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수요일 이후 시간이 모자란 것은 아니었지만 역시 설 휴가가 끼어서 그런지
악기에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레슨을 빼먹을 수도 없어서 고민하다가 아침에 연습을 시작했지요.
벌 받으러 가는 심정이라고 할까요?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부담감이 있어서 말입니다.
연습도중 갑자기 떠오른 말이 양치기였습니다.
양치기라니 그게 무슨 말일까 그 말을 맥락없이 들으면 아주 묘한 말이지만
고 3이 되는 사촌에게 보람이와 승태가 동시에 한 말이었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는 가능하면 집에 늦게 들어올 것, 이유는 집에서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우니까
그리고 특히 수학의 경우 질보다 양이 우선이라고 그래서 양치기라고 하더라고요.
양을 많이 늘이다 보면 어느 순간 수학 문제의 답이 보인다고요
그렇다면 다른 과목은?
사실은 입시에서 거의 모든 과목에 해당하는 말이지만 어려운 지문이 나와서 생각을 해야 하는 경우
양치기가 과연 맞는 방법인가는 예외라고
그러면서 고등학교 3학년때는 다른 생각말고 공부에 집중하라는 충고를 하는 장면에서 웃음이 저절로 터져나오던 시간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말해도 마음에 새기지 않던 아이들이 이제는 마치 자신들이 그렇게 살았던 것처럼?
아니면 뼈아픈 후회가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의젓하게 그렇게 충고하던 장면이라니!!
그렇다면 양치기의 법칙은 악기 연습에도 적용되는 것일까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역시 지나친 연습은 하기가 어려워서 잠깐 쉬러 방에 들어와서 음악을 틀어놓고 듣고 있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만으로는 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늘 갈등하는 구조가 되풀이되는 순간이네요.
금요일 역사 모임에서 반둥세대라는 제목으로 4장으로 이루어진 발제 준비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독립에 이르는 인도, 제 3 세계의 반둥회의, 그러니 이집트의 나세르,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여기에 이어서 이스라엘의 독립에 이르는 과정과 중동전쟁, 수에즈, 운하의 국유화를 둘러싼 싸움, 그리고 프랑스와 알제리의
전쟁에 이르기까지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한 번 읽어서는 무엇을 어떻게 짧은 시간안에 전달하면 좋을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다보니
역시 여기에도 양치기의 법칙이 적용이 되더라고요.
특히 인도의 경우는 이번에 3권의 책을 정독하면서 한 나라와 조금은 제대로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시각으로 씌여진 책을 읽는 일이 주는 충격과 그 이후에 갑자기 글이 확 들어오는 경험이 이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의 근거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양치기는 기본이지만 그것이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사료를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가는 양으로 해결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어서겠지요?
그래도 공부가 힘들다고 끙끙대거나 시작도 못하는 아이들에게는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지네요.
물론 연습에서 도망치고 싶거나 돌아와서 운동을 시작도 못하고 있는 제 자신에게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