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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럼 하이든은요???

| 조회수 : 11,027 | 추천수 : 1,833
작성일 : 2010-01-14 22:52:19







예술의 전당에서 가장 멋진 건,,,,연주회도,전시회도,광장에 설치된 조각도 아닌,,,,바로 저 감나무다.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형을 선고합니다.

    /오늘 6시에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 좋아하세요?
      어제 일은 죄송했습니다./
    시몽에서 온 편지였다.

    요즈음 그녀는 책 한 권을 읽는 데 엿새가 걸렸고,
    어디까지 읽었는지 해당 페이지를 잊곤 했으며,
    음악과는 아예 담을 쌓고 지냈다.
    그녀의 집중력은 옷감의 견본이나 늘 부재중인 한 남자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가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있던 모든 것,의도적으로 피하고 잇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프랑수아즈 사강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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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하이든은요??/

연말  몇번 갔다.

1) 미샤 마이스키 협연의 하이든 필하모니(예당),
2) 길 샤암 협연의 세종 솔로이스츠(세종홀),
3) 그리도 장영주 독주회다.(예당)

2009년은 음악사적으로 나름의 의미가 주어진 해였다.
하이든 서거 200주기,멘델스존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관객몰이를 위한 상업적 발상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지만)

하이든 필하모니는 전곡을 하이든으로,
세종 솔로이스츠는 하이든에다 맛베기로 멘델스존을 끼어넣었다.
장영주는 브람스 중심~.





하이든(1732~1809) 하면 뭐가 떠오르시는지?

놀람,고별,시계 등으로 대표되는 교향곡의 아버지,현악 4중주의 완성자,,,
아니면 악보를 불쏘시게로 사용한 악처 같은 후일 담~~~???

엉뚱하게도, 나는 영화 가 떠오른다.
하이든도 거세한 가수 파리넬리가 될뻔했기 때문이다.
음악 가족이였던  바흐나 모짜르트와는 달리,하이든 아버지는 마차 바퀴를 만드는 목공이였다.
당시 마차는 전 유럽 통행의 자동차 같은 것이였으니 나름 첨단 산업의 종사자였을지도,,,
어머니는 귀족의 식모,좋게 말해 요리사였다.

베토벤,모짜르트처럼 하이든도 조기 음악 속에 어린 삶은 힘들었다.
삼촌집에서 잠시 음악교육을 받은 후 9세에 빈 슈테판 대성당의 성가대에 들어갔다.
슈테판 대성당 성가대는 지금의 빈소년합창단의 전신이다.
이렇듯 하이든의 음악적 장기는 연주보단 노래였다.




하이든,,,누가 그린 초상이지??


변성기가 올 이전 이였다.
성당측에서 하이든 아버지에게 거세 성악가 카스트라토를 제의한 것이다.
부모는 동의했고,중성화 수술 날짜까지 잡았으나 그만 감기에 결렸다.
심한 감기는  당시에는 곧 폐렴으로 이여졌으니 모든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당시 최고 사망 요인은 쇼팽 사인처럼 폐렴이였다.


당시 여성은 성스러운 성가대 석에 설 수 없었다.
그래서 소프라노 역으로 변성기 전에 거세된 카스트라토가 필요했다.
카스트라토는 허파 등 신체는 정상적으로 성장하기에 목소리에 힘이 있다.
반면,맑고 고음의 소프라노 또는 앨토 음역을 낼수있었다.
사극에서 환관들이 그러하듯,
당시 그림을 보면 카스트라토는 신체적으로 거인으로 묘사된다.

정세훈,임형주 같은 카운터 테너는 카스트라토의 현대적 대안이다.
남성이지만 변성기를 거친 후에도 훈련된 가성으로 여성처럼 높은 음역을 구사할수 있다.

여하튼 하이든에 감기는 천운이였다.
아니 모짜르트,베토벤에도 행운이였을 지도 모른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이 없없다면,베토벤 교향곡 8,9번도 없었을 지도.
'현악4중주의 아버지' 하이든이 없었다면,베토벤 음악의 정수,저 빛나는 후기 현악4중주도 없었을 지도.


하이든 하면 떠오르는 두번째로 베토벤 만큼이나 안생겼다.
60세 즈음 하이든을 묘사한 글을 보면,
키가 작고,다리가 무척 짧았으며,천연두로 얼굴을 얽은데다 메부리 코였다.

로멩 롤랑의 묘사처럼 베토벤이 딱 이랬다.

     땅딸막한 키,굵직한 목, 레슬링 선수 같은 뼈대를 가졌다.
     커다란 얼굴은 벽돌색이였다.
     이마는 튀어 나왔다.
     머리 카락은 빗도 안들어갈 정도로 뻗쳐 있었다.
     큰 코는 짧게 모가나 흡사 사자 코 같았다.
     턱뼈는 호두알도 깨물어 부술 만큼 튼튼했다.
     웃음 소리는 듣기 불쾌했고 말은 거칠었다.
     얼굴은 늘 우울했다.
     웃어도 기쁨을 자주 가져보지 못한 사람의 웃음이였다
                 -로멩롤랑 '위대한 예술가의 초상'-


세번째로,
베토벤,차이코프스키처럼 가정복이 없었다.

물론 베토벤처럼 하이든도 많은 여성을 품고 사랑했다.
중세 이후 사랑에 실패한 여성은 수녀원으로 결혼 지참금 갖고 들어가곤 했다.
하이든 첫사랑도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녀 부모의 강권에 2살 연상 언니와 결혼했다.

소크라테스 크산티페, 모짜르트 콘스탄체(요즘은 재해석되었지만), 똘스토이 소피아,
공자 아내 등등은 악처의 대명사들이다.
음악사에선 모짜르트,차이코프스키와 더불어 하이든 아내도 그랬다.

