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드리드를 떠나야 하는 날,(27일)
오전 스케쥴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쓰는가 하는
문제로 한참 논의를 했습니다.
아무래도 명품이 많다는 이 곳까지 와서 쇼핑도 해야 하고
미술관도 가야 하는 사람과 그냥 미술관으로 가기로 한 사람
이렇게 시간은 모라자고 하고 싶은 일은 나뉘는 상황에서
오늘도 역시 점심은 제대로 먹기 어렵고
소피아에서 두시에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저와 황경임씨 둘이서 소피아 미술관으로 갔는데요
처음 들은 이야기로는 두 시간 반 정도면 그림을 대강
볼 수 있을 것이란 말에 느긋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어라,그림이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겁니다.
아니,이럴수가 ,이렇게 느긋하게 보다가는 제대로
못 보는 작품도 많겠다 싶어서
어느 방에 누구 그림이 있나 도면을 살펴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현대미술사책에서 이름을 읽은 적이 있는 화가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는 겁니다.
처음에는 이름이 낯선 스페인화가들의 그림을 만나기
시작했지만 갈수록 낯익은 화가들의 그림이 눈앞에
등장합니다.
달리의 젊은 시절의 그림,후앙 미로의 그림들
(바르셀로나에서 미로 미술관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일정이 아직 불투명한 상태에서 이 곳에서 만나는 미로는
얼마나 반갑던지요)
앙드레 마송,로베르 들로네,조지 브라크,피카소,후안 그리
그리고 페르낭 레제의 그림까지
아는만큼 황경임씨에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고
제 나름으로 끌리는 그림앞에서 조금 더 있기도 하면서
방을 바꾸며 전진을 하다보니 드디어 게르니카앞입니다.
마침 일본 여행객들이 가이드의 열정적인 설명앞에서
고개를 주억거리면서 듣고 있는데
가이드가 하는 설명중에 아노 우시노 메,프랑코 쇼군
그리고 피카소가 왜 이 그림을 그리게 되었나 하는 배경설명과
전등의 의미에 대한 해설들이 귀에 들려오는 것이 신기해서
한참을 서서 들었습니다.
그리곤 짧은 일본어로 한국인인데 설명하는 곳에 끼어서
덕분에 잘 들었다는 인사를 마치고 둘러보니
일행인 황경임씨가 보이지 않는 겁니다.
왜 먼저 갔는가 물으니 옆에 있으면 제가 신경쓰여서
일본어 설명을 다 못 들을까봐 그랬다고요.
아,이 사람은 하고 이런 배려에서 사람이 읽혀지는 것을
느낀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게르니카를 그리는 과정을 사진으로 찍은 자료가 있어서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피카소가 어떻게 처음 구상과는 달리 작품이 완성되는 과정에서
여러번 수정을 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진을 찍은 사람은 당시 피카소의 애인이었던
사진작가라고 하네요,도르 마라인가 도라 마르인가
갑자기 이름이 헛갈리는 ,헤어지기 전에는 우는 여인의
모습으로 그림속에 남은 여성이기도 하지요,
그녀의 사진을 보다가 갑자기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피카소의 여자들이라,
surviving picasso라는 책을 쓴 여성이 생각납니다.
피카소와 한 시기를 함께 하고 자식도 낳은
그녀 자신도 화가였던 그녀는 결국 피카소를 떠났고
자신이 그를 떠나고 나서 한 인간으로 살아가게 된 것을
survive란 말로 표현을 했었던 것인데
이 책을 대본으로 만든 영화가 바로 피카소이지요.
그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이런 저런 생각들이 게르니카
작업을 찍은 사진앞에서 갑자기 와락 몰려드는 경험을
하기도 했지요.

