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이와 진이는 한글을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익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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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이는 3돌이 지난 무렵 한글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서 대략 4-5개월 만에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4돌 무렵부터는 편지를 쓰기 시작 했지요.
그렇다고 주이가 남달리 뛰어나게 천재성이 있었을까요?
그건 아닌 것 같고……. ^^
그러면 어떻게 해서 주이는 그렇게 일찍, 짧은 시간에 한글을 익힐 수 있었을까요?
어떤 대단한 학습지로 익혔을까요?
아니면 어떤 놀라운 비법이라도...??
학습지도 없었고, 특별한 비법이랄 것도 전혀 없었습니다.
그냥 제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3-40분 정도 같이 글자 놀이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자면,
어느 휴일, 신문을 보고 있는데 주이가 저에게 기대어 같이 들여다보더니
아빠가 보고 있는 것을 흉내 내어 신문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글자를 알고 읽는 것이 아니라 저 혼자 창작을 하며 중얼중얼 읽는 척 하는 것이었지요.
주이가 무언가 읽는다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듯해서 그때부터 같이 한글 놀이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카드를 한 벌 구입해서 그것으로 매일 저녁 저와 같이 놀았지요.
주이는 아빠가 퇴근하기만 기다렸다 글자 놀이를 하자 조르곤 했습니다.
공부라는 느낌은 전혀 없었고 그냥 재미있는 퀴즈 놀이였습니다.
주이는 승부욕이 강한 편이라 하나라도 더 맞히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림을 먼저 보여주고 뒷장의 글자를 보여줬지요.
그런 다음 카드를 섞어서 글자를 보여주고 그림을 얼마나 맞추는지 놀이를 했는데
주이가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도전하더군요.
가만히 보니 주이는 글자를 가나다라, ㄱㄴㄷㄹ 이 아니라 그림처럼 그 모양으로
외우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한 달쯤 지나서 50여장의 그림카드는 거의 다 익히게 되었지요.
그림카드를 다 외우고 나자 퀴즈가 너무 빨리 끝나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흰 종이를 그림 카드모양으로 잘라서 카드를 더 만들고 거기에 직접 글자를 썼습니다.
제가 그림 솜씨가 젬병이라 그림은 생략 했고요. ^^;;
직접 만든 수제 카드는 2-3일에 4-5장씩 계속 추가가 되었습니다.
3-4개월 정도 지나니 두툼한 카드더미에서 아무거나 꺼내도 척척 맞추는 지경에 되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 함께 손잡고 외출 하던 주이는 스스로 대단한 것을 발견 하게 됩니다.
바로 지나던 간판에서 자신이 아는 단어를 발견 한 것이지요.
그런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자랑스러운지 그때부터 주위에서 자신이 아는 글자 찾기에
여념이 없더군요. 제가 신문을 볼 때면 옆에서 아는 글자 찾는다고 머리를 들이밀곤 했습니다.
그렇게 주이는 한글 읽기를 익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쓰기에도 도전을 했지요.
제가 하고픈 말은,
주이가 남들보다 빨리 한글을 익힌 것을 자랑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친밀감과 유대감이고,
교육의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익히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을 생각 한다면 아이의 교육상대로는 부모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특히 어린 아기 시절의 교육은 부모와 어떻게 교류하며 지내는지에 달린 것 같습니다.
주이가 아빠와 노는 것을 좋아 하지 않았다면 글자 놀이를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요?
저 이야기의 포인트는,
주이는 엄마 아빠, 특히 아빠와 노는 것을 무척 좋아 했습니다.
그렇기에 아빠와 함께 하는 것은 무엇이건 좋아 합니다.
그것이 글자 놀이건 무엇이건…….
그렇다면 아이에게 글자를 비롯하여 무엇인가 가르치고자 한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정답은,
아이가 함께 놀고 싶어 하는 부모가 되면 됩니다.
부모가 아이와 놀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부모와 놀고 싶어 할 때
아이가 흥미를 잃지 않도록 유도만 하면 아이는 저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 할 것입니다.
아이에게 한글을 가르치고자 한다면 어떤 학습지가 좋을지 알아보기보다
내 아이와 어떻게 놀면 좋을까 생각 하시는 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한글 학습지 관계자분들께는 죄송... ^^;;)
적어도 내 아이의 글 익히기는 남의 손이 아닌 내가 직접 가르쳐 보시라 권해봅니다.
많은 시간이과 노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럼으로써 아이와 더 친밀한 시간을 보내게 되니 일거양득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주이는 글자 공부를 보통 말하는 무엇인가 배운다는 의미로
받아 들인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새로운 놀이로 생각 했던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 공부 하자고 했을 때 그것을 지겹고 귀찮은 것이 아닌,
즐겁고 재미있는 것으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어린 시절 공부의 이미지가 어떻게 자리하는가에 따라 향후 십 수 년간 이어질
학습에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게 되지 않을까요?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하게 되는 공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자라면서
스스로 기꺼이 공부를 하게 될지, 마지못해 억지로 참아가며 공부를 하게 될 지
좌우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참고로 그림카드 놀이에서 한 가지 팁을 말씀 드리자면,
그림카드는 너무 많은 것으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처음엔 10장 내외로 시작해서 익히는 정도에 따라 조금씩 그 숫자를 늘리는 것이 좋고,
아이가 어느 정도 단어를 알게 될 때 까지는 이것저것 여러 가지 기구나 책을 동원해 하지 말고
그림카드 단 한 가지만 가지고 하시는 것이 아이가 좀 더 집중을 잘 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타임머신을 타고 17년 전, 저희 집으로 한번 가 볼까요? ^^
주이는 초등학교 1학년이고 진이는 4돌이 막 지난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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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12-07
< 글자공부 >
주이는 수리적인 분야 보다 예능적인 분야에 더 소질이 있어 보인다.