그녀는 도통 이해심이라곤 없었다.
악보를 기름종이로 말아 불쏘시게로 사용할 정도로 음악하곤 멀었다.
결국 손도 끊겼다.

음악가엔 유독 악처가 많다 보니 양처를 찾는게 더 쉽다.
바흐는 음악가 중 가장 건실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민 사람이다.
바흐는 무려 19살 연하 막달레나와 재혼했다.
전처와 사별하고  젊은 처녀를 맞은 것이다.
막달레나는 전처에서 13명 등 17명의 아이들을 성심껏 키웠고,
일부는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 모짜르트를 가르치기도했다.
바흐는 그런 아내를 위해 그 유명한 를 선물했다.
슈만의 아내 클라라 슈만,
'필란드 음악의 아버지' 시벨리우스 아내 등등도 양처 대열에 선다.


네번째,그럼에도 하이든은 행운아였고 이후 행복했다.

하이든이 슈테판 성당을 나올 당시 지닌 거라곤 내의 3벌과 코트 하나가 전부였다.
그러나 29세 때  에스테르하지 후작에 눈에 띄면서 상황은 변했다.
부악장을 시작으로 5년 후 악장이 되었다.

당시 유럽은 오스트리아 제국 천하였다.
이탈리아도 19세기말 독립 전에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침탈 하에 있었다.

동년배로 독일 바그너의 카운터 파트너였던 이탈리아 베르디다.
그 베르디가 애국적 소재 등으로 이탈리아 국민음악가로 추앙받는데에도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이였다.

지금의 헝가리도 당시엔 오스트리아 제국에 속해 있었다.
당시 에스테르하지가(家)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최고 실력자였다.
그런 에스테르하지가의 궁정악장이였으니 하이든의 프라이드도 알만하다.

창덕궁이나 경복궁을 법궁(法宮)이라 부른다.
조선조엔 법궁 외에 별궁으로 경희궁,창경궁,덕수궁 등이 있었다.
원행(遠行)지인 수원 화성,온양,남한산성 등엔 행궁(行宮)이 있었다.
피부병에 시달린 세조,세종,정조는 온양 행궁을 자주 들렸다.

에스테르하지도  두개의 별궁이 있었다.
본궁은 오스트리아 빈으로 부터 동쪽으로 50키로 떨어진 아이젠슈타트에 있었다.
여름 별궁은 지금의 헝가리 에스테르하자(Eszterháza)에,겨울 별궁은 빈에 있었다.

에선 연주 중에 하나 둘 연주자들이 퇴장하고 최종적으로 바이올린 주자만 남는다.
고별이 작곡된 계기도,장소도 여름 별궁인 에스테르하자였다.
후작은 여름 별궁을 유난히 좋아해 본궁이 있는 아이젠슈타트로 장기간 가지 않았다.
아이젠슈타트에 있는 처자식을 그리워하는 악단들을 위해 하이든다운 윗트를 발휘한 것이다.
악단으로 부터 '파파 하이든' 애칭도 그래서다.


다섯번째로 인생사 세옹지마다.
바흐,모짜르트는 당대엔 국제적인 인기는 없었다.
특히나 바흐는 평생 독일 권역을 벋어난 적이 없었다.

반면 헨델,하이든은 국제적 인사였다.
지금은 바흐,모짜르트 천하이다.
베토벤은 고금이 동일하다.

하이든은 생전 유럽 전역에서 그의 음악이 연주되고 악보가 인쇄되는 유명인사였다.
나폴리 왕,파리등 유럽 각지에서 곡을 의뢰했다.
파리 교향곡,12곡의 런던교향곡,오라토리오 와 등등 후기 작품들은
바로 하이든의 국제적 소양의 산물이다.

두번에 걸친 영국 방문을 통해 교향적 기교를 한층 살렸다.
여기서 놀람,시계,군대,큰북연타 등 12곡의 교향곡을 완성했다.
영국에선 국왕뿐만 아니라 사회단체의 환대도 대단했는데 옥스포드에서는 명예학위를 받았다.
웨스트민스트 사원에서 열린 헨델 추모음악회에 참석,그때 받은 감동으로 와 를 작곡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학이든 말년은 보통 종교적인데,
말년에 작곡한 10여개 미사곡은 18세기 미사곡 중 최고봉이다.


19세기 초중반 영국의 두 낭만주의 화가는 파리 화단에 큰 영향을 미쳤다.
컨스터블과 터너이다.
폴 젠슨의 표현을 빌자면,
1824년 컨스터블의 파리 전시는 파리 낭만주의 화가에겐 계시같은 거였다.

인상파 화가들이 한사코 흠모했던 들라크루와는 컨스터블 전시회를 보고는  
자신에 첫 명성을 안겨준 의 배경을 고칠 정도였다.
컨스터블 전시회와 키오스섬의 대학살이 나온 해는 1824년으로 같다.
또 앵그르가 이탈리아서 막 귀국 이름을 알리던 시기이다.
들라크르와가 존경했던 의 젤리코는 말에서 떨어져 절명했다.
모두가 1824년 이다.

터너는 환상적인 붓 터치로 모네등 인상파 화가에  미친 영향은 절대적이였다.
특히나 모네가 좋아했다.


그러나 음악은 상황이 달랐다.
영국의 음악적 풍토는 본토에 비해 약했다,아니 빈약했다.
그래서 그들은 마이너 작곡가인 엘가조차도 엄청 자랑스럽게 여긴다.

산업혁명으로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음악적 욕구가 컸다.
현악4중주는 바이올린 둘에 비올라,첼로가 더해지는 실내 앙상블이다.
실내악 인기는 음악 중심이 귀족의 궁정에서 중산층의 살롱으로 이전을 의미한다.
하이든이 이전의 천차만별의 실내악을  현악4중주 형식으로 통일한 것도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다.

