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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편지

| 조회수 : 2,554 | 추천수 : 94
작성일 : 2009-11-14 13:24:32
경미야

오늘이 너의 17번째 맞이하는 생일이다.
축하한다. 많이 축복해주고 싶은 마음 네가 헤아릴 수 있겠니?
앞으로도 더욱 건강하고 지혜있는 숙녀가 되어주기를 믿는다.
우리 비록 모든 것에 결핍된 생활 속에 살지라도 정신은 한없이 풍요롭게 가지고 밝은 내일 향해 열심히 노력하자.
이 엄마는 늘 마음이 너를 향해서 옥심의 채찍이 고개를 들고 좀 더 노력하고 노력해서 모든 사람의 선망의 대상이 바로 경미였으면 하는 바램뿐이다.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다지만 그래도 경미만은 최소한 자기 인격을 원만히 갈고 닦아서 어디에 가서 서있드라도 밝고 명랑하고 참된 사람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책상 위에 써놓은 것과 같이 너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자기를 개발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를 학대하고 있을 뿐이다. 엄마는 그래서 안타깝고 막 속이 상한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최대한 적응하여 자기를 훌륭히 다음어가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겠니.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끼고 기대하는 네가 왜 자꾸만 엄마를 속상하게 하는지 화가 난다.
누구보다도 너만은 지혜있는 올바른 사고력을 펼치어 나갈 줄 아는 똑똑한 딸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자꾸만 엄마의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같아서 이 엄마는 한없이 서글퍼지고 삶에 회의를 느끼곤 한다.
거듭 부탁한다.
엄마가 바라는 귀여운 딸이 되어 주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너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주춧돌이 되는 것이라는 것 명심하기 바란다.

1982.8.9 엄마가


27년 전 엄마가 한참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제게 쓰신 편지에요.
오늘은 몸살 기운이 심해서 일도 대충하고 쉬다가 문득 어린 시절 앨범을 한번 들여다보았어요.
거기에 제가 끼워놓은 엄마의 편지가 있네요.
색도 바래고 잉크도 희미해진 엄마의 편지이지만 왠지 엄마의 체취가 스며있는 것처럼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17살짜리 딸이 무언가 엄마 속을 썩이고 있었나 봅니다.
기억은 안나지만 엄마의 고민이 곳곳에서 보이네요.
우리 큰 아이와 꼭같은 나이의 제 모습이 엄마의 편지에 그대로 들어잇는 것같아서 묘한 감동이 올라옵니다.
엄마도 이렇게 고민했구나. 엄마도 삶의 회의를 느낄 때가 있었구나.
요즘 사춘기 딸들 셋을 한꺼번에 당해내면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이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우리 달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는, 아니 어쩌면 훨씬 더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해드린 딸이었나 보다 하는 송구함이 올라옵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입은 이만큼 나와 반항하던 외동딸을 엄마는 얼마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을까요.
어쩌면 내가 날마다 갈등하는 엄마로서의 욕심을 엄마는 30여년 전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면서 세대를 뛰어넘는 모든 엄마들의 고뇌를 봅니다.
엄마가 늘 저에게 그러셨어요. 2% 부족하다고요.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같은데 안하려고 한다고요.
제가 요즘 우리 딸에게 꼭같은 말을 하는 줄을 이 편지를 읽기 전에는 몰랐어요.
딸의 부족함을 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엄마의 욕심은 대대로 전해지나 봅니다.
엄마는 그 욕심을 어떻게 잠재우셨을까요.
하나 밖에 없는 달이 '자꾸만 엄마의 시야에서 벗어나려고 해서' 마음아파하는 엄마의 모습이 오늘 나의 모습인가 봅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의 품을 떠나려는 준비를 하는 것이 기특하고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 한편이 쓸쓸해지는 것이 엄마의 마음인가 봅니다.

