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담아간 손철주님의 인생이 그림같다를 읽었습니다.
한참 읽다보니 그림을 좀 더 보고 싶은 마음이 동해서
3000원짜리 카드를 사서 인터넷에 접속을 했지요.
오늘 밤 바티칸의 자정미사에 가보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슬아슬하게 갈아타는 비행기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사태가 생길수도 있다고 하네요.
그러면 오늘 밤에는 항공사에서 잡아주는 호텔에서 자고
내일 로마로 가는 수도 있다고 하는데
화를 내도 소용없는 일이라 그렇다면
암스테르담의 밤거리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것으로 편하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어제 밤에 샤갈을 보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지라
역시 오늘도 먼저 손길이 가는 것은 샤갈입니다.

지난 번 터키 여행갔을 때
마리아가 마지막까지 묵었다는 곳에 갔었습니다.
작은 수도원에 켜진 촛불들
그 앞에서 간절하게 기도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속에서
저도 소망하는 바를 기도하기 위해서 촛불을 켰었지요.
오늘 그 그림속의 촛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소망하는 바를 말할 것이 아니라
소망을 줄이는 법을 앞으로는 배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듭니다.

dance
샤갈의 댄스와 마티스의 댄스
둘 다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몸이 뻣뻣하여 춤을 추려는 것은 한번도 상상을 못 해본 일이지만
그래도 남이 추는 춤을 보는 일은 즐겁더군요.
직접 몸을 움직여서 즐기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그것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축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윗과 아브라함이 제목이네요.
성탄 이브라서 그런가요?
아침에는 식구들이 일어나기 전
렘브란트가 그린 그림들을 몇 점 골라서 보고
길떠나기 전 보는 렘브란트 그림들이란 제목으로 everymonth에 글을 썼었습니다.
그 때도 역시 성서적인 맥락에서 그린 그림들을 보게 되었거든요.
마음이 좀 더 단순해지고 싶을 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다고 심란해질 때
가끔씩 신약성서의 구절을 보게 됩니다.
부활한 구세주로서의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이지만
'
그래도 제겐 예수의 말씀이 주는 큰 울림이 있어서요.
당대에 가장 선진적인 문명이 이루어지던 우르에서 상인의 가족으로 살다가
가나안으로 가라는 목소리를 따라서
아무 것도 모르는 곳으로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
그래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더군요.
세계사를 읽다가 만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지금의 안정을 떨치고
모르는 길로 가는 일이 지금이나 그 때나 역시 어려운 결단이겠지요?
그림을 보는 일은 역시 단순히 눈이 즐거운 일로 끝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그림속에서 생각이 가지를 치고
그래서 마음속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