당시 영국은 음악가엔 선망의 나라,더 나아가 음악 수효의 블랙홀이였다.
너나 할거 없이 유명해지면 도버해협을 건넜다.
어린 모짜르트도 배를 탔다.

선배 헨델은 그런 환대에 결국 영국에 귀화했다.
감격해,헨델이 죽자 국립묘지인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뭍어 예를 다했다.
영국은 하이든도 헨델이길 바랬으나 하이든은 달랐다.
기나긴 에스테르하지가의 은덕 때문이다.

/영국에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있으나 나의 모국 오스트리아는 없다/

하이든의 고사의 변이다.
영국이 얼마나 풍요로웠는지 알수있는 대목이다.
그런 영국에서 국빈대우를 받은 하이든이다.

귀국 후 하이든은 영웅이 되어있었다.
고향 로라우에는 동상이 세워졌으며 많은 흉상이 제작되었다.
스톡홀름,암스테르담,상트페테르부르크,파리 등에서는 그를 음악협회 명예회원으로 추대했다.
빈에서는 그에게 금으로 된 공로 훈장을 수여했다.

영국에서 체류시 들은 영국 국가에 감동,하이든은 오스트리아제국의 국가를 작곡했다.
제목은 ~.
당시 오스트리아 국가로 1백여년 사용되었다.
지금은 통일독일 국가가 되었다.




미샤 마야스키와 지휘자 아담 피셔


여섯번째,그는 죽음도 축복이였다.

     죽기 한해 전인 1808년 76회 생일을 기념하는 축하 연주회가 빈에서 열렸다.
     가 연주되었고, 병져 누워 있던 하이든도 참석했다.
     그는 팔걸이 의자에 앉은 채 귀족들과 함께 앉았다.
     그를 기념하는 시도 낭송되었다.
     왕년의 제자 베토벤은 무릎을 꿇고 스승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이것은 최후로 참석한 공개연주회였다.

     그리고 1년 후,
     빈은 1809년 나폴레옹 군대의 공격을 받았다.
     하이든의 집 근처에도 포탄이 떨어졌지만,나폴레옹은 보초들로 하여금 하이든의 집 둘레를 경비하도록 했다.
     한 프랑스 장병이 하이든 집을 방문,그에 대해 경의를 표하자 병든 하이든에게도 잠시 기쁜 휴식이 주어졌다.
     이 장병은 〈천지창조>에 나오는 아리아 한 곡을 불렀고, 노래를 들은 하이든은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이 장병은 얼마 후 전사했고,
     하이든도 그가 죽은 지 며칠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프랑스 군인들이 영구차 뒤에서 열을 지어 따라 걸었다.
     빈의 명사들과 프랑스의 장교들도 이 천재 작곡가에게 경의를 표했다.
     - 이상은 음악학자 가이링거(K. Geiringer,1899~) 하이든 전기에서-

가이링거는 외에도 브람스,바흐 전기도 썼다.

나폴레옹 군은 자유 사상의 혁명군이였다.
혁명군은 뭐가 달라도 다르다.
십자군 병사완 딴판이다.

혁명군은 베토벤을 존경했다.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 초연이 빈에서 있었다.
참석자들은 바로 프랑스 사관들이였다.
이둘 중엔 바스티유의 영웅 율랭 장군도 있었다.
율랭 장군은 당시 롭코비츠 집에 머물고 있었다.
롭코비츠가 누군고 하니,교향곡 알짜을 헌정 받은 인물이다.
은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두고 작곡한 곡이다.


일곱번째,고전주의 음악 형식의 터를 닦아 모짜르트,베토벤에 넘겼다.

하이든은 후작의 계절별 동선을 따라 이동했기에 빈에 자주 갔다.
빈에 머물 때에는 모짜르트,베토벤와 연을 맺였다.
24살이 적은 모짜르트와 음악적 교류를 갖고 한수 가르쳤다.

둘은 현악4중주 곡을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
보답으로 모짜르트는 하이든에 6곡의 현악4중주 곡을 헌정했다.
하이든은 모짜르트의 음악적 기량에 감탄, 이후 오페라 작곡은 포기했다.

당대 오페라는 돈 되는 최고 음악 장르였다.
모짜르트의  오페라 의 전편이라 할 를 작곡한 롯시니다.
세빌리아 이발사는 초대박이였다.
한편으로 얼마나 많이 벌었던지 이후에는 작곡을 포기하고 인생을 즐기며살았다.

본(Bonn) 촌뜨기 베토벤은 22살 때에 하이든을 만나기 위해  빈으로 달려와 잠시 베웠다.
그는 하이든 사망 1년전에 열린 하이든 빈 축하연주회에 참석,스승의 손에 입을 맞췄다.






공연이 끝나고,,,공연 후엔 살짝 사진찍는 습관이 있는데 이날도 역시나 안내 도우미가 다가와 저지한다.
아니!공연 후 무대인사조차도 못찍게 해서야.웃기는 클래식 풍토다.저들의 선조들에 박스석은 홍등가였다.



그런 하이든 전문 해석의 오케스트라가 첫 내한했다.
냉전 시기인 1987년 빈필,빈 심포니,헝가리 국립교향악단 출신으로 구성된 다.
옛날 하이든이 활동한 지역이 지금은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로 양분된 만큼,
공식 명칭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하이든 필하모니 아이젠슈타트'이다.


아이젠슈타트는 에스테르하지가(家)의 본궁이 있던 곳이다.
하이든 필하모니의 본부도 여기에 있으며 매년 궁에서 하이든 페스티벌을 연다.
하이든 필하모니는 104곡 교향곡 전곡을 녹음한 현존 하이든 해석 최고 오케스트라다.