소피아 미술관에서 유명한 그림들을 많이 만난 것도 좋았지만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활동한 화가들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좋았습니다.
다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한 층을 포기하고
아트 샵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서 이 곳 미술관의 주요작품 80점을 골라서 소개하는
영문판 책자를 하나 구했는데
요즘 한 두 작품씩 소개글을 읽으면서 알아가는 재미를
누리고 있는 중이랍니다.
언젠가 가서 다시 볼 기회가 있을지 없을지
그것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마음에 품고 있다보면
기회가 올 수도 있고,그 곳에서 못 만났지만 다른 곳에서
또 그렇게 애석하게 놓친 화가들의 그림을 볼 수도 있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
일요일 밤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틀어놓고 (everymonth의
디제이 캘리님이 올리신 음악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거든요) 스페인 화가들의 그림을 검색해서 찾아보는 중인데
아무래도 자료가 빈약해서 쉽사리 마음에 드는 그림을
발견하지 못해서 애태우고 있는 중에
미술관에서 보았던 인상적인 그림 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rafael barradas란 화가인데요 그는 색깔을 통해
도시의 소란스러움,도시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의 그림에 붙은 이름이 vibrationism이라고 하니
이탈리아 화가들중 미래파를 결성해서 차의 속도,군중의 '
움직임등을 표현한 보치오니등의 그림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보다는 그래도 그림속의 움직임은 덜 한 느낌이네요.
살바도르 달리,그가 스페인 출신의 화가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같은 초현실주의 그림이라도 미로작품은
마음을 열고 보게 되는데 달리는 끌리지 않아서 미적거리고
있는 화가입니다.
그런데 소피아에서 만난 초기 달리의 작품을 여러 점 보다보니
어느새 아하,소리를 내면서 그에게 다가가고 있는 저를
발견했답니다.
나중에 아트 샵에서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중에
달리의 이야기도 한 권 구해올 정도 되었으니
상당한 진전이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의 초기작품을 보면서 그가 색을 능숙하게 다루는
화가란 느낌이 팍 오더군요.
사이버상으로는 그 느낌이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아서
안타깝네요.

그림을 검색하다 앞에서 본 그림처럼 등을 우리에게 돌리고
앞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 그림을 발견했습니다.
이 작품은 물론 소피아에서 본 작품은 아니고요
인터넷에 올라온 작품중에서 눈길을 끌어서 바라보고'
있는 중이거든요.
소피아 미술관에서 직접 그림을 보아서 행복했던
소니아 들로니의 그림입니다.
물론 이 그림이 그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닌데
작품을 찾을 수 없네요.
그녀는 로베르 들로니의 부인이기도 한데 작업을
통해서 서로 닮은 점,서로 다른 점들이 보여서 재미있군요.
요즘 방학이고,월,수,금 오전중에 평소와는 달리
한국사,세계사 특강이 있고 그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영어수업이 있는 바람에 느긋하게 쉬면서 그림을 뒤적일
정신적인 여유가 없어서 아쉬웠는데
오늘 밤 이렇게 마음을 확 끌어당기는 원색의 향연을 보면서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마음속에 평화로움이 차오르는
느낌이 드는군요.
이 그림은 로베르 들로니의 것인데요
그들에 관한 글을 읽어보니 한동안 마드리드에서
산 적이 있었더군요.
물론 그래서 그들의 그림이 소피아에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얼마나 반가운 마음으로 그 앞을 서성였는지 모릅니다.
로베르 들로니의 그림을 실제로 보게 된 것은
퐁피두 센터에서였는데 그의 색에 끌려서 포스터 한 장을
구해왔지요.
당시에 여러 장의 포스터를 구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한 장씩 선물을 했었는데 제가 고른 것은 로스코,
나머지는 아는 사람들 집에 아직도 걸려 있어서
상상하는 재미를 누리기도 하고 실제로 그 집에 가서
그림을 보기도 하게 된답니다.
그런 인연으로 그림이 걸려 있는 집은 더 정이 가는 것
이해가 되지요?

한동안 큐비즘에 경도된 들로니에게서 나온 에펠탑입니다.

이 작품은 블레리오에게 경의를 이런 제목을 달고 있는데요
블레리오는 당시 비행을 성공시킨 비행사라고 하네요.
1914년작이니,이 당시 과학기술이 발전하여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 대해서 화가가 느낀 경이로움이
이 그림에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네요.
그림을 잘 보면 비행기를 연상시키는 모습들이 나타나는군요.
독일에서 활동하던 칸딘스키,프란츠 마르크등이
로베르 들로니를 만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기록을 읽으면서 당시 유럽에서 활동하던 화가들의
삶을 상상하던 시간이 생각나네요.
그런데 이렇게 미주알 고주알 쓰다가 그림을 보다가 하면
다른 일은 손에 잡을 수가 없을 듯하니
소피아 미술관 관람 소감,다음 번에 다시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