피아노나 발레 등에 남다른 흥미를 보이고, 학교 수업에서도 수학(요즘엔 국민학교 산수 과목이
수학으로 바뀌었다)보다 국어를 더 좋아 한다.
제 아빠가 변변찮은 수필집 한권 낸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주이는,
그 영향 때문인지 글 짖기나 일기쓰기에도 제법 열심이다.
진이도 요즘 글자 공부에 열심이다.
작은 손가방에 들어있는 한글 카드를 들고 다니며 하루에 한두 번씩
꺼내어 혼자 읽어 보곤 한다.
'사아~가, 수우~박, 복숭아~, 빠나나, 차메...'
이렇게 이젠 쉬운 단어(주로 과일)는 조금 읽긴 하지만 쓰는 것은 아직 요원하다.
진이가 유일하게 쓸 줄 아는 글자는...
강두선,강진이,강주이,가나다라마바사.
제 엄마 성씨인 '황'자는 너무 어려워서 아직 못쓰겠단다.
사실, 진이는 자신이 글자를 잘 읽지 못한다는 사실에 스스로 조금 자존심 상해한다.
진이는 주이에게 많은 것을 배운다.
얼마 전엔 주이가 진이에게 글자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주이가 종이를 학종이 크기(학종이가 뭔지 아는 분은 알고 모르는 분은 말고)로 잘라서
거기에 그림과 글자를 연필로 직접 그리고 써넣은 카드였다.
그 카드의 앞면엔 단어가 뒷면엔 해당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냉장고, 세탁기, 책상, 인형, 아파트…….'
얼마 전 휴일에 춘천으로 드라이브 삼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주이는 조그만 수첩과 연필을 주머니에 챙겨서 차에 올랐다.
그리곤 틈틈이 수첩을 꺼내어선 무언가 적는 것이었다.
"주이야, 너 뭐 적니?"
"응~ 이거... 이따가 일기 쓸 때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메모 하는 거야여."
그걸 본 진이가 부러웠는지 자기도 수첩 사 달라고 졸랐다.
"진이는 아직 글자 잘 못 쓰잖아."
"그러니깐 열씨미 글짜 공부 해야지이~ 나두 수첩 사 조잉~"
그래서 진이도 조그만 수첩을 사 주었다.
진이는 틈만 나면 그 수첩을 들고 다니면서 메모(?)를 한다.
잘 놀다가도 갑자기 생각 난 듯이 수첩을 꺼내어 무언가 끄적거리곤
집어넣고, 한참 후에 또 꺼내어 무언가 심각한 표정으로 끄적거린다.
"진이야, 너 거기다 뭐 쓰니?"
"응~ 메모 하는거야여..."
나중에 펼쳐본 진이의 그 수첩 한장 한장 마다 엔 이런 글이 큼직한
꼬부랑 글씨로 메모 되어 있었다.
강진이...강주이...가나다라마바사...강두선...
오늘 낮에 아내가 회사로 전화를 했다.
"진이 유치원 원서에 쓰려고 그러는데 갑자기 진이의 '진'자가 한자로
어떻게 쓰는 건지 생각이 안 나는데... 임금왕변이 들어가는 거 맞죠?"
"응, 맞어."
그때 수화기 저 너머로 진이의 다급한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엄마 엄마!! 그거 쓸 줄 몰라여? 그럼 내가 쓰는거 알켜주께."
그러면서 제 엄마에게 '진'자 쓰는 것을 가르쳐 주느라 정신없다.
잠시 후 진이와 통화를 했다.
"진이야, 아빠한테도 '진'자 어떻게 쓰는지 갈쳐줄레?"
"음~ 압빠~ 진 짜 어떠케 쓰느냐며는여...
짝데기를 이렇게 이렇게 긋구 쩜을 찍고 또 짝데기를 이렇게 하구
그담에 또 짝데기를 이렇게 그리고 여프로 이렇게 하면 되여."
주이와 진이는 오늘도 열심히 메모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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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써두었던 글 입니다. ^^
주이가 자신이 한글을 익혔던 방식대로 그림카드 만들어 동생 진이에게 가르치는 모습이 보이지요?
아빠가 자신과 같이 글자 놀이 했던 대로 동생과 글자놀이를 하더군요.
진이 한글은 주이가 가르친 셈입니다. ^^
그러면 말 나온 김에,
주이가 동생 진이 가르치는 모습도 한번 훔쳐볼까요?
- to be continu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