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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디에...

| 조회수 : 1,762 | 추천수 : 29
작성일 : 2005-12-25 17:25:35

그들을 처음 본 것은 지난 봄이었습니다.

그날도 가게로 출근하기 위하여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화창한 봄날이라 하늘을 멍~ 하니 바라보다가 그들을 보았습니다.

제법 큼직한 말벌들이었습니다.
윙윙~ 소리 내며 나는 것을 보며 처음엔 흠칫 놀랐다가
통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는 무료한 시간이라 눈길은 말벌의 비행을 쫒았지요.

그들의 착륙 장소는 의외로 버스 정거장의 낡은 지붕을 버티고 있는 녹슨 철 기둥이었습니다.
그 중간 즈음에 나 있는 구멍이 바로 말벌 비행군단의 이착륙 장소더군요.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봤습니다.
그 구멍 안에 말벌들의 집이 있는지 연신 들며 나며 부지런히 움직이더군요.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기다리던 버스가 왔습니다.
별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가게로 가서 저도 늘 하던 일을 하며 그들은 잊어버렸습니다.

가게로 출근을 할 때 항상 버스를 타고 출근 하는 것은 아니고 어떨 때는 차를 가지고 갈 때도 있고
택시를 타고 갈 때도 있어서 한동안 벌들은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버스 정거장에 가니 그제야 다시 그들이 생각났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열심히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호기심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원통 안에 그들의 집은 어떤 모습일지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날카로운 그들의 침이 무서워 그냥
문 밖에서 바라만 보았지요.

언제부터인가 정거장에서만 생각나던 그들이 다른 곳에서도 생각이 나더군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에는 어떻게 지낼지, 구멍 안으로 빗물이 많이 들어갈 것이 걱정스러워지기도 하더군요.



비가 그렇게 많이 내리지 않아서인지 비 오는 와중에서도 그들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하더이다.



참으로 부지런한 놈들입니다.



하루 이틀 날은 가고…….
어느덧 봄날은 갔습니다.

그리고 날은 점점 더워지고 있습니다.



날이 더워지자 특이한 모습들을 보이더군요.
문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가에 서너 마리가 붙어 날갯짓만 붕붕대고 있었습니다.

햇볕이 뜨거워 잠시 바라보는 그 시간에도 머리가 뜨거워지는 느낌인데
저 철 원통 안은 얼마나 뜨거울까요.
저들은 집안의 온도를 낮추려고 날갯짓으로 신선한 바람을 집 안으로 불어 넣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보고 있노라니 그 일도 교대를 하며 하더군요.
세 마리가 날갯짓을 쉬지 않고 계속 하는데 안에서 한 마리가 나오더니 날갯짓을 시작 했습니다.
그러자 가장 오래 날갯짓을 하고 있던 놈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보초 교대 하듯이 교대로 날갯짓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날은 가고……. 8월입니다.

아스팔트가 녹아 내릴 것만 같은 불볕더위입니다.
낮 기온이 36도에 이를 거라는 일기예보를 들으며 정거장으로 왔습니다.

예상대로 그들은 비상사태라도 선포된 듯 합니다.
그동안 3-4마리가 문가에서 날갯짓을 했었는데 오늘은 10여 마리가 입구에 달라붙어
온 힘을 다해 날갯짓으로 집안의 온도를 내리려 애쓰고 있었습니다.

원통 안의 온도는 거의 5-60도 이상 올라갔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한다고 얼마나 온도가 내려갈까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부채질이라도 해 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마음뿐이었지요.





그렇게 살기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모습을 뒤로하고 버스를 탔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버스를 타지 않고 출근을 했지요.
눈에서 안보이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여름이 다 지날 동안 버스를 타지 않았더니
평소 궁금했던 마음도 점점 멀어지고 기억에서 사라져갔습니다.

여름도 가고…….
가을이 되었습니다.