87년 창단을 시작으로 무려 14년 만에 레이블 '브릴리언트'를 통해 전곡을 레코딩했다.
녹음은 아이젠슈타트궁에서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출신 안탈 도라티(Antal Dorati,1906~1988)가 전곡을 녹음한 이래 두번째다.
하자는 있지만 최초라는 역사성으로,도라티 녹음은 하이든 교향곡 녹음의 전범이 되었다.

창단부터 전곡 녹음까지,,,
하이든 필하모니는 아담 피셔(1949~)를 빼놓고 얘기할수 없다.
도라티와 같은 부다페스트 출신으로 1987년 하이든 필을 창단,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동생이 바로 유명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이반 피셔다.
외에도 아버지도,삼촌,조카 까지 지휘자였거나, 이니 그야말로 지휘자 가족이다.


지휘 대가들의 데뷔는 극적인 경우가 많다.

토스카니니의 미국 데뷔 무대가 1908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서 있었다.
근데 당시 최고 관심사는 곡 해석이 아닌 엉뚱하게도 그의 암보(暗譜) 능력이였다.
그는 '걸어다니는 악보 도서관'으로 통했다.
아무리 긴 악보도 3번이면 외웠다.
작곡가가 외우지 못하는 악보를 외울 정도였다.
관객은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언론은 160곡을 암보하니 어쩌니 하며 대서특필했다.

얘기는 거슬러 올라,
1886년 토스카니니 소속 악단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를 공연했다.
토스카니니는 악단 첼리스트였다.
원 지휘자가 무대에 설 수 없게 되었고 다급해진 단원들은 토스카니니를 추천했다.
첼리스트였지만 그가 지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단원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토스카니니니는 지휘대에 올라서자마자 악보를 덮었다.
한번도 악보를 펼치지 않고 대곡을 지휘했다.
푸르드 뱅글러와 함께  20세기 지휘계  최고 원,투펀치가 등장하는 순간이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19세였다.

토스카니니의 특출한 암기력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지독한 근시였다.
악보를 보면서 지휘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기에 암보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아담 피셔가 지휘계서 명성을 얻은 연주도 비슷했다.
주세페 시노폴리(1946~2001)는 2001년 아이다 3막 연주 중 심장병으로 급서했다.
대신 아담 피셔는 바이로이트에서 를 성공적으로 지휘했다.

우리나라서도 방한 단체의 지휘자,협연자가 와병으로 바뀌는 경우도 흔하다.
작년에도 몇번 그랬다.

시노폴리는 책벌레 장한나가 가장 존경하는 음악가이다.
어디 보니 장한나가 푸르스트의 장편소설 를 읽고 있다더라.
바로 시노폴리가 추천한 책이다.
시노폴리는 만날 때마다 장하나에 여러 권의 책을 사주고는 이후 확인까지했다나.
시노폴리는 의대를 졸업 후 작곡가 길로 들어섰다.
보면,조르디 사발 처럼 음악 영역에만 함몰되지않은 음악가들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사망 1년전인 2000년,시노폴리는 예당에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를 이끌고 공연했다.
그 드레스덴 슈카츠카펠레의 예당 공연을 작년 5월에 갔었다.
지휘는 파비오 루이지.
이런 내막을 알았으면 훨 의미있는 감상이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참 인상좋고 친절한 아담 피셔다.동구권 음악가들은 확실히 서구권과 다르다.



첫곡은 교향곡 94번 '놀람'(Surprise)이다.
런던서 작곡한 12곡 중 두번째 곡으로 과 함께  하이든 교향곡 하면 떠오르는 곡이다.
하이든 나이 60세 즈음 영국의 바이올린 주자이자 공연 매니저인 잘로몬으로 부터 초청받았다.

잘로몬 교향곡 불리는 교향곡 12곡(93~104번)은 영국에서 작곡했다.
81번 까지는 에스테르하지궁전 공연용으로,
82~87번은 파리쪽의 위촉으로,
88~92는 개인 위촉이였다.


하이든 교향곡엔 별칭이 많다.
6번 아침, 7번 점심, 8번 저녁이라는 이름이 있다.
외에도 호른신호, 고별, 수난, 제국, 교장선생, 화재, 멍청이, 사냥, 곰, 옥스퍼드, 놀람, 기적, 군대, 시계,
큰북연타, 런던,,,등등 평범한 제목 부터 익살스런 제목까지 다양하다.

왜 하이든 교향곡엔 이리도 이름이 많이 붙은 것일까?
이름은 후세에 붙어진 것인데,
누군 교향곡이 너무 많아 구별하기 쉽게 하기 위해 붙였다고 하고,
누군 출판사의 상술 때문이란다.

베토벤의 고전주의 이후, 악보는 지금의 시디 같은 것이였다.
악보는 작곡가의 주 수입원이였으니 출판사 상술이 주 원인이였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출판사에서는 작곡가에 각 악장 이름도 로멘틱한 걸로 붙여줄 것을 요구하곤했다.
칸타빌레니,로망스니,,,,등등으로.

피셔는 내한 인터뷰에서 하이든 인기의 비결을,
/하이든은 군림하지 않고, 바로 곁에서 유머,비극,일상 재치를 전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런 포텐셜한 하이든 이기에 걸맞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쉬웠을 것이다.


베토벤이나 브람스 같은 사유형 작곡가와 달리 엔죠이형 하이든의 교향곡은 감상도 편하다.
놀람 교향곡 자체가 하이든 유머의 소산이니 만큼 무슨 감식가라도 된듯 귀를 쫑긋 세울 필요도 없다.

하이든 시대,음악은 당연 귀족의 전유물이였다.
모짜르트의 디베르티멘토는 연회 중 귀족들의 식성을 돋구기 위해 연주되던 곡들이다.
맛나는 요리 내음에다,,,,저들은 먹고 나는 연주해야하는,,,,,,,
그들의 마음 한켠에 응어리가 맺히기 마련이다.

