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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이벤트 응모>마지막 만찬

| 조회수 : 4,389 | 추천수 : 40
작성일 : 2006-10-26 16:13:59
저는 지금도 6년 전, 저의 시어머니와의 만남과 이별 전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결혼 전 저의 남편과 저의 데이트 장소는 종합병원 중환자실이었습니다. 퇴근하기 바쁘게 어머니가 누워계신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저 또한 퇴근과 동시에 병원으로 달려가곤 했었죠.
어머니의 병명은 뇌종양. 그것도 말기여서 수술도 못하는 처지였습니다. 그러니까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하시기 딱 두 달 전 우리는 친구의 소개로 만났습니다.
남들이 다가는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과 화려한 꽃과 선물 등, 저의 연애시대에는 사치적 산물에 불과했습니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저는 편찮으신 시어머님이 계신, 장손에게로 시집을 갔습니다.

어머니의 발병 직후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입원하시다 가망이 없다는 진단을 받고 시부모님은 지방으로 이사를 가셨고, 한적한 고향시골에서 사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결혼한 지 딱 1년이 되는 날, 어머니는 급기야 쓰러지셨습니다.
어머니의 소식에 회사근무를 팽개치고, 남편과 저는 부리나케 차를 몰아 어머니가 입원하신 종합병원으로 달렸습니다. 다행히 고비는 넘기셨지만, 어머니의 얼굴은 이미 마지막을 준비하시는 듯했습니다.
절실한 기독교인으로 신앙을 지키셨던 어머니는 깨질 듯한 통증이 엄습해 옴에도 오히려 우리 내외를 위로하셨습니다.
“오야,, 내 새끼들.. 힘든데 뭐 하러 내려왔니?” 어머니의 얼굴은 파리했지만 분명 눈빛이 살아있었고 온화함 그 자체였습니다.
회사에 전화를 해, 일주일의 휴가를 받고 시어머님의 병간호를 했습니다.
어머니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노래도 부르며 어머니의 쾌유를 빌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식사를 잘하시다가도, 어느 날은 아예 숟가락도 들지 못하시고.. 반복되는 살얼음 속에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떨었습니다.
휴가 마지막 날 아침, 어머니는 작은 냉장고를 정리하고 있는 나에게 손짓을 하셨습니다.
“아가야. 오늘은 기분이 영 좋다. 너가 간호해 주니까 기분도 좋고... 막 먹고도 싶고...”
“어머니, 뭐 드시고 싶으세요? 이제 금방 일어나실 거에요”
그날따라 어머니는 무척 건강해보이셨습니다. 일어나서 성경책도 읽으시고, 아침에 나온 음식도 다 드시고...
“아가야, 나 맛있는 것좀 해다오. 병원밥은 영 맛이 없어서. 코다리찜이 영 먹고 싶구나”
어머니의 부탁이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 길로 시장을 가서 코다리를 사다가 이것저것 넣어서 찜을 만들고 달걀찜과 콩나물도 덤으로 무쳤습니다.
반찬을 몇 가지 올리니 병원 밥상이 가득찼습니다. 어머니는 코다리찜을 드시면서 연신 ‘맛있다’고 하셨습니다.
“아가야, 이제 엄마 일어나겠다. 힘이 솟는 것 같다”
어머니는 정말 어느 때보다 식사를 잘 하셨습니다. 밤새 병상을 지키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던 나는 다음날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밤 늦은 기차를 탄 탓에 피곤했지만, 어머니가 일어나시리라는 희망을 안고 뿌듯했습니다.
새벽에 서울에 도착해 눈을 붙인 나는 뭔지 모를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
잠결에 시끄러운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형수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 같아요...흑흑흑..”
병간호를 교대했던 시동생의 울먹거리는 전화였습니다.
귀가 멍멍했습니다. 사방이 날 향해 윙윙거렸습니다.
남편과 나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 다시 광주에 내려갔습니다. 어머니는 산소호흡기에 의지하고 중환자실에 누워계셨는데, 의식은 없으셨습니다.
의사선생님은 우리 남편을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장례 준비 하셔야겠습니다...”
청천병력과도 같은 말...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만 것입니다.
바로 어제만 해도 그렇게 식사도 잘하시고, 웃어주시던 어머니는 누구였던가.
그날 제가 대접한 음식은 어머니를 향한 최후의 만찬이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가셨습니다. 우리가 도착하자 의식 없으신 어머니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장례식을 치르고 서울에 올라온 저는 꿈속에서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흰 옷을 입은 어머니는 절 향해 손짓을 하셨습니다.
가끔씩 코다리찜을 먹을 때면 어머니의 인자한 웃음과 언어가 생각납니다.
보고싶어요... 어머니~

3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연주
    '06.10.26 4:39 PM

    주은맘님과 시어머님의 따뜻한 맘이 전해지네요
    살아계셨다면 사랑 많이 받으셨을텐데...ㅜ.ㅠ

  • 2. 지원
    '06.10.26 4:55 PM

    마음이 짠~~하네요
    친정아버지 돌아가시기전에 친정에 한동안 있었을때가 생각나 눈물이 맺히네요
    참 마음이 고우신분 같습니다

  • 3. 루이*^^*
    '06.10.26 6:07 PM

    눈물이 핑 도네요.. 전 아버지를 작년에 보내드렸는데..
    만찬 너무 즐거우셨을거예요...
    부러워요..
    저도 좀 미리 알았으면 많은 경험을 더 즐겼을텐데..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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