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여행을 생각하면서 가장 설레는 일중의 하나가
프라도에서 만날 엘 그레꼬,벨라스케스,그리고 고야의
그림이었습니다.
24,25일은 마드리드에 있었다 해도 프라도에 갈 수 없는
날이어서 일정이 26일 오전으로 잡혔습니다.
오전이라,겨우 그 시간으로 얼마나 볼 수 있을까?
이런 때 그룹여행이란 참 처치곤란한 상황이지요.
나 혼자 프라도에서 하루 종일 있겠다고 할 수도 없고
다른 곳,(그 날은 오후에 톨레도에 가기로 된 날이어서
그 곳도 궁금하지 않을 수 없으니,혼자서 골똘히 고민하다가
다른 그림은 다른 미술관에서도 볼 수 있으니 욕심을 버리자고
마음을 다잡아 먹었습니다.)도 가고 싶으니 고민고민하다가
가능한 여러 시간을 그 곳에 있을 수 있는 방도로
이야기를 맞추었습니다.
보통때라면 잡혀있을 점심 시간을 없애고 똘레도 가는 길에
차속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요.
25일에는 호텔 로비에서 만나는 시간을 10시로 느지막하게
잡았지만 26일에는 그렇게 한가하게 기다릴 수 없어서
더 일찍 만나기로 했습니다.
미술관이 문을 열기 전에 기다리다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마음에서요.
그런데 차를 타고 가던 중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미술관의 이름이 보이는 겁니다.
티센미술관이라,미술관 앞에 뒤러와 크라나흐 특별전시를
알리는 휘장이 나부끼고 있네요.
오호라,그래도 불가능한 일정이니 그저 그림의 떡일 뿐입니다.
도착한 프라도에는 우리보다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군요.
반가운 것은 벨라스케스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곳에 벨라스케스가 그렇게 많은데 다시 특별전이라니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어서 2유로 더 내고 들어가고 싶다고
의견을 말하니,지점장님이 선뜻 그 입장료까지 지불해주겠노라
기분좋게 말씀하셔서 안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기분이
더 산뜻해지더라고요.
작은 차이인데도 이렇게 사람 마음이 달라질 수 있다는
신기한 경험을 한 시간이었습니다.
프라도 미술관에 가기 전에 미리 세계 미술관 기행시리즈중에서
프라도 미술관 책을 한 권 구해서 읽었고
다른 책을 통해서도 프라도에 무슨 그림들이 있나
상당히 찾아본 상태이긴 하지만
일단 미술관안으로 들어가서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앞에
서자,그 책들에서 본 그림은 까마득히 잊고
그림속으로 마음을 빼앗기기 시작했습니다.
미술관에서 제가 너무 뛰어다니다시피 그림을 보느라
분주하자,일행이 너무 웃어서 참 곤란한 상황이었습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고 평이 무성하더라고요.
저도 실제 생활에서보다는 더 빠릿빠릿해지는 저를
느끼고 이상하게 약간은 흥분된 상태라고 할까요?



이번 여행에서 새로 관심을 갖게 된 화가를 한 명 꼽으라면
단연 보쉬입니다.
평소라면 그냥 넘기고 말았을 그림을 너무나 자세하고
열정적으로 소개해주신 지점장님 덕분이지요.
그런데 다른 그림들이 저를 잡아당겨서 그림 설명을 다른
사람들처럼 다 끝까지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그 방안에서 더 보고 싶은 화가의 그림을 둘러보다가
다시 돌아와 설명을 듣다가 그렇게 뛰어다니고 있으니
함께 간 황경림씨가 막 웃는 모습이 보이네요.저를 보고.
그러거나 말거나 어찌 할 도리가 없습니다.
아니,여기 한스 맴링이,어라 여기에 브뤼겔이
이렇게 미술사책에서 이름과 한 두 점의 그림으로만 보던
화가들의 그림이 죽 걸려있으니 어찌 마음이 바쁘지 않겠는지요.

오늘 그림 검색을 하다보니 보쉬의 이 작품이 엘 에스꼬리알에
걸려 있군요.그러나 미사중이라서 그림을 제대로 다 볼 수
없었던 탓에 이 그림을 놓친 것이 아쉽네요.

같은 방에서 본 부뤼겔의 죽음의 승리입니다.
흑사병이 몰고온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래서 죽음의
승리인것일까요?

그림 검색을 하다가 아,이 그림은 이번 가을에 동유럽에
여행가게 된 켈리님이 볼 수 있는 그림이네 하고
관심이 갑니다.
요즘에는 그림을 검색하다가 꼭 어디에 소장되어 있는가를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마음에 품고 있으면 언젠가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프라도 미술관 책에서 만난 그림들은 어찌 그리 눈에 더
잘 띄는지요.참 신기한 일입니다.
벽면에 붙어 있는 수 많은 그림중에서 유독 더 눈길을 끄는
작품은 역시 한 번이라도 본 작품이란 것,그러니 한 번
눈길을 준다는 것의 인연이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혼자 감탄을 하다가 책을 빌려준 황경림씨를 불러댑니다.
황경림씨 여기 프라도 미술관 책에서 본 그림이요라고요.
사실 책에 나온 것은 당연히 이 미술관의 그림인데도
마치 신기한 요술나라에 온 것처럼 기뻐하는 제가 더
재미있어서 혼자 피식 웃기도 했답니다.

이번 프라도미술관 관람에서 눈이 번쩍 띄인 화가중의 한
사람이 바로 스페인 바로크 미술가인 리베라입니다.
그의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카라바지오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빛과 그림자의 대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함께 이층을 오르던 사람들의 눈길을 동시에 잡아 끈
작품이기도 했지요.

야곱의 꿈입니다.
알고 있는 그림을 가서 확인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이렇게 모르고 있다가 기습공격처럼 갑자기 마음을 찌르는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그것 참 대단한 즐거움이더군요.

그림을 검색하다가 낯익은 작품이 나와서 반가운 마음에 보니
이 작품이 바로 리베라의 그림이었네요.
루브르에서 볼 때는 무리요작품이라고 착각하고 보았던
아직도 인상에 남아있는 작품인데,아마 무리요 옆에
있어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처음 프라도안으로 들어갔을 때 제 눈을 사로잡았던 그림,
그래서 프라 안젤리코 앞에서 설명하는 지점장님을 뒤로 하고
혼자서 뛰어가서 본 다음,다시 그 방을 나가기 전에 한 번
더 앞으로 다가가서 보았던 그림,프라도를 나오기 전 아쉬워서
마그네틱으로 구해서 냉장고앞에 설 때마다 다시 보는
그림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추기경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는 물론 아니고
라파엘로가 표현한 색깔을 맛보고 싶어서.
그림을 계속 찾다간 잠을 설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네요.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마음을 달래고
모짜르트 음악과 더불어 즐긴 시간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