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설거지를 끝낸 엄마가 기름때가 앉은 타파웨어 통에서 장미 무늬가 그려진 도자기 손잡이 티스푼으로
커피 , 프림 , 설탕 순으로 듬뿍듬뿍 담아 커피를 탄다 . 이가 빠져 보기 흉한 프랑스산 루미낙 잔에 .
익숙하고 여유롭게 커피를 들고 개수대 앞에 깔아 놓은 작은 러그에 쭈그려 앉아 싱크대에 기대어
진득한 커피를 한 모금 넘긴다 . 캬 ~
‘ 엄마 , 예쁜 잔에 타서 마셔 , 그리고 제발 식탁에 앉아서 마시면 안 돼 ?’
딸의 잔소리가 시작된다 .
‘ 나는 이 잔에 마셔야 제일 맛있더라 . 그리고 , 이 자리가 보일러 시작하는 자리라 진짜 따뜻해,
나는 이러고 마시는게 좋아!'
엄마도 지지 않고 대답한다 .
안성기 아저씨가 광고하는 맥심커피는 우아하던데 , 엄마가 마시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안 든다 .
‘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
세상의 많은 딸들이 다짐했다 .
치열하게 공부하고 , 대학을 가고 , 사회생활을 하고 , 한 번 뿐인 인생 시크하게 살 줄 알았던 꿈 많은 딸은
결혼을 하고 , 아이를 낳고 , 살림을 하게 되니 그 잘난 인생도 엄마의 인생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엄마가 마시던 믹스커피가 진저리나게 싫어서 커피를 좋아하지 않았다 .
하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카페인이 절실해졌다 .
오늘 설거지를 끝내고 주방을 윤이 나게 닦고 , 커피 한 잔을 들고 개수대 앞에 깔아놓은 푹신한 러그에 앉았다 .
( 아파트 개수대 밑에는 보일러 분배기가 있어 난방이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
따끈한 바닥에 앉아 향이 근사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몸이 노곤해 지면서 , 피로가 조금 풀린다 .
진주 목걸이를 하고 포근한 니트 가디건을 어깨에 걸치고 우아하게 폼나게 마시려고 비싼 커피잔도 샀다 .
커피 광고처럼 .... 인생은 광고가 아니고 실전이더라 .
그 예쁘고 좋은 잔도 이가 나가면 차마 버리질 못 하고 내가 마시게 되더라 . 그렇게 되더라 .
그 옛날에 엄마가 향유했던 잠깐의 시간을 이제는 내가 누린다 .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는 듯하지만 , 길게 보면 둥글게 순환한다 .
* 사진의 커피는 홈메이드 ‘ 더블 샷 소이 라떼 ’ 입니다 .
30 여 년 전 엄마들이나 현재를 살아가는 딸들이나 믹스커피냐 에스프레소냐의 차이지 , 그녀들이 받는 위로는 언제나 진득한 커피입니다 . -여기 사진 올리다가 혈압 올라요. 정상인 사진을 올려도 옆으로 나오고 , 옆으로 돌려서 올리면 또 그대로 나오고..아, 우리 애들 같아요, 말 안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