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 부추 부침개, 혹은 제 고향 말로는 정구지 찌짐 :-)
비오는 날에 부쳐먹어도 맛있고, 비가 안오는 날에도 맛있는 음식이죠.
제가 가끔 미국인 손님을 초대하면 전채요리로 해물 부추 부침개를 부치는데요, 열에 아홉은 다 맛있게들 먹어요.
그 중에 코난군의 태권도 사범님은 너무 맛있게 드신 나머지 집에 돌아가서 부인에게 똑같이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집에서 난생 처음 한 번 먹어본 음식을 어떻게 똑같이 재현할 수가 있겠어요?
제가 영어로 씨푸드 팬케익 이라고 알려드렸더니 글쎄 팬케익 믹스에다가 부추를 넣고 부쳤대요...
며칠 전에 코난군을 태권도장에 데려다주러 갔다가 사범님의 부인을 만나서 그 실패한 씨푸드 팬케익 이야기를 들었죠.
코난군의 태권도 사범님은 인근 고등학교 수학선생님이 본업인데, 취미로 시작해서 배우던 태권도장의 스승님이 갑자기 도장을 물려주시는 바람에 낮에는 수학을 가르치고 저녁에는 태권도를 가르치는 주경야경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해요.
아직 아이들도 어려서 큰 아이는 아직 유치원 다니고 둘째 아이는 돌도 채 안된지라, 부인을 도와서 애들 돌보는 일도 많을텐데, 거기서 끝이 아니라...
집에서 농장을 경영하고 계신다는군요.
소도 키우고 닭도 키우고...
딸 둘도 키우고...
태권도 제자도 키우고...
고등학생 수학 실력도 키우고...
그런데 그 와중에 그 부인은 한국음식을 직접 만들어볼 시도를 다 하시고...
제가 안쓰럽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한 마음에 (사범님 내외는 저보다 한참 어린 연배인지라), 다음에 부침개를 만들어 가져다주겠노라 했더니 그럼 자기네 농장에서 나오는 방사유정란과 바꿔먹자는 제안을 하더군요.
그냥 얻어먹어도 될텐데 그렇게 염치를 차리는 마음씨가 고와서, 부침개 만드는 방법까지 자세히 사진으로 찍어서 가르쳐 주기로 했어요.
키친토크에 아무리 글을 올리고 싶어도 도통 음식 사진이 안모여서 고심하던 제게 드디어 음식 사진이 생겼어요!
비록 너무 쉬운 음식 조리법이지만요 :-(
그래도 갓 살림 시작한 새댁이나 자취를 시작한지 얼마 안되신 분들께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사진 올라갑니다 :-)
부침가루와 물을 동량으로 넣고 섞어줍니다.
분량은 각기 2컵씩 입니다.
부침가루에 갖가지 양념이 이미 들어있으므로 다른 건 다 필요없어요.
하지만 보다 더 바삭바삭한 맛을 원하신다면 찹쌀가루를 조금 섞어도 되고 얼음물로 반죽을 하셔도 됩니다.
오늘의 요리는 왕초보를 위한 초간단 버전이므로 그러한 부수적인 비법과 재료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데헷~
부추는 은근히 준비하기 까다로운 야채입니다.
손에 작게 한 줌씩 쥐고 흐르는 물에 씻는데, 머리 쪽에는 마른 이파리가 말라 붙어있는 것을 제거하고 흙이 묻어있을 가능성이 있으니 뽀득뽀득 문질러서 씻어주고요, 중간과 아랫부분은 시든 이파리를 제거하는 정도로 대충 씻어도 됩니다.
부침가루 두 컵에 물 두 컵을 넣고 반죽을 만들었다면 부추의 양은 이만큼이 좋습니다.
크게 쥐어서 한 움큼
250 그램 정도 되네요.
해물은 좋아하는 그 어떤 것이라도 괜찮아요. - 아참, 굴은 수분이 너무 많아서 부침개에는 적합하지 않아요. 조개나 쭈꾸미 새우 오징어 정도가 좋을 듯 합니다.
명왕성 국제시장에는 삶아서 얼린 바지락 조갯살을 팔더군요.
100그램 잘게 썰어 넣었습니다.
부추의 강한 향을 순화시키고 싶다면 양배추 채를 넣으면 좋아요.
매콤한 청양고추를 넣어도 맛이 좋구요,
양파를 넣으면 달큰한 맛이 더해져서 좋아요.
저는 색깔이 고우라고 당근을 조금 채썰어 넣었어요.
부추는 칼로 썰어도 되지만 가위로 자르면 더욱 간편하더군요.
이 정도 혼합 구성이 가장 맛있는 부침개가 된다고 생각해요.
밀가루 반죽이 이보다 더 들어가면 너무 배부른 떡이 되고, 또 야채와 해물이 이보다 더 많이 들어가면 부칠 때 납작하고 예쁘게 부치기가 힘들어요.
