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를하면 역시 고흐가 연상되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물론 그 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왔고 살아갈 사람들의 고향이긴 하지만 멀리 이국에 사는 우리들에겐
그런 실감보다는 아무래도 누군가,혹은 무슨 유적지가 있어서 그 곳을 그리워하거나 궁금해하는 수준일 것이니까요.
호스텔의 풍경에 정신을 빼앗기고 사진을 찍다가 출발이 빨라야 아를을 보고,그다음 수도교를 본 다음
오늘 안으로 아비뇽까지 가서 가능하면 아비뇽교황청과 다리를 보아야 한다는 말에 다들 카메라를 집어넣고
차에 올라탔습니다.

아를은 소도시더군요.그래서 한바퀴 도니 시내중심가가 나왔습니다.여행자를 위한 사무실이 문을 열기엔
우리가 출발한 시간이 너무 일러서 결국은 공원이 보이는 곳앞에 차를 세우고 일단 공원으로 들어가보았지요.

차를 대는 곳 앞에 이런 건물이 있길래 무슨 공공장소인줄 알고 다가가보니 숙박시설인 모양이더군요.
이 곳에 로마의 흔적이 이런 식으로 남아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찍어보았습니다.

무슨 기념물인가 궁금해서 보람이를 불렀더니 엄마 나도 무슨 소리인지 몰라,이렇게 대답을 하네요.
그래? 그렇다면 가능한 수준에서 읽어보려고 다가가니 아이들을 위한 기념비라는 것은 알겠지만
그 뒤엔 해석이 불가능하네요.무슨 사건이 이 곳에 있었을 때 그들마저도 함께 싸운 일이 있었나?
혼자 소설을 쓰고 말았습니다.

길을 건너려는 순간 보이는 나무,앗 고흐의 그림속에서 만나는 나무가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구나
갑자기 마음속에서 소리가 공명하는 기분이었습니다.전 날 세잔의 아뜰리에에 가는 길 세잔의 그림속 나무들을
만나면서 놀랐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그러니 꼭 고흐를 기리는 기념관이나 전시관이 아니더라도
이런 길에서 만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마음을 울린다는 것을 느낀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이 곳에 고흐가 그림을 그리러 왔었던 모양이네요,공원안에 그의 그림을 모사한 판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바닥에 표시가 되어 있어 자세히 보니 아를의 중세가 아닐까 추측되는 글씨가 있습니다.
추측이라고 하는 것은 영어의 중세와 비슷하지만 자신할 수 없는 글씨라서요
그런데 둘러보니 공원 바로 앞에 로마시대의 극장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네요.그렇다면 이것이 중세인가?
조금 다른 것 아닌가? 아니면 이런 시대를 다 포함해서 중세라고 하나? 언어가 막히니 혼자서 공상을 하게 되는
시간,역시 모르는 것은 곤란한 것이로군,누구에게 물어볼 사람도 없고 혼자서 궁시렁거리면서 돌아다녔습니다.

일단 고흐의 흔적을 먼저 찾아보자고 해서 극장과 원형경기장은 뒤로 하고 거리탐색에 나섰습니다.


반 고흐 재단을 알리는 표지판이 보이네요.

그러나 찾아간 그곳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너무 빨리 온 여행객들인 우리는 이 곳은 포기하고
그렇다면 거리 구경에 나서기로 했지요.원형경기장도 아직 문을 연 시간이 아니라서 (너무 부지런했나요?)
한가하게 거리를 거닐던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워낙 여행객이 많아서일까요? 거리 청소를 하던 사람을 발견하고 카메라를 꺼낸 순간 그 사람이
알아서 모델이 되어주네요.그냥 자연스럽게 찍혔으면 더 좋았으련만


아를 거리를 걸어다니다 만난 가게 앞 풍광입니다.


이 곳이 아를이란 것을 양분한 엽서가 잘 보여주고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길거리에 면한 가게에는 크리스마스의 흔적이 이렇게 남아있더군요.재미있어서 찍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렇게 길거리를 담아보는 즐거움을 많이 누려서 기억에 남네요.
여행의 패턴이 변하는 것이 사진에도 영향을 주고 다음 여행에 대한 생각에도 변화를 초래한 제겐
참 신기한 시간들이었기도 하지요.

고흐 재단에는 들어가보지 못했지만 길거리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어서 재미있더군요.


고흐의 노란집이 바로 이 집일리 없겠지만 이상하게 눈길을 끄는 집이더군요.


몇 장이나 찍었는지 몰라요.지금 생각하면 왜 그렇게 끌리는 공간이었나 조금 어처구니 없지만
그 때는 아마 그 공간에서 오래 전 이 곳에 꿈을 품고 내려왔던 화가를 생각하다보니 감정이입이 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더 내려가다보니 이 곳이 아마 아를의 끝이 아닐까 생각하게 만드는 성벽이 나옵니다.


길을 거슬러 다시 올라가는데 교회건물옆의 바가 라 퐁텐이라고 되어 있군요.아 그렇다면 이 곳이
라퐁텐 우화집의 바로 그 라퐁텐의 고향인가? 혼자서 궁금해하다가 이런 문자중독자같으니라고
아무렴 어떤가? 혹시 나중에 그의 우화집을 읽게 될 기회가 생기면 일대기를 한 번 뒤적여보면 되겠지?
호기심을 누르고 원형경기장을 구경하러 올라갔습니다.
글을 다 쓰고 보니 고흐의 그림이 보고 싶어지네요.

프로방스의 농가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아를에 있었던 시간이 오전이라서 이 카페는 찾아볼 마음이 없어서 그냥 패스하고 말았지요.

이 그림속의 장소는 실제로 찾아서 가보았습니다.반갑군요.다시 그림속에서 바라보니


아를에서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그림이라고 하지요.테오의 부탁을 받고 고갱은 그 곳까지 가는 차비마저
테오에게 받아서 갔다고 하더군요.고흐가 고갱을 기다린 것은 이 곳에서 예술가 공동체를 꾸리면서
그림에 매진하고 싶은 이상에 불타서라고 하는데 이에 대응한 고갱의 태도라니
그러니 서로 자극을 주고 받는 예술적 동지가 되는 일은 동상이몽에 불과했겠지요?

고흐가 받은 일본판화의 영향이 보이는 그림이네요,



그림속의 모델로 남은 아를주민들이네요.



고흐와 고갱의 의자입니다.각각
이 그림을 보고 소설가는 소설을 ,심리학자는 심리학저서를 그리고 미술평론가들은 화가에 대한 이야기를
각자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우리들 각자는 고흐가 그린 두 점의 의자그림을 통해서 우리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볼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하고 있는 시간,그러고 보니
시간이 상당히 흘러버렸네요.고흐의 흔적을 찾아나선 길이란 제목에 걸맞지 않게 고흐 그림이 없다는 생각에
시작한 고흐 그림보기,아를과 관련한 그림만 뽑아서 보았어도 이런 방식의 그림보기도 재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