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섯에 로스쿨에 입학하여 1학년을 마친 작년 가을, 남편과 제가 동시에 직장을 잃었었습니다. 네 아이들을 데리고 살 길이 막연하여 눈물을 길에 뿌리면서 다니다가 어느 날 학장님을 찾아갔습니다.
쌀값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이니 휴학을 해야겠다고 했더니 칠순을 바라보시는 학장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뜬금없이 저에게 약속을 하나 해 줄 수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어리둥절해있는 저에게 학장님은 앞으로 다시는 돈이 없어서 공부를 포기하겠다는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냐고 하셨습니다. 당신처럼 선한 일을 하기 위해 이 길에 뛰어든 사람을 학교가 잃을 수 없으니 2학년 학비를 걱정하지 말고 공부에만 열중하라고 하시는 학장님 앞에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
니다.
6개월동안 실직 상태가 계속되다가 다행히 연말에 저는 다시 취업이 되었지만, 남편에게 재취업은 어려웠습니다. 결국 남편은 직장을 찾는 일을 포기하고 하던 사업을 다시 일으켜보느라 아직도 애쓰고 있는 상황이고, 이번 가을에 대학에 입학하는 큰 아이도 있으니 학장님을 통해 받은 축복의 기쁨은 어느 새 사라지고 또다시 걱정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큰 아이가 지원한 대학에서 전액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었습니다. 학비 뿐 아니라 기숙사비, 책값, 식비, 그리고 매월 용돈까지 학교에서 부담하겠다고 하니 놀라운 기적이라고 온가족이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그 기쁨 속에서도 3학년을 등록해야 하는 저의 마음 한구석에는 맷돌 하나가 얹어져, 저의 학비에 대한 걱정으로 또다시 잠을 못 이루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내가 늘그막에 공연히 공부를 시작해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에 가족들에게 미안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난 주에는 걱정이 극에 달해 아무리 알아봐도 해결이 안되면 아무래도 학업을 잠시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또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학장님께서 전화를 하셨습니다. "미세스 동, XX 재단에서 당신에게 3학년 전액 장학금인 $11,000 을 수여하기로 결정했고 이번 토요일 우리 학교 졸업식 진행 중 장학금 수여식을 할 것이니 참석하세요! 축하합니다!"
내가 뭔가 잘못 알아들은 것같아 말을 더듬으면서 물었습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요? 제가 전체 1등도 아닌데요? 우리 학교는 1등에게만 장학금을 주잖아요?" 학장님은 예전처럼 껄껄 웃으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 다 이루어집니다! 당신은 자격이 있어요!"
기도하면서도 설마 하던 사라의 믿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학장님의 말씀이 새겨집니다. 기도하면 다 이루어지는 것인데, 정말 저는 쓸데없이 걱정만 하고 있었던가 봅니다.
어제 로스쿨 졸업식 제일 마지막 순서로 저에게 장학금 증정식이 있었습니다. 졸업생들의 잔치인데, 오히려 저에게 모든 관심과 격려가 쏟아지는 아름다운 자리였습니다. 저에게 장학금을 주는 재단은 제가 지난 학기에 수업을 들은 법철학 교수님의 돌아가신 사모님을 기리기 위한 장학 재단인데,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사모님의 정열과 사회 봉사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학생을 선정하셨다고 합니다.
법철학 강의가 정말 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과목이었고, 매 수업마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따라가기가 힘들어서 이러다가 과락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악몽도 여러번 꾸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저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시면서, 칠순을 넘기신 교수님께서는 당신이 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셨다는 감동의 메세지를 주셔서 저와 참석자들의 눈시울을 기어이 젖게 하셨습니다.
식순서가 끝나고 돌아오려는데 학장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이 넷에 풀타임 직장을 가지고도 공부할 수 있다면, 당신은 분명히 남을 제대로 도울 수 있는 사람입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꼭 졸업하고 가슴이 따뜻한 변호사가 되어주세요! 당신을 졸업시키는 게 우리 모두의 목표입니다!"
엄마가 공부한다고 수많은 시간과 관심을 양보하고 오히려 엄마를 이해하고 도와주었던 고마운 딸들, 그리고 아내의 빈 자리를 묵묵히 불평 한 번 없이 채워주면서 물심양면 학업을 돕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남편, 나이 들어 공부하겠다는 며느리 건강 해치면서 공부할까봐 좋아하는 반찬 아낌없이 만들어 보내주시고, 학비도 도와주셨던 시어머니, 공부하느라 남동생 내조 제대로 못하는 올케 밉상일 수도 있건만, 늘 격려를 아끼지 않으시는 시누님들, 그리고 새벽기도로 도우시는 친정 부모님...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잘 것없는 동양 아줌마를 믿어주시고 도와주시는 고마우신 학장님...어찌 제 혼자 힘으로 가능하겠습니까. 저는 그저 이 분들이 차려놓으시는 상에 저의 수저 한 벌만 놓고 거저 먹는 기분입니다.
그토록 가슴 졸이던 3학년 학비가 해결되었으니, 이젠 정말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 남아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마세요. 뜻이 있으면 반드시 길이 생겨납니다. 사막에도 길이 나고, 마른 땅에도 오아시스가 솟아납니다!
큰 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우리집의 보물들을 찍어보았습니다^^
셋째의 중학교 졸업사진이에요. 참 많이들 컸네요. 이렇게 때로는 힘든 속에서 메마른 사막 길을 걸어가는 듯 하다가도, 기대하지 않은 오아시스의 맛을 보기도 하면서, 지쳐도 아주 쓰러지지는 않으면서 우리의 인생은 잘 흘러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