자, 이제 반죽이 다 되었으니 후라이팬과 식용유를 꺼내놓고 부쳐봅시다.
후라이팬은 작을수록, 부침 뒤집개는 클수록, 뒤집을 때 편리합니다.
식용유는 넉넉히 두르고 팬이 달구어지면 반죽을 국자나 큰 스푼으로 떠서 넣습니다.
스푼을 모서리로 세워서 살살 눌러주면 반죽이 납작하게 후라이팬위에 잘 퍼지게 됩니다.
반죽이 얇게 잘 펼쳐졌으면 불을 중간 정도로 줄이고 윗쪽이 이정도 굳을 때까지 익힙니다.
성급하게 윗쪽이 다 굳지 않았는데도 뒤집다가는 부침개가 너덜너덜해지는 참사가 생기니 조심하세요.
뒤집어보니 마치맞게 잘 익었네요.
간장 소스를 원하신다면 간장, 식초를 같은 양으로 넣고, 설탕과 고춧가루는 원하는 만큼만 넣어 만들면 됩니다.
저는 간장과 식초는 1 테이블 스푼씩 넣고 설탕은 1/2 스푼, 고춧가루는 1/4 스푼씩 넣어서 만들었어요.
이렇게 폼나게 담아서 사진을 찍어놓고...
나머지 반죽을 모두 부쳐서 접시에 펼쳐 담은 후 냉동실에 넣어서 급속으로 식혔어요.
급냉 시켜 얼린 부침개를 이렇게 지퍼백에 담아서 내일 태권도장에 갖다 드리려구요.
먹고 싶을 때 한 장씩 꺼내서 후라이팬이나 토스트 오븐에 넣고 데우면 갓 부친 것처럼 맛있게 먹을 수 있어요.
자세한 과정은 사진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려두었어요.
태권도 사범님 부인이 참고하시라고요.
코난군에게 이 자격증을 수여함.
2017년 7월 2일.
엄마.
제가 가르치는 학생들이 대부분 유아교육과 유아특수교육을 함께 전공하고 있는데요,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한 자격시험과 논문 발표에 참석하면 가끔씩 흥미로운 최신 연구 결과를 접하게 되어요.
자폐 스펙트럼이나 지적 장애를 가지고 있는 아이들에게 기본 생활에 필요한 기술이나 학습을 위한 기본 기술을 가르치는 방법으로 most to least 혹은 least to most prompting 방법이 자주 활용되고 있어요.
이 교수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르치고자 하는 기술을 최대한 잘게 작은 단계로 쪼개어서 각 단계별로 교사가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내용은 아이의 연령과 장애에 따라 무척 다양한데, 알파벳 문자 읽기, 화장실에서 손씻기, 서바이벌 수영하기, 자기 이름 쓰기, 등등 아이가 생존하는데에 필요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당합니다.
암튼, 그런 연구의 과정과 결과물을 보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었는데, 손바느질이나 라면 끓이기 같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미리미리 잘 가르쳐놓아야 겠다는 거였어요.
알아두면 생존에 큰 도움이 되고, 어쩌면 엄마를 조금 편하게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장차 커서 대학교 기숙사에서 살게 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도록 하는 그런 몇 가지 일들을 가르치기로 했어요.
마침 코난군은 많이 자라서 발판이 없이도 부엌 조리대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신라면이니, 라면끓이기를 시도해보았어요.
자세한 단계별 태스크는 여기에 있지만
라면 한 개를 끓이는 데에도 무척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한답니다.
1. 알맞은 크기의 냄비 꺼내기
2. 적량의 물을 따르기
3. 쿡탑에 불켜기
4. 라면 봉지 열기
5. 스프 봉지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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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받침에 다 끓인 라면 냄비 놓기
마실 것을 따르기
그리고 마침내 라면을 먹기까지...
습관처럼 하는 일이지만,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는 알아야 하고 주의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한 단계 한 단계 꼼꼼히 배워서 꾸준히 수련하는 코난군 :-)
스프를 열기 전에 쉐킷쉐킷 해서 스프 가루가 허공에 날리지 않게 하는 법도 알고, 스프 봉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는 것도 스스로 깨쳤어요.
뜨겁고 매운 라면을 먹을 때는 차가운 우유를 마시는 것이 좋다는 것도 잘고, 냄비 받침 없이는 식탁 유리가 깨질 수 있다는 것도 알지만, 젓가락질은 아직도 에디슨 수준...이랍니다 ㅎㅎㅎ
젓가락질도 곧 깨우치게 되겠죠.
엄마의 감독 하에 열 번의 라면을 끓이던 날, 엄마로부터 혼자 라면 끓여도 되는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이게 뭐라고 저렇게 뿌듯해 하는지...
ㅋㅋㅋ
이제 제가 많이 바쁠 때나 한없이 게으름 부리고 싶을 때 이 녀석 끼니 걱정은 안해도 되게 생겼습니다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