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잭슨 폴락에 관한 그림책을 빌려간 앨리스가 2시간에 걸쳐서 힘이 들었다고 하면서 번역을 올려 놓았네요.
this is greece에 이어 두 번째 번역을 시도한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인 앨리스는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실제로 여러가지를
해내고 있어서 주목하고 있는 여학생이기도 합니다.
번역을 읽고 나니 보답으로 그의 그림을 찾아서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 사진 정리하면서 보던 메트로폴리탄의
그림을 잠깐 멈추고 잭슨 폴락의 그림을 찾아서 보게 되네요. 금요일 아침
잭슨 폴락하면 액션 페인팅 이렇게 자동 반응이 나오기 쉽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에 사연이 없을 수가 없겠지요?
우리가 미술사 책에서 만나는 화가의 그림이란 대부분 그의 대표작인 경우가 대다수여서 ( 한 화가를 제대로 다룬 책이 아니라
미술사속에서의 그나 그녀의 위치에서 선정한 그림이고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 주로 한 두 작품으로 끝나기 쉬워서요) 한 화가에
대해서 작정하고 글을 읽기 시작하면 어라, 우리가 모르는 것 투성이네 라는 반응이 바로 나오게 될 것 같아요.
이런 사연은 물론 폴락 한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는 언젠가 로스코 전시에 갔다가 그 앞에서 발길을 뗄 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전시장 안에 마련된 의자에서 일어날 줄
모르고 한참을 앉아서 마치 캔버스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다음 집에 와서 로스코의 그림을 검색했지요.
그런데 어라, 어라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낯선 세계와 만나게 되었는데요 그 다음부터는 화가의 일대기를 다룬 책들을
가능하면 찾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아이들과 더불어 수업을 하다보니 에너지가 많은 아이, 호기심이 많지만 실제로는 마음 먹은대로 밀고 나가지 못하는 아이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서 동시에 여러가지를 생각하느라 정작 눈앞에 해야 할 일에 주목하지 못하는 아이, 조금만 공부를 해도 머리가
아프거나 집중이 되지 않는다고 호소하는 아이, 실제로 능력이 부족한 아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기 보다 타인을 돕는 일에 관심이 많은 아이
주변이 보이지 않고 자기 것에만 전념하는 아이, 눈 앞에 주어진 것은 하지만 더 이상의 것은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아이, 정말
다양한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각각의 특색을 살리면서 선생이 보기에 조금 더 보완하고 싶은 부분을 어떻게 돕는가를 고민하면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 아이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기회를 주려고 하는 부분은 그림을 보는 일, 음악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일, 책과 만나게 하는 일등
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영어 선생이 왜 그런 것까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는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일종의 교양 시간이라고 하면서 보여주는 그림에 반응을 하곤 하지요.
실제로 대학생이 되어서 만나는 제자들은 오히려 그런 것들이 더 기억에 남고, 대학에 가서 친구들과 유럽 여행을 가면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깊은 감동을 받거나, 휙 둘러보고 나가는 친구들과 보조를 맞추고 싶지 않아서 조금 더 혼자서 보게 되는 경험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번의 여행에서는 시간을 들여서 미술관에서의 책 구입이외에도 서점 나들이를 여러 차례 하면서 귀한 책을 많이 구해 왔는데
돌려가면서 읽는 중에 아이들의 반응을 보는 것이 재미있네요.
작곡가 메시앙에 관한 책의 경우에는 아이들이 읽고 나서 제가 음반을 구해서 들은 다음, 돌려서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음악에 관한 글은 글자체도 좋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은 그 안에서 이야기하는 음악을 들어보는 일, 음악의 매력에 한 발 담그는 일이
더 소중하니까요.
이렇게 뿌리는 씨앗, 제가 하는 일은 뿌리는 단계까지, 그 다음에는 무엇으로 자랄지, 아니면 그냥 싹으로 그치고 말지
아무도 알 수 없지요. 그래도 씨를 뿌리는 그 행위자체가 중요한 경험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제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중학교 때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학교에 부임한 멋쟁이 여선생님이 있었지요. 그녀가 제게 관심을 갖고 다양한 책을 소개해주었는데
그 때 읽은 책들이 어떤 것은 한글이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난해하기도 했는데요 그 때 받은 충격으로 한글이라고 다 쉬운
것이 아니구나, 그런데 도대체 이 저자는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그렇게 놀라던 책을 어른이 되서 다시 만났습니다.
읽어보니 얼마나 재미있던지요!!
지금 생각하면 조금은 더 친절하게 책에 대한 가이드를 해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지만 그런 일종의 폭력적인 만남도
기억에 남아서 나중에 그것과 직접 다시 만나게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요즘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 모임을 할 때
혼자 읽기엔 조금 버겁다고 생각하는 책을 선택해서 함께 읽으면서 타인의 말에 귀기울이게 하고, 그것을 돌아가면서
상대가 한 이야기를 자신의 말로 옮겨보게 하는 등 저 나름대로 방법을 연구하게 됩니다.
역사상의 어떤 시기, 어떤 인물, 어떤 사건 이것을 통째로 이해하지 못해도 마음속에 축적되는 이미지가 성인이 되어서
어느 순간 자신의 안에서 불이 되어 타올라 에너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이것은 저 혼자만의 생각으로 끝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책과 영 친해지지 않던 보람이가 서서히 변하는 것을 보면서 길게 , 오랫동안 씨를 뿌리는 것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날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