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키스라니
어떤 철학자를 이르는 말일까 궁금하여 서점에서 들추어 본
소설입니다.
그동안 역사책에서 백과전서파가 펴낸 백과사전에 대한
말을 읽으면서 그저 스치고 지나간 디드로가 주인공이네요
그렇다면 시대를 느낄 수 있는 책이라 읽어보고 싶은데
소설책의 값이 만만치 않습니다.
일만 오천원이 넘어가니 고민이 되어서 (그렇게까지
읽어야 할 책인가 판단이 서지 않아서요) 혹시 하는 심정으로
메모지에 함께 적어놓았는데
마침 수퍼맨 대여점에서 이번에 제가 신청한 책을
아홉권이나 구해주신 덕분에
어제는 17세기에서 오늘은 18세기로 넘어가서
살고 있는 중입니다.
디드로가 활동했던 시기가 루이 15세가 다스리던 프랑스였으니
그의 정부로 뒤에서 그를 조종하면서 실권을 누렸다는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빠질 수가 없겠지요?
그녀를 그린 그림을 여러 점 본 적이 있으나
막상 화가의 이름을 기억하기 어려워서
시대를 알려주는 그림을 보려고 로코코를 검색하니
소설의 배경보다 조금 이른 시기의 화가
와토의 그림이 눈에 띄네요.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그림들이 올라와 있어서
보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종교의 권위가 시퍼렇게 살아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과연 그런가 하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그것을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글로 품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시대
카페가 생기고 그 곳에서 각성제 역할을 하는 커피를 마시면서
모여든 사람들끼리 의견교환을 하다가 대립에 이르면
큰소리가 나기도 하는 정경이 마치 그 자리에
우리도 함께 하는 느낌이 들도록 잘 묘사되어 있네요.
철학자가 주인공이라니 조금 지루한 소설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작가의 필력이 대단해서 상당히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서 상당히 두꺼운 소설인데도
벌써 반이나 읽어버렸네요.

와토의 그림을 보다가 든 생각 하나
나는 바로크와 로코코에 대해서 이미 편견을 갖고 그림을 보았구나
그래서 미술사적으로 다룬 글에서나 보았지
제대로 그림을 본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바로크에서도 북유럽의 그림은 예외였지만
프랑스의 바로크,이탈리아의 바로크는 그저 휙 넘기면서
보곤 했었고 로코코는 거의 들여다본 적이 없다는 것을
오늘에야 뚜렷하게 알겠네요.


와토의 그림에서도 당시의 전쟁을 비껴가긴 어렵습니다.
행진중인 군인을 그린 것이네요.


와토가 도대체 누구지? 하고 궁금한 사람들이라도
아마 이 그림은 눈에 익지 않을까 싶은데요
키테라 섬이 실재하는 섬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설에서도 키테라 출판사라는 명칭이 나오더군요.
그 시기에도 벌써 파리에서는 레모네이드를 거리의 좌판에서
판매하는 이야기가 나와서 웃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을 때는 굵은 사건중심으로 읽기 때문에
사실은 그 시대의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풍속적인 측면에서 많이 알기는 어렵지요.
그러나 반면에 소설에서는 디테일을 많이 살리기 때문에
한 시대속으로 동화하여 마치 그 시대속에 있는 느낌으로
한동안 읽어나가게 되는 것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1700년대의 파리를 경험하면서 보낸 하루
그래서 아마 그림보는 일도 조금 더 몰입이 되는지도 몰라요.

아,이 그림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하고 끄덕이는 고개가
연상이 되는데 이 피에로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의
놀람이 기억나네요.
얼굴이 너무 슬퍼보여서 그래,맞아
피에로가 실제로 남을 웃기고 싶은 심정이 아닐때
그는 어떻게 그 상황을 극복하는 것일까 하고
연민의 마음을 담아서 고민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당시 이탈리아 풍이 파리에서 유행을 한 모양입니다.
이탈리안 세레나데,이탈리안 씨어터
이런 제목의 그림이 눈에 띄는 것을 보니요.
그림을 보고 있으려니 아직 많이 남은 소설이 궁금하네요.
오늘은 이것으로 충분한 after가 된 것으로 하고
다시 소설속으로 들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