라고 대답하면서 그렇다면 다음 텍스트는 푸코를 읽어볼까요? 하고 미리 찜해놓기도 했습니다.

수업에 참석한 사람들이 바빠서 점심을 함께 못하고 미리 떠나고 나서 우연히도 일산에서 온 사람들만
남았더군요.맛있는 밥집을 찾아서 점심을 먹으면서 이야기꽃이 만발한 것이 버스에까지 이어져
옆에 앉은 백현숙씨와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대학때까지는 상당히 열심히 이것 저것 찾아서 공부하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적극적인 성격이었다고
하더군요.그러나 결혼하고 나서는 아내로서 엄마로서 자기 나름의 규정을 정하고 나서는 그 안에서 살아온
것이 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했을까? 의아스럽다고,새롭게 알게 된 이런 공부가 자신에게 준 에너지에
대해서 상당히 오래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녀는 모임구성원이 서로 얼굴을 이미 아는 사람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 온 라인상에서 알게 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 상당히 놀라웠던 모양이더군요.마치 소설속에서나 나오는 일을 현실에서 만난 것처럼
놀라워해서 그것이 저는 더 신기했었지요.그러면서 이런 기회에 대해서 제게 어떤 식으로 보답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해서 막 웃었지요.제게 보답할 것이 아니라 본인이 받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되지 않겠는가? 그렇게 대답을 했지요.

다른 한 명은 목요일 모임의 멤버이기도 한 박혜정씨가 헬스클럽에서 러닝 머신위에서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을
보고 신기해서 자꾸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게 된 사람이지요.,그녀는 그런 책을 이런 곳에서
읽는 사람이 신기해서 말을 걸게 되었고,행복한 왕자의 목요일 수업에 대해서 듣고는 사실 그 날
본인이 학기중에는 강의가 있는 날이라서 참석하기가 어렵지만 방학중에 한 두번이라도 참석하고 싶다는
생각에 일부러 도서관으로 책을 보러 온 사람이었습니다.
디자이너로 현역에서 일하다가 결혼하고 일을 접고는 이론을 공부하면서 강의도 하게 되었다고 하니
상당히 적극적이고 능력있는 사람을 만난 것인데요,그녀는 두 번 수업을 하고는 여름방학에 만나자고 하더니
철학수업에 대해서 듣고는 바로 어린 딸을 데리고 수업에 나오는 적극성을 보여주어서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는데 점심식사중에 이야기가 번져서 그렇다면 여름방학에 건축사를 함께 읽어보면 어떨까하는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그녀도 역시 푸코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읽으려고 했으나 어려워서 푸코에 관한 만화책먼저 찾아읽었더니
도움이 되더라고 우리에게 책을 소개해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식의 인연이 재미있어서 한껏 유쾌했던 철학 모임 두 돌째 되던 날,앞으로 세 돌이 되는 날에는
무슨 사연을 이야기하게 될지,벌써 기대가 되는군요.
시작이 어렵지 시작만 하면 그것이 어디론가 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니,이제 참 무서운 것이 많이'
사라졌구나,스스로 칭찬을 하게 된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철학모임의 두 돌을 함께 축하해주시고,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나도 하고 마음이 일어서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함께 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