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1월의 네번째 목요일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입니다. 대부분의 학교와 직장은 수요일부터 휴일로 들어가고요, 다수의 대학교는 아예 그 주 전체를 방학으로 쉬기도 합니다. 저희 학교도 그렇기 때문에 추수감사절 방학이 시작되는 주말은 제가 김장을 하는 날이 되어온지 어언 십 수 년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차멀미를 하는 아이들 때문에 - 멀미가 없더라도 왕복 여덟 시간 차를 타는 것이 힘들었죠 - 저는 집에 있고 남편만 혼자 배추 무를 사오곤 했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금요일 오후에 하교하고 집에 와서 자기들끼리 있을 수 있으니 남편과 제가 같이 장을 보러 갔어요.
배추 두 박스, 무 한 박스, 마늘, 소금, 고춧가루...
잔뜩 사와서 그날 밤에 당장 배추를 절였어요. 김장을 하루라도 더 빨리 끝내면 추수감사절 방학을 하루라도 더 즐길 수 있으니까요.
제가 배추를 절이는 방법은 큰 그릇에 아주 진한 소금물을 만들어서 사등분한 배추를 한 번 담궜다 건져서 차곡차곡 쌓아두는 방식입니다. 명왕성에는 김장비닐봉지가 없고, 거대한 고무 다라이도 없기 때문에 십 수년 간 해본 중에 가장 나은 방법이었어요.
아, 절임 배추는 당연하게도 없습니다 ㅠ.ㅠ
배추 두 박스를 소금물에 담궜다 건지는 작업을 했더니 제 피부가 혼문에서 방금 뛰쳐나온 듯한 상태가 되었어요 ㅎㅎㅎ
배추속에 넣는 무는 갈아서 넣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양념에 수분이 많아져서 버무리기가 편하고, 다 먹고 남은 김치통에 무채만 남아서 버리기는 아깝고 먹기는 싫은 애매한 상황을 방지할 수 있어서 좋더군요.
그 밖의 다른 부재료는 아주 기본만으로 넣었습니다. 황태 육수, 청각, 갈치, 생새우 같은 것은 명왕성에서 구할 수도 없거니와, 가장 주요 재료인 배추와 무가 정말 싱싱하고 맛있어서 기본 양념만 넣어도 될 것 같았어요.
갓과 부추는 잘게 썰어넣고, 마늘, 생강, 새우젓은 푸드프로세서에 갈아서 넣었습니다. 찹쌀풀과 멸치액젓도 넉넉하게 부었어요.
배추가 잘 절여졌고 배추소가 준비되었다면 이제는 버무릴 차례죠.
혼자서 조용히 하는 김장이라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기 보다는 매운 양념 냄새를 빼줄 팬 아래에 자리를 잡고 선채로 작업을 했습니다. 배추 두 박스, 그까이꺼 한 두어시간 서서 버무리니 금새 끝나더구만요. 앞정리 뒷정리 할 일도 없이 그냥 후다닥 해치웠습니다,
남편이 다 담은 통을 김치냉장고에 넣어주고 빈 통을 가져다주고 해서 작업이 더 빨리 끝나기도 했어요.
이만하면 보기에는 괜찮죠?
배추 두 박스를 김치로 만드니 김치 냉장고가 한 통 빼고 꽉 찼어요.
이걸로 일 년간 먹을 김치가 완성되었습니다.
아이구 뿌듯해라... ㅎㅎㅎ
완성된 김치를 맛보여 드리고 싶은 분들을 초대해서 수육을 함께 먹었어요.
돼지고기 대신에 올해는 쇠고기로 수육을 만들었는데 덜 뻑뻑해서 좋았어요.
김장 김치를 맛보는 것이 목적이니 다른 반찬은 생략하고 고기와 김치와 된장국으로만 차린 점심상이었습니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분들을 초대했는데, 빈손으로 안오시고 뭘 가져다 주셔서 제가 김장 김치를 나눠드린 게 아니라 교역을 한 셈이 되었죠.
(사진을 올리고 보니 제가 만들어 입은 추수감사절 칠면조 스웨터가 살짝 보이네요 ㅎㅎㅎ)
제 추수감사절 방학은 김장 말고도 중요한 연례 행사가 하나 더 있어요.
코난군의 생일 파티죠.
이 아이는 18년 전 추수감사절 당일에 태어났는데, 해마다 네번째 목요일이 바뀌니까 아이 생일은 추수감사절 전후가 되어요. 초딩일 때는 초대할 손님이 없어서 - 명절이라 할아버지댁에 가야 하니까요 - 우리 가족끼리 여행을 가곤 했는데, 청소년이 되고나니 초대할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어요. 다들 할머니댁에 갈 생각은 안하고 직접 운전해서 친구네 파티에 참석하려고 하니까요 ㅠ.ㅠ
과일을 먹게 좋게 썰어 담고 지름 1미터 핏자는 두 판 주문하고
잡채와 양념치킨 (케이 치킨 이라고들 해요 요즘 미국에서는요) 은 대용량으로 만들어서 오븐 안에 따뜻하게 보관하면서 먹을 만큼씩 꺼내 주었어요.
사진에 찍힌 아이들이 30명인데 몇 명은 이 사진을 찍기 전에 돌아갔고, 또 이보다 나중에 온 아이들도 있었답니다.
파티에 참석해서 최대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가기를 바라지만, 단 하나 지켜야 할 규칙이 있으니...
실내에서 신발벗기 란다... 하고 미리 초대할 때부터 알렸어요.
몇몇 아이들은 자고 갈거라서 침낭과 세면도구를 챙겨온 가방도 있었는데, 현관문 앞에 일회용 식탁보를 깔고 짐과 신을 두게 했습니다.
멀리서 온 손님들은 하룻밤 자고 다음날 아침과 점심을 먹고 돌아갔으니 생일 파티가 그야말로 24시간 지속되었던 거죠.
블랙프라이데이 쇼핑도 다녀오고, 늦잠도 좀 자고, 게으르고 즐겁게 며칠 지냈더니 이제 내일이 개학이네요.
일주일이 참 후딱 지나가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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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와 배에 루미와 똑같은 비밀 문양이 있는 자가 루미처럼 김밥을 통째 먹는 모습은 뽀나스~
ㅋㅋㅋ
둘리양 학교 행사를 위해 네 명의 학부모가 360개의 꼬마김밥을 만들었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