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고등학생 아이의 지문을 함께 읽다가
미켈란젤로는 즐기는 사람보다는 경외감에 사로잡혀
그의 세계를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는 점
그가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가 일상의 세계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을 뛰어넘는 어떤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는 점,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넘어가면서 설명을 덧붙였는데
오늘 도서관 책장을 보다가,
읽다가 다른 책에 밀려서
그냥 잠자고 있는 MICHELANGELO AND THE POPE'S CEILING 이었지요.
마음이 동해서 다시 처음부터 읽으면서
내용을 요약하면서 읽다보니 정말 재미있네요,.
혼자만 알고 넘기기 아쉬운 내용도 많아서
읽는 동안 정리를 하면서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이 책의 처음은 우리에겐 참 낯선 주소로 시작을 하네요.
THE PIAZZA RUSTICUCCI
이 주소는 바로 로마에서 미켈란젤로가 일했던 작업장이
있는 주소라고 합니다.
바티칸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있는 이 주소에서
미켈란젤로는 처음에는 피우스 3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후에
교황이 된 율리우스 2세의 부름을 받고 나서
교황의 영묘작업을 위해 일을 하게 됩니다.
그가 카라라에서 대리석을 골라서 운반해오고
어떻게 영묘를 건설할 것인가 머릿속으로 구상을 하고 있던 중에
율리우스 2세의 관심을 영묘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게
되는 사건이 일어나더군요.
베드로가 순교한 장소에 세운 베드로 바실리카가 세월의
힘에 밀려서 붕괴의 위험에 처했다는 소식을 들은 교황은
영묘에 대한 관심을 잊어버리고
대리석대금에 대해서는 모르는 척을 하게 되더군요.
헐고 다시 짓기로 한 바실리카의 총공사를 맡은 사람은
미켈란젤로의 정신적인 멘토이기도 했던 줄리아노 다
상갈로였는데
그는 이 작업을 맡게 된 것에 자긍심을 느끼고
플로렌스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다 로마로 불러들이더군요.
그런데 다크호스가 나타났습니다.
브라만테라고 우르비노 출신의 건축가인데요
이렇게 되면 일종의 경합이 벌어지게 되고
이야기가 흘러가는 방향으로 보자면
브라만테의 안이 교황의 승인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입장이 묘하게 된 미켈란젤로는 교황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하면서
로마를 떠납니다.
물론 화가 난 교황은 추격대를 보내지만
이미 플로렌스의 영토에 들어가게 된
미켈란젤로를 추격대는 잡을 수는 없게 되지요.
미켈란젤로는 플로렌스(피렌체) 에서 가족과 합치고
그 곳에서 일을 맡아서 다시 조각가의 일에 열중을 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장에서는 음모론에 관한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나옵니다.
브라만테가 미켈란젤로의 신용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일부러 교황에서 시스틴 채플의 작업을 맡기도록
유도했다고요.
그런데 저자는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실제로는 나중에 미켈란젤로의 전기를 쓴 condivi가
그렇게 기록한 것을 바사리가 그대로 자신의 책에서
인용을 했고 그 말이 그대로 정설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하네요.
저자는 브라만테와 미켈란젤로가 너무나 극단적으로 다른
성격의 예술가인 것은 사실이지만
브라만테의 경우에 프레스코화라는 작업을 하기엔
미켈란젤로가 적임자가 아니어서
실제로는 교황에게 반대했다고 하더군요.
두 사람의 대화를 그 자리에서 들은 제 삼의 인물
로셀리가 미켈란젤로에게 편지로 그 상황을 알려준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상갈로의 작품을 찾아보는 중입니다.
아무래도 글로만 읽는 건축가나 조각가란
앙꼬없는 찐빵같이 느껴져서요.


브라만테의 건축물로 제일 잘 알려진 곳입니다.

바로 이 건물인데요
브라만테하면 떠오르는 건축물이기도 하지요.
베드로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렸다고 이야기되는
''
그 터에 세워진 건물이라고 하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기록을 하고
로마 시리즈를 마저 보아야 할 것 같아요.
브루투스를 찾아온 카시우스가 브루투스를 선동하는
장면까지 보고 그 다음은 어떻게 다루었을까
궁금한 참이라서요.
갑자기 로마가 그것도 고대 로마,그리고 르네상스기의
로마가 제 시간안으로 들어오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