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에 가면 거의 매번 여행기 코너 쪽에 가보게 됩니다.
이번에는 어떤 책이 나왔을까 하는 호기심때문이지요. 재미있는 것은 가려고 하는 나라의 여행기가 유난히 먼저 눈에
들어온다는 사실인데요,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 자전거로 건축여행한 ,더구나 직업이 건축가인 사람의 글이라니
제겐 딱 와 닿는 제목이었습니다.
그 날은 다른 책을 여러 권 사느라 제목만 기억하고 돌아왔는데 마침 가을 여행의 멤버인 arhet님이 사서 읽고는 빌려주었습니다.
수요일 밤에 받은 책을 어제, 오늘 시간나는대로 메모하면서 다 읽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손으로 그린 도면들입니다. 도면만이 아니라 풍경도 마찬가지고요. 손으로 하는 일에 거의 잼병인 저는
그런 장면만 보아도 공연히 마음이 설레서 한동안을 바라보게 되고, 마음이 동하면 가능하면 비슷하게 그려보기도 합니다.
물론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처음 의도와는 다른 그림이 되고 말지만 그렇게 따라하는 시간의 즐거움도 있기 마련이니까요.
여행기를 읽는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르겠지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본 표지와 다 읽고 나서 본 표지만 해도 그것을 바라보는 제 시선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앞 표지의 이름 모를 새 집 같이 생긴 것이 나무위에 세운 다실이란 것도 알게 되고 뒷 표지의 이상하게 생긴 그림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고요. 후쿠오카에 가면 만날 수 있는 건축물에 대한 것, 그래서 갑자기 그 도시가 궁금해지기도 하고
이런 식으로 여행기를 처음 손에 들었던 때와 다 읽고 나서의 느낌이 달라지고 메모의 내용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것
지금 당장 떠나지 못해도 여행기는 그런 낯설고 매력적인 세계를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서 내가 상상하는 여행의 루트를
짜게 만드는 효과가 있더라고요.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귀한 그림들이 많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생각보다 훨씬 많은 그림들을 그것도 기습적으로 만나서 마음이
들뜨던 순간이 생각나네요.
프란스 할스입니다. 렘브란트, 베르메르,할스 다 같은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이지만 서로 다른 그림세계를 보여주는 화가라서
한 자리에서 그림을 비교해가며 보던 시간의 재미가 있었습니다.
건축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번 책 읽기에서는 저자가 소개한 미술관의 건축가 이름을 메모하고 있는 저를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네요. 언제나 미술관에 가면 안으로 바로 돌진해들어가서 그림과 만나는 순간을 고대하느라 건물 밖을 볼 마음의 여유
아니 관심이 없었던 시간들이 생각나서요.
저자가 자신의 여행기를 일지 형식으로 첫 날부터 28일째 요코하마의 페리 터미널까지 나머지는 에필로그 형식으로 처리하고
있었는데 여행기도 여행기이지만 요코하마 페리 터미널의 공사를 진행한 ,FOA (foreign office architects)에 대한 이야기가
제겐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영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들인 모양인데 국제 공모전에 낸 두 번째 작품이 바로 페리 터미널이었고 사실은 공모전에 당선
되리라 기대하지 못하고 상당히 난공사가 예상되는 도면을 그려서 낸 모양이더라고요. 막상 공모전에 당선되고 요코하마에서
이 터미널을 짓겠다는 요청이 왔을 때 영국에서 일본에 건너온 그들이 이 터미널을 완공할 때까지의 과정을 designed가 아니라
grown 이라고 표현했다는 대목인데요 이상하게 그 말이 마음에 확 와닿네요.
인생에도 잘 들어 맞는 말이 아닌가 싶어서요.
아무리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그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지요. 여행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미리 계획을 세워도 현지에서 돌발 상황이 생기기도 하고 마음을 끄는 다른 것들과 만나서 처음 계획을 수정하게 되는데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주기도 하고요. 책을 덮고 메모를 했습니다.
준비는 많이 하지만 그 다음에 뺄 셈을 해나갈 것이라고요!!
아직도 제 안에서 끝나지 않고 있는 뉴욕 여행과 더불어 이미 시작한 일본 여행을 위한 준비, 그리고 일상에서 여러가지 일들을
동시에 진행해나가고 있자니 하루에 정말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살고 있구나 , 그런 일들을 버거워하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에 감사하는 심정으로 사진속의 베르메르의 여인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