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연말에 여행을 다녀오면 연초까지 정리를 마치고
그 다음에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언제 다녀왔는가 싶게
새롭게 한 해를 출발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참 이상하군요.
날이 지나도 새록새록 기억나는 것이 많아서
서양사 책을 읽다가도 어라,바로 이베리아 반도의 이야기가
이렇게 연결된단 말이지,바짝 다가서서 줄을 그어가면서
읽어가게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오늘은 여행 뒤풀이치곤 너무 근사한 곳에서
유로 자전거나라의 짱가이드님과 만나는 자리가 마련되었는데
맛갈스런 음식을 앞에 놓고도 너무 재미있는 이야기에 취해서
음식맛보다 오히려 이야기속으로 끌려들어간 날
그래도 뒷시간 수업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쉬운 자리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오늘 밤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이
역시 소피아 미술관에서 관심을 끌었던 작품들입니다.
스페인으로 떠나기 직전 우연히 빌려서 본 책중에
스페인의 빌바오,그리고 바르셀로나에서 볼 수 있는
미술관을 소개한 글이 있었습니다.
평소때라면 아마 가서 볼 수도 없는 미술관이니 훌러덩
넘기면서 그림을 보았을텐데 관심이 생겨서 자세히 읽어보았지요.
그런데 바르셀로나의 일정이 빠듯해서 과연 이 사람이
추천하는 미술관중에서 과연 갈 수 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까 의심을 하긴 했어도 머릿속으로 저장을 하고
떠났습니다.기회가 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가 보자하고요.
그 중 한 곳이 타피에스 미술관이었습니다.
그를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시청앞의 프레스 센터에서 열린
오래 전의 전시회에서였는데 그 때 강한 인상을 받아서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지요.
소피아에서 그의 그림을 만나자 반가웠는데 바르셀로나에서
시간이 나서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 갈 기회가 생겼고
그 곳에서 하고 있던 특별사진전까지 볼 수 있었으니
바라는 사람에겐 기회가 오는 것인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습니다.
더구나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서는 다양한 그림이 걸려있어서
화가의 변화과정을 볼 수 있었고,동영상으로 최근의 작업을
볼 수 있어서 더욱 도움이 되었습니다.
마띠에르,오브제 이런 식의 표현을 처음 미술사책에서
읽었을 때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그 말이 수상하고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material,object를
불어로 발음하는 경우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나서
뭐야 하던 기억도 나고요.
마띠에르가 어떻게 저떻고 할 때 캔버스에 물감을 어떻게
두텁게 발라서 질감을 느끼게 하는가,혹은 물감이외에도
예를 들어 모래나 다른 재료로 질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작품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환기하는 느낌은
무엇인가 ? 그런 생각을 하면서 화가의 작업을 바라보던
시간이 아련하군요.



신기한 일이네요.그림을 검색하다보니 제가 거의 매일
들어가다시피 하는 싸이트에 레이나 소피아의 소장작품이
올라와 있는 겁니다.
이번에 새로 소개된 것인지,아니면 이미 기존에 있었는데
모르고 있다가 눈에 들어온 것인지
후자라면 참 놀라운 일이겠지요?
같은 눈이라도 관심에 따라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소피아 미술관에서 반가운 마음으로 만난 화가중의 한 명이
후안 그리입니다.
큐비즘에 관한 글을 읽다가 만난 화가인데요
그가 그린 피카소의 초상을 비롯한 몇 점이 제 기억에 남은
화가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그의 그림을 이렇게 한자리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곤
상상도 못하다가 갑작스럽게 여러 점을 보게 되어서
기뻤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사온 책자로 그에 관해서 읽어보니 원래 마드리드 출신이네요.
역시 그도 파리로 가서 큐비즘의 세례를 받게 되는데요
브라크나 피카소와는 달리 완전한 해체에까지 이르지는 않고
구체성을 간직한 그림을 고수했다고 하는군요.
일종의 질서를 나름으로 지킨 것이라고 할까요?


황경임씨와 둘이서 그림을 보러 다니다가 마음에 와닿아서
한참 들여다본 조각들이 있습니다.
훌리오 곤잘레스라는 낯선 이름의 조각가인데요
출신은 스페인이지만 나중에 공부는 파리에서 한 조각가라고
합니다.
당시 거의 모든 예술가 지망생들에게 파리가 꿈의 고장이었다는
말이 이 곳에 와서 실감이 났습니다.
물론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돌파구가
필요한 화가지망생들에게 파리는 얼마나 매혹적인 곳이었을까요?

그의 이력을 보니 금세공사 집안에서 태어나서 처음에는
그 직업을 위해 훈련을 받다 바르셀로나에서 피카소가
드나들었다는 4cats 라는 카페에도 발을 들여놓았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1900년 파리로 가서 그 곳에서 역시 금세공사 일을
하면서 화가로서의 앞날을 모색했다고요.
그러다가 조각에 흥미를 느껴서 로뎅이나 근대적인
조각가들의 작업에 흥미를 느끼면서 정진했다고 합니다.
그는 용접기술을 배워서 피카소와 함께 작업하던 시기에는
작업에 용접기술을 응용하기도 하고,큐비즘의 영향하에
작업이 점점 추상적으로 변해갔다는군요.
아하,그래서 이제 이해가 되는 측면들이 생겨서 신기합니다.


이 조각의 제목이 다프네로군요.
제목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신화속의 다프네를 그는 이렇게 형상화했구나 싶어서요.

오늘은 이만 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 그림을 닫으려고
하다가 이렇게 소피아 미술관의 그림이 제대로 정리가
되어있다면 혹시나 싶어서 다시 소니아 들로니 그림을
검색해보니 역시 올라와 있군요.
한 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색이 잊혀지지 않던 그림이라서요.

이렇게 분류 정리해서 올려놓은 사람들의 노고 덕분으로
한 자리에 앉아서 그 시간을 회상하면서 그림을 다시
볼 수 있다니 정말 놀라운 세상이로구나 감탄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마침 엘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와 the daily peter drcuker를
동시에 읽고 있는 중인데 그들이 말하고 있는
이미 와 있는 변화된 사회에 대해서 실감을 하는
날들이기도 하군요.
일상에서 변화를 이렇게 실감하고 있다면 사실은
이미 그런 변화가 진행되어 앞으로 나가고 있는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