노랗게 물든 단풍잎을 본 어느 날 갑자기 그들이 궁금해 졌습니다.
그렇게 처절하게 날갯짓 하던 모습이 갑자기 눈에 선하더군요.
그래서 그날은 일부러 정거장으로 향했습니다.

자주 오지 않는 버스가 마침 도착하였지만
나의 몸은 버스가 아닌 원통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활발하고 멋지게 이착륙 하던 활주로는 휑그러니 비어있더군요.

그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살기 좋은 곳으로 다 함께 이사를 갔을까요?
아니면 지난여름의 폭염을 이기지 못하고…….^^;;;

그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리고 또 하루 이틀…….
어찌 되었건 세월은 흐릅니다.

노랗던 은행잎도 다 떨어졌습니다.
이젠 겨울입니다.

눈이 왔습니다.
발을 동동거리며 버스를 기다리다 언뜻 눈길이 다시 활주로로 향합니다.
아무도 없는 그곳엔 하얀 눈만 소복이 쌓여 있습니다.



그래도 내 마음 속엔 아직도 그들이 남아 있습니다.



따듯한 봄이 오면 다시 돌아올까요…?
강두선 (hellods7)

82cook에 거의 접속하지 않습니다. 혹, 연락은 이메일로...... hellods7@naver.com

11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정안상사
    '05.12.25 5:37 PM

    관심을가지고 잘 관찰하셨네요. 이야기있는 좋은 사진입니다

  • 2. 두꺼운 뱃살
    '05.12.25 6:30 PM

    이런 감수성과 사진 실력을 가지신 분이셨군요.
    도저히 살 수 없는 곳을 집으로 택한 요놈들과 우리는 참 많이 닮았죠.
    하하,제가 사는 이 아파트란 곳이 뭐 주택에 비하면 그런 곳이 아닌가싶어 횡설수설하네요.
    메리 크리스마스.

  • 3. 도도/道導
    '05.12.25 8:13 PM

    한편의 다큐~ 잘 보고 갑니다~^^

  • 4. 천하
    '05.12.25 8:19 PM

    잘봤습니다.꾸벅!

  • 5. 안나돌리
    '05.12.25 10:49 PM

    제 인연터에서 잘 살고 있겠지 하고
    맘 푹 놓으세요!!!ㅎㅎㅎㅎㅎ

    근데..이리 준비를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 6. 사랑둥이
    '05.12.26 1:20 AM

    오오...역작이십니다...
    감탄할 따름입니다...

  • 7. 강두선
    '05.12.26 10:24 AM

    감사합니다. ^^

    도도님 말씀처럼 다큐를 만들려고 일부러 준비 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게시판에 올릴 생각도 아이었구요.
    그냥 지난 봄 부터 우연히 자주 지나치는 그곳을 볼때마다 한 두장 찍어 두었더니 저리 되었더군요.

    하찮고 작은것들도 긴 시간을 두고 바라보면 참 경외롭지요?
    ^^

  • 8. 재미있게 살자
    '05.12.26 3:25 PM

    우와....
    대단하십니다..
    저같으면 그냥 무심히 보고
    지나쳤을 일을...
    이렇게 올리고 보니..
    정말 자연 다큐가 되네요...

  • 9. 나비
    '05.12.27 4:33 PM

    도심속에서 질긴 생명력을 보이는 말벌의 생존력과....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계절의 다큐를 아름답게 담아내시는 강 두선님,
    그 보다...저는 저 철기둥안에 꿀집이 있는지 자뭇 궁금합니다.
    사다리 타서 확인할 수도 없고..........

  • 10. hippo
    '05.12.30 3:28 PM

    그런데 읽다 보니 코끝이 찡해지네요.
    열심히 날갯짓을 하던 벌들이 안타까워서일까요?
    잘 봤습니다.

  • 11. 진진
    '06.1.7 4:48 PM

    살기위해 몸부림 치는것이 아름답다고 해야할까요?
    사람들도 저렇게 해야하는데..그렇지 못할때가 참 많은 것 같아
    한편으로는 아쉽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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