음악은 귀족에게 필수교양 과목이였다.
태양왕 루이14세는 최초의 발레리노였다.
에스테르하지 후작도 가끔 궁정악단 연주회에 참가하곤 했다.
베토벤의 연원한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루돌프 대공도 유명 피아니스트에 작곡가였다.
연산군도 처용무를 잘 췄다.

최초의 발레리노의 영광을 얻은 것도 루이14세가 공연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화려한 로코코풍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는 저녁부터 무도회,연주회가 다음날 아침까지 계속됐다.
귀족,영주들은 자신의 영지에서 올라와 루이14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파리에 상주해야했다.
무도회의 배역은 이들 귀족,영주들이 맞았다.
귀족들은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낮에는 열심히 연습했다.

77세로 죽은 루이 14세의 장례가 세인의 조롱속에 치뤄졌다.
그러나 향락을 맛본 베르사이유궁에 머물던 파리 상주 귀족들은 시골로 돌아가기가 싫었다.
파리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니 바로 '오텔'이다.
오텔은 호텔의 프랑스어 어원이다.


역시나 하이든은 화풀이도 음악적이였다.
만찬회 후 열린 음악회 안의 풍경은 가관이였다.
불켜진 홀에선 온갓 교태로 교양녀를 자처하지만 불꺼진 홀에선 본색으로 돌아왔다.


보통 1악장은 알레그로,2악장은 아다지오다.
힘찬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에 들어선다.
감미로운 아다지오에 에브리 바디,,,,쿠우울~~~~~.

/도미미 솔솔미, 파파레레 시시솔~/

피아니시모(pp)로 조용하다 포르티시모(ff)로 모든 악기와 팀파니가 일제히 꽈~왕!
침까지 흘리며 숙면에 들어간 귀부인들은 아닌척 눈커풀을 치켜올렸다.

하이든은 한참 후,
바로 2악장 주제를 오라토리오 에서 아리아로 편곡했다.
사계에서 베이스 독창자(농부)는 하이든 곡을 휘파람으로 불며 일한다.

근데 말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기대에 못미친다.

꽝!하는 충격이 오질 않는다.
(대포 소리를 기대했었나....)
생각해보니 소음의 시대에 사는 나의 문제였다.
하이든 필하모니는 40명 소규모 편성이다.
당대를 따르다 보니 그렇다.
요즘 같이 100여명이 넘은 대편성이면 또 다를지도 모르겠다.


음악적 선호는 개인적 경험의 소산이다.
동해 바닷가, 밀려오는 모래사장서 듣는 로사드의 관현악곡 는 이 세상 최고 음악임에 틀림없다.

음악가에 음악적 계기라는 것도 그렇다.
어떨 땐 운명적이다.
지휘자 이반 피셔가 5세 때라나.
아버지가 지휘자인지라 조기음악 교육 속에 살았다.
놀람 공연이 있던 며칠전 아버지는 어린 피셔에 놀람을 틀어주고 주제를 직접 피아노로 연주해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어떻게 연주되는 지를 느껴 보라고.

연주회 날 피셔는 실망했다.
예상했던 그 놀람이 아녔기 때문이다.
부자는 백 스테이지 지휘자에게 갔다.
그리고 따졌다.
왜 이리 꽝! 소리가 작냐구.

지휘자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애야,네가 커서 크게 지휘해보렴~/

지금 그 피셔가 놀람을 지휘했다.
난 어린 피셔 처럼 필이 덜 왔던 거고...


7,80년대 일요일 아침이면 전 국민은 엠비시 '장확퀴즈'로 체널 고정이였다.
(아니신분 계시면 댓글로 항의하시라!)

자, 그 씨그널 음악을 상기하자!

빠아빠~빠아빠~~빠빠빠빠아~~~~~

그 낭랑한 트럼펨 음은 일요일 아침의 경쾌요,여유였다.
차 한잔의 사색이요,테마 공원으로의 티켓이였다.

64세 때 작곡된 하이든의 유일한 트럼펫 협주곡이다.
두번째 런던 여행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즈음이였다.
당연 곡에서 그런 행복감이 뭍어난다.

당시 빈 궁정의 호른 주자인 바이딩거는 반음계를 자유롭게 불 수 있는 새로운  구조의 트럼펫을  만들었다.
바로 하이든의 은 트럼펫 음역이 확장된 거에 대한 early adopter였다.
당시는 호른도 벨브가 없어 입술로 강약을 조절해야했다.
당연 연주도 어려웠다.

요즘 원전 연주가 불 붙었고,내한 단체들도 원전 연주가 대세이다.
그 원전 연주 호른 주자들도 가끔 삑사리를 낸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기기의 탓이다.
작년 조르디 사발이 이끄는 르 콩세르 나시옹 내한 연주 때도 그러더라.

역쉬나 3악장의 장학퀴즈 주제음이 울리니 객석에도 생기가 돈다.
어떻게 아냐고?
내 자리가 합창석 측면 끝 맨 아래로 나름의 좋은 자리인지라 무대앞 로열석 관중 표정이 잘 들어온다.

트럼펫 주자는 빈필 트럼펫 수석이였던 한스 간쉬(1953~)다.
그 또한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현재 짤츠부르크 모짜르테움 트럼펫 교수다.










하이든도 키작고 메부리코였는데,,,,내가 봐도 멋지다.옷 디자인도 직접 한단다.


나두 싸인 한장,,,,감동을 주는 연주는 연주자 가슴에서 나온다,,,스킨쉽 차원에서 바쁘지 않으면 난 받는다.



2부 첫곡은 첼로협주곡 1번 C장조다.(흐르는 음악은 1악장)
하이든은 두곡의 첼로 협주곡을 남겼다.
2번이 유명하지만 1번 또한 좋다.

