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나서 내용이 참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쏟아져 나오는 읽고 싶은 소설이 많아서
우선순위에서 밀려있었는데
마침 대여점에서 책을 구해 놓은 덕분에
어제 오늘 소설 두 권을 다 읽게 되었지요.
17세기의 네덜란드
그 중에서도 렘브란트 말년이 시대배경이고
카톨릭을 다시 부활시키려는 비밀 단체에 의해서
푸른 색만 제외하면 바로 렘브란트 풍의 그림이
살인의 도구로 쓰이게 된 것을 알게 된
렘브란트의 옛 제자가
사건을 해결하는 일인칭 화자로 등장하는 이 소설은
다만 그림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한 나라의 특정시기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끈이
되어 준다는 점에서 미술사뿐만이 아니라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그리고 그런 것과는 무관하더라도
이야기자체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좋은 소재가 되고 있네요.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 숨겨진 푸른색의 정체는?
올해는 렘브란트가 태어난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그가 태어나고 활동한 네덜란드의 레이덴과 암스테르담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각종 행사들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영국의 영화감독 피터 그리너웨이는 렘브란트의 대표작을 제목으로 삼은 ‘야경 Nightwatching’이란 영화를 오는 5월말 칸 영화제에서 공개할 예정이라는 소식도 들린다.
빅토르 위고나 모차르트의 작품을 소재로 한 고급 역사소설을 발표하여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독일의 작가 외르크 카스트너도 렘브란트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는 흥미진진한 스릴러 소설을 내놓았다. 카스트너는 영욕의 세월을 보냈던 렘브란트의 생애 가운데에서도 가장 힘겨웠던 시기로 알려진 죽기 전 3달 동안의 행적을 소재로 삼았다.
한때 최고의 화가로 명성을 떨치며 암스테르담의 상인들에게 엄청난 돈을 받고 초상화를 그려줬던 렘브란트. 그러나 지금은 몰락하여 제자 한 명 거느리지 못한 채 초라한 임대 화실에서 자화상 그리기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렘브란트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기이한 푸른색 초상화를 본 푸른색 염색 장인이 가족을 잔인하게 살해한 뒤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평소 렘브란트가 잘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푸른색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작가는 17세기 상업자본주의의 발달로 찬란한 전성기를 보냈던 암스테르담의 빛과 그림자를 렘브란트의 푸른색 초상화라는 가상의 소재를 통해 재조명하고 있다.
이제 당신이 죽을 차례다!
외르크 카스트너는 렘브란트가 살았던 17세기 암스테르담에 대한 방대한 자료조사와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주인공이 실제 암스테르담 뒷골목을 거니는 듯이 생생하게 재현해내는데 성공하였다. 30년 전쟁이 종결되며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독립을 인정받게 된 네덜란드는 이후 동양과의 활발한 교역으로 황금시대를 구가하게 된다. 르네상스를 지나 근대로 접어드는 과도기의 암스테르담은 인도에서 들어온 온갖 진기한 물품들과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 계급의 대두로 인해 문화적으로도 융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많은 학자와 예술가들이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들어 새로운 시대의 기운을 마시며 지적, 예술적 영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황홀한 도시 발전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푸른색으로 상징되는 광기의 공포였다.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던 구교와 신교 간의 종교 갈등과 상업자본의 발달로 인한 구세력과 신세력의 세력 다툼에서 촉발된 광기어린 사건은 퇴폐적인 비밀 사교클럽, 잔인한 고문과 처형, 해부학의 발전 같은 중세와 근대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풍경들과 어우러지며 의문의 푸른색 초상화를 통해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렘브란트가 평생 동안 탐구했던 주제인 ‘인간’은 다양한 명암으로 표현된 초상화 작품들로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인간의 정체성을 탐구하였으며, 그것은 수많은 자화상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다. 이 책은 저주받은 푸른색에 사로잡힌 17세기 암스테르담의 인물 군상들과 렘브란트가 탐구했던 인간 내부의 빛과 어두움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가공의 사건에 결합시켜 박진감 넘치는 스릴러로 재현해낸 작품으로 렘브란트와 그의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상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집에 와서 찾아보는 그의 그림입니다.
아무래도 소설의 시대배경인 1660년대의 그림에 마음이 가서
우선 그의 재정적인 어려움이 시작되던 해의 자화상을
찾아보았습니다.

젊은 시절의 자화상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보이네요.

유대인 노인을 그린 초상화입니다.

요셉이 이집트에 가서 일정 시기 하인처럼 살았던 곳
보디발인가요?
그의 아내가 그를 유혹하다가 제대로 되지 못하자
남편앞에서 그를 비난하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라고 하네요.

야곱의 축복을 그린 것인데요
이 시기에 구약을 이미지로 표현한 것에서 눈길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일찍 죽은 아들 티투스의 초상화입니다.
소설에서도 이 그림이 언급되고
그의 죽음이 악용되어 렘브란트를 광기의 상태로 몰아가는
대목이 나옵니다.

살아생전 화가로서 명성을 얻다가
어느 순간 대중에게 잊혀진 존재가 된 렘브란트
그가 말년에 경제적으로도 어렵고
그를 지탱해주던 정식 결혼은 아니었지만
첫 부인의 죽음이후 그에게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했던
헨드리케도 죽고 아들도 죽고 나서
어린 딸과 더불어 살아가던 시절의 그를 생각합니다.
자화상을 바라보고 있자니
고통속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화가를 떠올리게 되네요.


물론 소설에서의 블루는 작가의 창작입니다.
그래도 소설속에서 허구인 부분과 사실인 부분의 절묘한 조화로
읽는 내내 긴장을 하면서도 그렇군
바로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하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