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인부는 연장탓만 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 말이 사실이란 것을 가끔 느낄 때가 있는데요,바로 오늘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지난 번 제게 피아노를 가르쳐주던 중학생이 바빠서 더 이상 올 수 없다고 하니
어떻게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혼자서 쉬엄쉬엄 쳐보자고 했지만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다시 피아노로 대학을 가려고 준비하는 고등학교 일학년 여학생에게 부탁을 했더니
이주일에 한 번이라면 올 수 있다고 하네요.
오늘이 첫 수업이라 마음이 떨리더군요.미리 앉아서 연습을 하는데 어찌 두근두근거리는지요.
레슨을 받으려고 준비한 3곡을 치면서 날카로운 지적,악보를 보는 법에 대한 해설
박자개념을 어떻게 잡고 쳐야 하는지를 시범으로 보여주는 순간
아니 우리집 피아노 소리가 이렇게 좋았단 말인가! 귀가 새롭게 열리는 느낌이더군요.
한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어렵던 부분들을 해결하고 나니
시간의 상대성에 대해서 더 생각해보기도 했고,연장탓을 하지 않는 인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시간이었네요.

레슨이 끝나고 제가 좋아하는 바이얼리니스트 이작 펄만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바이얼린 협주곡을 조금
소리높여 틀어놓고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목요일,금요일의 소란스런 마음이 조금 진정이 되는 기분입니다.
일년동안 좋은 꿈을 꾸도록 해 준 아들이 본 시험에서는 그런 정도로는 실력발휘를 못해서
상당히 마음이 힘들었지만 본인은 더 괴롭겠지요?
그래도 작년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성적,마음을 비우고 결과를 지켜볼 생각입니다.

수유공간너머에 가는 월요일,그 곳에서 일본어강독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고민을 말했더니 마침 참가자중에서 꼭 1시반을 고집했던 사람이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다른 멤버들에게 연락해보고 가능하면 시간을 옮겨보겠다고 하더니 어제 연락이 왔네요.
3기수업이 가능하다고요.
읽는 책이 가라타니 고진이라고 일본출신의 세계적인 사상가로 알려진 인물의 탐구를 일본어원서로
읽는다고 합니다.공연히 어려울 듯해서 그의 번역서도 한 권도 읽지 않은 제게
일본어로 그의 책을 읽는 일이 너무 부담이 되는 듯해서 말을 했더니
모여서 함께 읽는 사람들도 대부분 일본어초보자인데 리드하는 분이 아주 적절한 도움을 주기 때문에
마음하나로 족하다고 격려를 하네요.전화를 받는 분이

이번주,다음주까지는 우선 세계공화국으로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된 그의 책을 두 주에 걸쳐서
읽고,그 다음에 탐구를 시작한다고 하는데,공부시작하기 전 일종의 워밍업으로 일본중학교 수준의 책을
소리내어 함께 읽는다고 메모가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혹시 일본어 공부에 관심이 있지만 혼자서는 무리라고 생각해서 망서리는 분들이 있다면
월요일 수유공간너머의 모임에 참석해보면 어떨까요?
혼자서는 어려운 일도 여럿이서 함께 하면 오래,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앞으로는 월요일,수유공간너머에서 아주 긴 시간 있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어제 밤 음악회에서 만난 ak님이 제게 물어보더군요.
왜 자본론을 읽는가,책이 지루하고 어렵지 않은가하고요.
물론 어렵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부분도 많아서 제 방식대로 조금 쉽게 설명된 책을 두 권 골라서
미리 읽어보고 있습니다.그것이 다음 단계로의 이해를 돕는 큰 역할을 하더군요.
만약 무슨 일에 직접 다가가기 어렵다고 생각할 때 그자리에서 포기하는가,방식을 달리해서
여러 단계를 거쳐서 그 곳에 도달하려고 하는가,아니면 조금 더 잘아는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받을 것인가,방법은 하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연장탓을 하기 전에 나는 얼마나 서투른 인부인가를 생각하면서 시작한 일들에 마음을 담아서
해나가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