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오후부터 수요일 오전까지가 우리 동네의
분리수거시간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분리수거하러
매주 나가는 일이 쉽지가 않네요.
매주 해야지 마음만 먹고 사실은 한 달에 한 번 많으면
두 번 그렇게 들고 나가니 아무래도 양이 많아서
서너번 오르락 내리락 하게 됩니다.
나쁜 버릇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왜 쉽게 못 고치는 것일까
고민하다가 문득 오늘 든 생각,왜 꼭 한 주에 한 번씩
내놓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가,그런가 그래도 쌓여있는
것을 보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니까 그래도 매 주 하는것이
옳은가 ,그런데 왜 그것을 옳고 그르고의 관점으로 보는
것일까,그저 편한가 편하지 않은가 그렇게 보는 것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 분리수거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이리저리 번진 날,그렇게 몸을 쓰고 나서
늦은 점심을 먹고 수업하러 나가기 전 조금 여유있는
시간에 나윤선의 노래를 조금 크게 틀어놓고
그림을 보러 들어왔습니다.

어제 저녁 읽던 청소년용 책 문화교양에서
바로 이 그림을 도판으로 만났습니다.
아,반갑구나 저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그림
세례요한의 모습이라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제목을
붙였지만 제가 오래 전에 읽은 성서에서의 세례요한과는
뭔가 다른 느낌의 세례요한이지요.
그래도 이 그림을 처음 루브르 박물관에서 만난 순간
왜 사람들은 모나리자 앞에서만 서성거리는 걸까
이렇게 강렬한 그림을 놓아두고
저 혼자서 흥분하면서 그 앞을 독차지하고
오래 오래 그림을 보던 그 시간.
그 이후 레오나르도 다 빈치하면 저는 이 그림을
먼저 생각하게 되었는데요,이 책과
그리고 다른 한 책에서 표지도판으로 이 그림을 선택한
책이 있어서 공연히 그 책을 더 반갑게 읽던 기억도 나고요.

이 그림이 그려진 연도가 1500년
아직 종교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화가는 마치
우리보고 화가인 나를 잘 쳐다보라고 권하는 것처럼
앞을 똑바로 보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오직 예수만이 이런 정면상으로 그려질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화가가 (아직은 장인으로 취급되던 화가가)
자신의 초상화를 정면으로 그리게 되었다는 역사적인
그림이지요.뒤러의 초상화를 보다가
오전에 들은 강의에서 데카르트의 생각하는 주체라는
개념이 데카르트 개인의 창조물이 아니라
당시에 그렇게 생각의 주체로서의 자아에 대한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다만 그것을 조금 더 깊게 생각해서 철학의 주제로
자리매김한 것이 데카르트의 힘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바로 그 시기에 초상화가 널리 퍼지게 된 것도
그런 인식과 닿아 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초상화,혹은 자화상에 대해서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는군요.


화가가 살았던 시절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보는 중인데요
사실은 글속에서 만난 것이 전부이지만 자주 만나다보니
마치 조금은 친숙한 시절처럼 느껴져서 재미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