1번 C장조가 세상에 알려진 때는 1960년대였다.
2백년 이상 귀족의 문고에서 잠자고 있다 발견되었다.
하이든 원숙기에 쓰여진 2번과 달리 초기 작품이다.
2번은 한때 다른 작곡가의 것으로 여겨졌으니 하이든 첼로협주곡은 기구한 데가 있다.

베토벤,모짜르트는 교향곡 대가로서 당연 협주곡에도 탁월했다.
하이든은 교향곡의 대가였음에도 협주곡 분야는 약했다.
왜일까?
모짜르트,베토벤 처럼 뛰어난 비르투오조적인 연주가가 아니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트럼펫 협주곡,첼로 협주곡,바이올린협주곡 1번은 자주 연주된다.


협연자는 미샤 마야스키(1948~)이다.
벌써 10여 차례 방한했고 올해는 지방 순회도 했다.
언젠가는 한복을 입고 나오는 등 클래식계 대표적인 지한파이다.
우리나라서 참 인기도 많다.
장한나가 세계무대에 알려지게 한 장본이기도 하다.
오는 6월에는 열정의 피아니스트 백혜선과도 조우한다.
아들 딸도 피아노,바이올린 연주자로 가족 마이스키 앙상블을 구성하고있다.


라트비아,리투아니아,에스토니아 이리 3국을 발트 3국이라 부른다.
마야스키는 라트비아 수도인 리가 출신이다.
미션,킬링필드,시티 오브 조이,주홍글씨의 감독 롤랑조페(1945~)도 라트비아 피가 흐른다.
음악계에 라트비아 출신 거장이 몇 있다.
20세기 바이올린계의 최고봉 아사 하이페츠도 라트비아 빌라 출신이다.

바이올리스트 기돈 크레머(1947~)는 리가 출신이다.
마이스키와 크레머는 친구로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함께 연주도 했다.
이같은 연으로,둘은1982년에는 번스타인의 빈필에서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도 레코딩 했다.(도이치 그라모폰)
여기에 아르헨티나 출신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합류, 삼인방을 이룬다.
하이페츠,크레머,마이스키는 모두 유태계다.
바이올린 계는 러시아가,특히 유태계가 잡고있다.


장한나와 장영주는 두살 터울이다.
마이스키,크레머 같이만 커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둘의 브람스 이중협주곡 녹음도 기대해본다.
그런데 둘은 요즘 소통이나 하나 모르겠다.

마이스키는 모그크바 음악원에서는 로스트로비치를 사사했다.
미국에선 전설적인 첼리스트 피아타고르스키( Piatigorsky)에도 배웠다.
현존 첼리스트 중 로스트로비치-피아타고르스키에 배운 유일한 인물이다.

피아타고르스키가 누구인가?
1930년대 바이올린 하이페츠,피아노 루빈스타인,첼로 포이어만 트리오를 당시에 '백만불 트리오'라 불렸다.
42년 포이어만이 죽고 피아타고르스키가 합류했다.
백만불 트리오는 거장들의 명 연기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앙상블에서는 좀 떨어지만 자체로 전설이였다.

얼마나 유명했던지 문학작품에도 가끔 나온다.
길지만 소개한다.

     "저희 가게 커피 맛이 괜찮으신지요?" 하고 백발의 주인이 와서 물었다.
     "네 굉장히 맛있네요. 향이 정말 좋아요."
     "커피콩을 직접 제가 볶습니다. 한알 한알 손으로 좋은 콩을 골라서 커피 맛을 냅니다."
     "어쩐지 맛이 있더라구요."
     "음악은 귀에 거슬리지 않으신지요?"
     "음악이요?" 하고 호시노 청년은 말했다.

     "아뇨,참 좋은 음악입니다. 전혀 귀에 거슬니지 않습니다.누가 연주하는 겁니까?"
     "루빈슈타인,하이페츠,포이어만의 트리오입니다.당시에는 '백만달러 트리오'라고 불렸답니다.
     그야말로 거장들의 예술입니다.1941년 음반이지만,아직도 그 빛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 느낌이 듭니다. 좋은 것은 언제나 좋지요."
     "더러는 조금 구축적이고 고전적이며 강직한 를 좋아하는 분도 있습니다.

      가령 오이스트라흐 트리오의 연주 같은 거 말입니다."
     "아니 나는 이것이 좋습니다." 하고 청년은 말했다.
     "뭐랄까,부드러운 느낌이 듭니다."

     "갑사합니다." 하고 주인은 '백만 달러 트리오'를 대신해 정중하게 감사의 말을 했다.
     주인이 물러가자,호시노 청년은 두잔째 커피맛을 음미하며 성찰을 계속했다.
      ...............
      그는 가 끝날 때까지 그 생각을 계속했다.
      음악이 그의 사색을 도와주었다.
      "아저씨" 하고 그는 찻집을 나올 때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 저 음악이 뭐라고 하셨지요? 금방 까먹었어요."

      "베토벤의 입니다."
      "대포 트리오요?"
      "아니,대포가 아니라 대공입니다.베토벤이 오스트리아 루돌프 대공에게 헌정한 곡입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붙여진 이름은 아니지만, 흔히 '대공 트리오'라고 부릅니다.
      루돌프 대공은 황제 레오폴드 2세의 아드님으로 요컨데 황족입니다.
      음악적 자질을 타고나서 16살때부터 베토벤의 제자가 되어,피아노와 음악 이론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베토벤을 깊이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루돌프 대공은 피아니스트나 작곡가로 그게 성공하진 못했지만,
      현실적인 면에서는 세상살이에 어두운 베토벤에게 여러모로 도움의 손길을 주었습니다.
      만일 그가 없었다면,베토벤은 더욱 험난한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 무라카미 하루키의 -


하이든 첼로협주곡에선 다른 작곡가와 달리 어두운 그림자가 없다.
마냥 밝고 활력이 넘친다.
듣노라면  따스한 봄날 라일락 내음이 난다.

