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쓰고 나니 아니 마티스에서 칸딘스키가 맞는 표현 아닐까?
그림을 많이 본다면서 시대를 착각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네요.
그런데 이 제목은 사진기에 들어가 있는 그림 순으로 적어본 것이랍니다.
2일, 여행에서 돌아와서 아직도 26일 모마에서 본 그림을 놓고 뒤적이고 있는 중인데 벌써 1월의 마지막 날이 시작되고 있어서
마음속으로 흠칫 놀라는 중입니다. 어디로 시간이 흘러가 버린 것일까 유난히 올해는 더 빠르게 느끼는 것은 왜 그럴까?
어제 일인데요 함께 공부하는 노다윤이 말을 하더군요. 선생님 요즘 바이올린 연습 소홀히 하시는 것 아닌가요?
그래, 어떻게 알았니? 그렇지 않아도 스즈키 2권의 마지막 곡이 어려워서 이상하게 연습을 덜 하고 있던 중이라서 마음이
찜찜하던 참인데 기습을 받은 기분이었답니다.
그런데 밤에 통화할 일이 있어서 지혜나무님과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런데 선생님, 바이올린이랑 운동도 덜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아하 여기서도 한 방 하고 갑자기 마음에 빨간 불이 확 켜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바이올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카페에서 연습하기 싫으면 어떻게 하는가 질문을 한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흥미가 생겨서 클릭해보니 답장 중의 하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단 바이올린 케이스를 열어보라고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든 연습을 하게 된다는 의미겠지요?
그 말이 마음에 확 와 닿아서 저도 당장 시도해보았더니 언제 그랬는가 싶게 다시 연습이 가능하더라고요.
그러니 귀가 얇은 것이 늘 화근이기만 한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혼자 슬며시 웃음이 나오네요.
요즘 고민하고 있는 문제, 한 두 가지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갈 것인가, 지금처럼 관심이 생기는 것에 마음을 열고,이전부터 하던
것도 계속 해나가는 방식을 취할 것인가, 무자르듯 단 칼에 정하기 어려운 것은 마음이 한 번 움직이면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이 진정이
되어서 평상심을 유지할 때까지는 계속 쑤석이는 마음을 누르기가 어렵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서 요즘 건축에 관한 책을 찾아서
읽다보니 책이 책을 부르는 격이더라고요. 한 책에서 만난 사람이 혹은 책이 다른 것을 저절로 불러들이는
그것을 안다고 밥이 나오는가 떡이 나오는가
몰라도 살 수 있는 것을 왜 그렇게 애써서 알고자 하는가 질문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을 모르고도 별 지장없이 살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대상이 생긴다는 것은
사실은 상당히 축복받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일상이 그 날이 그 날같아서 괴롭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이 살아 올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마주침으로 인해서
가능한 것이었으니까요.
바이올린 케이스를 일단 열어보라는 충고에 마음이 움직이고 나서, 우리는 서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글을 통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모마에서 만난 이 방, 마티스가 여러 점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예상외로 작품이 많았고 간간히 놓인 조각까지
눈이 호강한 날이었습니다.
사진을 통해 누군가가 마티스의 새로운 그림과 조각에 눈 뜨고, 그로 인해 화집을 뒤적이거나 마티스에 관한 책 한 권으로
그림과의 만남을 시작하는 꿈을 꾸게 되는 것 역시, 바이올린 케이스를 일단 열고 보게 된 제 변화에서 촉발된
새로운 파동이라고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