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스페인어가 자국의 언어라 해도
세계의 여러나라 사람들이 다 찾아오는데 영어지원이
이렇게 거의 없는 미술관이라니 조금 화가 났습니다.
우선 화가 이름을 스페인어로 적어놓으니
누가 누구인지 한참 들여다보아야 이해가 되는 적도
있었지요.
그래도 틴토레토,베로네제의 그림들을 그 곳에서
많이 만났습니다.
그들의 그림은 벨라스케스가 펠리페 4세의 주문으로
이탈리아에 가서 구입한 그림의 목록에 들어있는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상당히 여러 점이 있더군요.
성화에서는 렘브란트에서의 강렬한 인상을 제외하면
그렇게 크게 끌리지 않는 상태라
오히려 틴토레토의 초상화 한 점에 눈길이 갔습니다.
그 방에서 과학적인 눈으로 그림을 보는 것에 대한
지점장님의 설명을 듣다가
그래도 내 나름으로 그림을 보고 싶어서
방을 휘적이고 다니다 한 점의 초상에 붙들리게 되었습니다.
다시 찾아보려고 들어왔으나 역시 프라도의 그림은
인터넷상에서도 지원이 잘 되지 않네요.
혹시나 하고 프라도 미술관에 직접 들어가보니
15작품을 마스터 피스라고 올려놓았습니다.
그런데 뒤러의 이 자화상은 다른 곳에 대여를 한 모양이라
직접 볼 수 없어서 심히 유감이었답니다.


시간이 모자라 거의 뛰다시피 하면서 찾아나선 그림중의 한 점이
바로 렘브란트의 아르테미시아인데요
그 그림앞에 선 순간,누군지 모를 왕에게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 그림을 수집하도록 허용한 ,참 신기한 기분이더군요.
누군가의 선택으로 인해 마드리드에서 이 그림을 볼 수 있다니
그런 생각을 하면서 감사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오는 순간이
지금 소개하는 그림들은 프라도가 자랑하는 15점의 마스터 피스인데요
이 그림앞에서 우리의 가이드인 스페인 자전거나라 지점장님은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서 설명을 해주더군요.

농담이지만 고흐와 고야가 같은 고씨라고 생각할 정도로
그림에 대해서 무지했다고 고백했던 사람이
일로 인해서 이렇게까지 그림에 대해 연구하고 설명할 수 있다니
신기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그림은 웬디 수녀의 그림이야기에서 처음 만난 이래로
이런 저런 미술사책에서 자주 만나게 되면서 정이 든
그림중의 한 점이기도 하지요.
그래도 제대로 된 그림앞에서 설명을 들으면서 보는
그림은 이제까지 보지 못하던 것들을 많이 드러내보여주었습니다.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처음으로 설명을 들은 작품인데요
물론 도판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그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위만 기억날 뿐 그림아래에 일렬로 그려진
다른 그림들은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어서 신기했습니다.
색감이 뛰어난 화가,그것보다는 신앙심이 깊었던 수사
그래서 그의 이름에 천사라는 의미의 안젤리코라는 별명이
붙었다는 그,더 한 직책이 주어져도 거절하고 자신이
역량에 맞는 일을 통해 하느님을 섬기겠다는 마음을 비친
제대로 된 인간이란 점에서 그림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관심이 가는 사람의 그림을 보는 일은
역시 즐거운 시작이었답니다.

나가야 할 시간은 가까워오고 아직 다 보지 못한 루벤스,
그리고 다른 화가들의 그림은 어쩌란 말인가
마음이 조급한데 케롤님이 부릅니다.
여기 루벤스가 있어요라고요
어디요? 바쁘게 가서 만난 그림이지요.
루벤스 말년의 완숙기의 그림을 펠리페 4세가 많이 구입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프라도에 루벤스의 좋은 작품이 그렇게 많았다니
아이러니란 바로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시간이었지요.
그는 사실 정치가로선 점수를 주기 어려운 인물인데
벨라스케스의 화실에 열쇠를 따로 마련하여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가서 그림을 감상했다는 인물이지요.
그가 수집한 그림들이 지금은 프라도를 빛내고 있으나
당시만 해도 주변 사람들에게 월급도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실정이었다고 하니 그의 수집벽에 대해서
신하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며
당대를 살아가던 일반 민중들은 어땠을까?
미술관에서 좋아라하고 그림을 보던 저는 갑자기
이상한 곳으로 생각이 뻗쳐가더군요.

엘 그레꼬,그의 전시실에서 혼자서 한 번
그리고 여럿이서 한 번 그림을 보았습니다.
마침 엘 그레꼬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다고
함께 보면서 알고 싶다고 지점장님이 말을 하는 바람에
그 이전에도 신뢰할 만한 사람이란 생각을 했지만
우리들은 참으로 놀라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실 그렇게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더구나 여행의 일정을 책임지고 가이드
하는 사람이 말하기엔 참 놀라운 발언이로구나
아침에 매표소에서 느꼈던 마음이 한 번 더 깊어지면서
어쩐지 이번 여행이 다른 기간보다도 더 즐거운 시간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글을 통해서 엘 그레꼬를 오래 만나왔지만
말로 하는 일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아,글로 쓰는 것에 비하면 말을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그런데 그런 작업을 수월하게 하면서 설명하는
일을 하는 도슨트들의 노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나도 가능하면 그림을 보면서 설명을 제대로 할 정도의
능력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제대로 해 본
날이기도 했습니다.

미술평론가들이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다는 이 그림
실제로 보는 그림은 가까이에서 볼때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볼 때,그보다 한 걸음 더 뒤로 물러가서 볼 때
캔버스는 그 때마다 다른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장 여러번 자리를 옮기면서 본 그림이기도 하고
마음속에 담아온 느낌이 큰 작품이기도 했지요.,
마침 특별전에서는 그의 그림와 더불어
비슷한 주제를 다룬 화가들의 그림도 보여주는 덕분에
아니 여기서 카라바지오의 박쿠스를 보다니
아니 여기서 이런 감탄을 여러 차례 내지르면서
그림을 보는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프라도,하고 싶은 말,보고 싶은 그림이 너무 많아서
여행기의 진도를 붙들어매고 있군요.
그래도 앞으로 나가는 일도 필요하니
프라도를 다 보았노라가 아니라 프라도를 막 맛보기 시작했다는
정도로,이제 막 문을 연 박물관과의 인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진한 것은 다음 기회를 마음속에 새기면서
프라도에서 나와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