모데라토 템포에 튜티(총주)가 시작된다 싶더니 금방 첼로 솔로음이 묵직하게 밀려온다.
마이스키의 활을 밀어 올리는게 장미란의 바벨같다.
그의 어깨에도 나의 어깨에도 힘이 실린다.
그리고 가슴에 맺힌 앙금들이 사라진다
누구는 텅 빈 것만이 아름답게 울린다는 사실을 첼로에서 배웠다는데 그런 걸까......

그는 의상도 파격적이다.
그에게 연미복은 없다.
작은 키,긴 머리,덥수룩한 검은 수염,자신이 디자인한 실크 의상이 독특하다.

연주도 파격적이다.
두 스승의 엄격하고 중후한 울림하고는  차이가 있다.
즉흥성이 강하고 섬세하고 부드럽다.
기돈 크레머는 탱고등 현대음악에도 심취하고 있는데 초록은 동색이다.
친구 영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마에 땀이 맺히나 보다.
숫제 수건을 첼로 본체에 달고 연신 닦아낸다.
파바로티는 흰 손수건이지만 마이스키는 검정 수건이다.
파바로티 손수건은 박수를 유도하는 신호지만 마이스키는 열정 연주의 부산물이다.


집에 와 들어봤다.
이 순간에도.
장한나와 쥬세페 시노폴리(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조합,
1967년 25세 때 자크린 뒤프레와 다니엘 바렌보임(잉글리쉬 쳄버 오케스트라),
로스트로비치(The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이리 3개.
(비교 감상은 생략~~)

마이스키 연주엔 어딘지 모르게 엄격함 보단 자유 분방에 낭만적이다.
왜일까?
그의 인생 이력 때문은 아닐지.

형은 바이올린,누나는 피아노를 쳤다.
트리오을 맞추다 보니 마이스키는 자신의 키보다 큰 첼로를 잡았다.
14세에 당시 음악의 수도인 레닌그라드(현 쌍트페테르부르크)음악원에 들어갔다.
차이코프스크 콩클에서 우승하면서 당시 심사위원이였던 로스트로비치를 만나 러시아 음악원에 입학했다.

그러나 일이 터졌다.
피아니스트인 누나가 이스라엘로 망명을 한 것.
가족과 함께 2년간 강제 수용소에 수용됐다.
출소 후에는 군입대를 면하기 위해 정신병원에 입원해야했다.
결국 모스크바 음학원에 재입학이 거부되고 소련 정부의 허용 하에 미국으로 망명했다.
이때 스승 로스트로비치는 피아티코르스키를 소개해주었다.

이리 그의 가족사,개인사는 극적인 데가 있다.
그리고 와중에,당대 두 거장과 조우라는 운좋은 기회를 기막히게 포착도 했다


낭만주의 풍의 그림 전시회라면 첼로가 적격이다.
그리고 정통 해석의 로스트로비치 보단 마이스키가 더 좋다.
대상이 터너류(類) 작품이라면 백만불 조합이다.
현과 활의 밀착으로 만들어 낸 색체는 패널 여기저기 환상으로 퍼진다.

역쉬나  첼로 현에 빠지다 보면 마음이 가볍다.
영혼도 따라 가볍다.
그래서 일까?
타자에 스피드가 붙는다.


마지막 곡은 시계 교향곡이다.
1악장은 아다지오 풍으로 좀 무겁다 싶더니 갑자기 발랄해진게 좀 쌩뚱맞다.
그리고 2악장.

퉁~퉁~퉁~~~~

바순과 낮은 현의 피치카토가 단조로운 스타카토로 시계추의 음형을 만들어낸다.
연이여,미뉴엣 풍의 다감한 멜로디가 이어진다.
근심 걱정은 사라지고 기쁨만이 넘친다.


시계란 이름은 1800년대 초에 붙혀졌다.
당연 2악장의 규칙적인 리듬이 수없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시계는 하이든 교향곡이 20세기에 들어와 메이져 교향곡으로 자리잡게 한 곡이다.
20세기 초만 하더라도 하이든 교향곡은 마이너 신세였다.
토스카니니가 시계를 두번 녹음하면서 매니아층이 형성되었다.
이어 안탈 도라티가 전곡 녹음 하면서 세상에 빛을 보았다.

여담이지만,
난 시계가 101번 이란 걸 시계추가 좌우로 움직이는 형상으로 암기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어찌,,,,먹고 나니 11시다.
그동안 궁금했는데 상호는 체인점 커핀 그루나루~~~.




ps,뭉뜽그려 한번에 쓰려했는데,
     역시나 이리 길어졌습니다.
     길 샤암,장영주는 2편으로~~~~.




 


 
          하이든 첼로협주곡 1번1악장 모데라토/미샤 마이스키 연주
  

1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카루소
    '10.1.15 2:11 AM

    위 사진이 제일 맘에 들어요~*

  • 2. 들꽃
    '10.1.15 3:01 AM

    예술의 전당에 가면 wrtour님을 만날 수 있다~~~ㅎㅎㅎ

    감나무에 올망졸망 달려있는 감들이 마치 탁구공 같아요~

    예술과 문화체험을 온몸으로 느끼시는 wrtour님..
    끝없이 솟아나는 열정과 지식~ 참 존경스럽네요.