오늘은 큰 아이가 학교에서 웅변반 기금모금 행사에 간다고 저녁에친구들과 함께 식당에 갔어요.
쇼핑몰 안의 식당 앞에 내려주고 오는데 기문이 묘하더군요.
그동안도 몇 번 친구들과 나간 일이 있었지만 우리 집에서는 극히 드문 일이에요.
저희 집이 아이들 외출에 엄해서 아이들끼리만 밤에 나가는 것을 여간해서는 허락을 안해주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학교 행사라서 보내주기로 하고 아이를 내려주고 돌아오는데 마음이 쓸쓸했어요.
좋아라 친구들에게 뛰어가는 큰 아이의 뒷모습이 오래 전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나올 때 그 기분이었어요.
나는 마음이 조마조마한데 아이는 엄마와 너무나 잘 떨어져서 얼른 장난감이 있는 데로 가던 그 모습에 아이가 갑자기 훌쩍 커버린 것같은 기분이 들어 대견하면서도 아쉬운 그런 기분이었어요.
오늘 큰 아이가 숙녀같은 모습으로 식당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아이가 우리 품을 떠날 그 순간이 2년 밖에 안남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엄마 생각이 났지요. 엄마도 그러셨을까요.
엄마의 시야에서 자꾸만 벗어나려는 나를 보시면서 엄마도 아쉬웠을까요.
행사가 끝나고 데리러가니까 큰 아이는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옆 자리에서 계속 조잘조잘 얘기를 하고 자기가 산 친구 생일 선물도 보여주고...이렇게 많이 자랐더군요.
엄마 손을 붙잡고 가지 않아도 혼자서 다 돌아다니고 제 앞가림할 나이네요.
나의 시야를 완전히 벗어날 순간이 오면 나는 어떻게 아이를 보내줘야 하는지 벌써부터 가슴이 먹먹해요.
엄마는 바다 건너로 딸을 보내면서 어떤 마음으로 그 순간들을 지나가셨을까요.
시야에서 벗어나는 정도가 아니라 보고 싶어도 아무 때나 볼 수도 없는 곳으로 딸은 와버렸으니 말이에요.
엄마의 편지를 읽다가 눈물이 나서 행여라도 눈물이 떨어져서 글씨가 번질까봐 깜짝 놀라 닦았는데 그래도 자꾸 눈물이 나네요.
몸살 기운이 있어서인지 엄마가 참 많이 보고 싶은 날이네요.
엄마 손맛이 묻은 잡채 한 그릇이 그리운 밤입니다.



4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들꽃
    '09.11.14 4:38 PM

    엄마라는 이름은 참 아름다운 이름이예요.
    늘 자식이 잘 되시길 바라시는 분.
    늘 노심초사 바라보시는 분.

    생각만해도 눈물나는 이름 엄마~

    잘 사는 모습 보여드리는게 그런 엄마에 대한 보답이 될것 같은데
    저는 마음만 자꾸 앞서가고 실천으로 행하지를 못하고 있네요..

    동경미님^^ 엄마손맛 대신 맛있게 잡채해서 드세요..
    엄마 생각나시면 맘껏 우시구요.

  • 2. 캐드펠
    '09.11.15 3:50 AM

    저두 열다섯 중학생 딸아이가 사춘기로 접어드는 시기라서 항상 마음 졸이며 키우는데
    동경미님 마음이 제 마음이네요.
    저는 울엄니께 잡채 해드려야 겠네요^^*

  • 3. 소박한 밥상
    '09.11.15 3:55 PM

    부모님의 편지는 내용에 상관없이 글씨체가 눈에 뜨어도
    가슴이 저릿저릿하고 덜컹하지요.

    엄마와 이렇게 마음을 소통해 보질 못한 분들도 많을텐데
    그런 점에서도 님은 행운이십니다

  • 4. 동경미
    '09.11.16 10:25 AM

    들꽃님,
    주말에 잡채해서 실컷 먹었네요^^
    엄마가 해주시던 그 맛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남편과 둘러앉아서 외할머니 얘기도 해주면서 먹으니 흐믓하더군요.
    저도 엄마 마음에 들만큼 잘 살아주는 것을 못하고 있는 딸이에요 ㅠ.ㅠ

    캐드펠님,
    사춘기 딸들 키우는 엄마들 정말 도 닦는 심정이지요? ㅎㅎ
    딸을 키우면서 비로소 엄마 마음을 잘 알 것같더군요.

    소박한 밥상님,
    부모님 글씨체, 정말 보기만 해도 눈물이 핑~
    엄마가 저를 키우시면서 편지를 많이 써주셨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저의 큰 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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