    비록 연주회는 가지 않았지만
    올려주신 글과 음악을 보고 들으니 마치 그곳에 다녀온듯합니다^^

  • 3. 캐드펠
    '10.1.15 3:10 AM

    wotour님!! 한참만에 뵙네요^^
    올리신 글 보면서 감탄사 연발하고 있습니다
    오리아짐님의 생각에 백번 고개 끄덕여요.
    멋진 감나무 사진 저두 맘에 들구요^^*

  • 4. 하늘재
    '10.1.15 3:28 AM

    8:30초 곱하기 3은 해야 겨우 일독~~ 이건 무슨죄에 해당 되나요?? 독자를 배려하지 않은 작가의 의무 소홀은 무슨형량을 받아야 하는지요,,,ㅎ
    앞으로는 짧은 Bar길이에는 긴~~곡으로 부탁...ㅎ

    넉넉한 까치밥과 휘영청 밝은달!!
    그리고 달콤한 케익이 먼저 눈에 들어 오는군요,,,!!

    음악회 후일담은 가끔씩 들러서 야금야금 소화 하겠습니다,,,
    하이든에게 감기는 행운 이었군요,,,
    맞아요,,
    세상만사 세옹지마!!

  • 5. CAROL
    '10.1.15 10:25 AM

    요즘 줌인줌아웃은 음악이 풍부해서 정말 좋아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접할 수 있고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오셨음을 짐작할 수 있는
    멋진 분들의 가슴 속 이야기들도 접할 수 있구요.
    덕분에 하이든하고도 좀 더 친해진 느낌입니다.

  • 6. 수늬
    '10.1.15 4:27 PM

    아주 잼나게 자알 읽었습니다~^^
    듣는것만 좋아하는 저는 가령..마이스키,하이페츠,기돈 크레머가 라트비아 출신이라던지..
    이런걸알고는 아하~어쩐지...했네요...^^

  • 7. wrtour
    '10.1.15 11:11 PM

    1악장 비교감상으로 올립니다.
    로스로비치,뒤프레&장한나
     
     

    Mstislav Rostropovich, CelloAcademy of St. Martin-in-the-Fields
     
    Jacqueline Du Pré, celloEnglish Chamber Orchestra Daniel Barenboim, cond1967년 녹음(뒤 프레 22살,바렌보임 25살)
     

    장한나

  • 8. 열무김치
    '10.1.16 12:45 AM

    허탈한 발걸음으로 차가운 집에 들어와 앉아 있었는데요... (혼자 우울모드..)

    wrtour 님 재미난 글 읽고 음악 크게 틀고 차를 진하게 우려 마셨습니다.
    그랬더니 무르익은 겨울이 초큼 예뻐 보이기까지하는 신기한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고맙습니다 !

  • 9. wrtour
    '10.1.16 3:58 PM

    오리아짐님~
    건강하시죠? 닉이 참 반갑네요올핸 꼭 건강하시구요
    그냥 즐기다 보니 오지랍이 넓어졌을뿐이여요^^

    카루소님~
    ㅎ사진이 그런가요,실은 나도 그리 생각했어요.
    좋은 음악,분위기 등등~~
    늘 감사합니다.^^

    들꽃님~~
    두어달 못가던거 연말 뭉뚱그려 갔답니다.
    존경스럽다니요,제가 들꽃님에 드려야할 말입니다^^

    캐드펠님~
    그리 되었나요,전 몰랐는데요,글 안올린 때에도 자주 들리는 편이구요.
    새해 건강하시구요.
    늘 감사~^^

    하늘재님~
    ㅎ시간까지 재셨나요.
    정말 다 읽으셨나봐요
    담은 걍 쭉 훑으세요~~^^

    캐롤님~~
    다양하다는거 좋은 거지요.
    다양성~~제가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올해도 건강하시구요~~^^

    수늬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네요~^^
    맞아요,악을 듣다보면 어떤 연골 고리를 통해 곡을 이해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열무김치님~~
    아고 무슨 허탈한 일이~~~
    아자,화이팅!입니다.
    음악으로 기분전환하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저 닉을 총각김치로 빠꾸려구요ㅎ~^^

  • 10. 살림열공
    '10.1.17 10:10 AM

    여전히 재미있게 쓰시네요. 음악 들으면서 읽으니 더욱 좋아요.

  • 11. 로즈버드
    '10.1.17 12:58 PM

    맞아요...예당에서 가장 멋진건 저 감나무예요.
    지난 한해동안 들락거리면서 잎이 피는 것부터 까치밥 되는 과정을
    모짜르트 카페에서 지켜보면서 자연 그대로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나이탓인지 그런 생각이 많이들고 예사로 봐지지 않았죠.
    글을 읽으며 하이든을 좋아했던 친구 생각이 나면서 젊은날 얼키고 설켰던 인연들...
    그리도 열정적으로 살았건만 현실앞에 힘들어하는 친구들도 떠오르고...
    하이든을 다시 찾아 듣네요...좋은 글 고맙습니다...^^

  • 12. wrtour
    '10.1.18 11:36 PM

    살림열공님~^^
    열공하셔 살림은 여전히 튼실하시죠?

    로즈버드님~^^
    언젠가 한번쯤은 오다가다 스쳤겠어요.

    두분 늘 감사합니다.
    금년도 만사형통하시구요~^^

  • 13. 변인주
    '10.1.21 3:27 AM

    백혜선씨 이름이 나와서 짬짝놀래 늦게나마 한줄 올립니다. (동명이인은 아니시리라고 생각되어)

    20여년전에 백혜선씨의 리스트연주회에서 그분의 해석과 태크닉에 그만 넋을 잃고.....
    소름이 돋는 팔을 쓸어 내리던 기억이 있어요.

    더 많이 피아노가 치고싶어 서울대교수자리를 내어놓으셨었댔는데 이젠 농익어 더 맘을 울리겠네요.

  • 14. wrtour
    '10.1.22 1:13 AM

    변인주님~
    안녕하세요.
    바쁘셨나봅니다,꾸벅~~^^
    김혜선,이혜선도 아니고 백혜선이 또 있으려구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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