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82쿡 식구여러분, 그동안 잘 지내..... 시기 힘드셨죠?
여름내내 무더위때문에 한참 고생했는데, 날이 좀 선선해서 살만하다 했더니
전국에서 들리는 지진 피해소식에 맘 편히 살 수가 없는 요즘이네요.
부디 더이상의 피해없이, 무사하고 평안하시기를 두손모아 기원합니다.
키톡에 추석 지낸 이야기가 올라올 법도 한데 다들 조용하신 것 같아서,
추석연휴에 특별한 일도, 수고한 일도 없는 솔이네집의 심심한 추석 소식 전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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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시댁은 기독교 집안인데다가, 재작년에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설이나 추석같은 큰 명절에도 제사없이 단촐하게 지내는 편이에요.
이번 추석은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하고 남편하고 상의했는데,
집근처에 취사가 가능한 공원에서 고기를 굽는 것에 뜻을 모았어요.
추석 전날, 시어머니께서 일산으로 오시고 저는 음식을 준비해서 공원에서 맛있게 점심을 먹었어요.
삼겹살, 장어, 북어찜, 잡곡밥, 파무침, 된장찌개, 깻잎장아찌, 김치, 라면, 밑반찬 등을 준비했죠.
장어는 후배녀석이 추석선물로 보내준 것인데, 두마리만 구워먹고 아껴두었다가
시어머니 맛 보시라고 공원에서 남은 장어를 구웠어요.
쫄깃하고 두툼해서 맛있다고 좋아하시더라구요. 덩달아 기분 좋아졌지요.
아들은 스마트폰 삼매경, 엄마는 왔다갔다 상차리고, 아빠는 고기굽는 흔한 풍경.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런 공원이 있으니까 좋네요.
시어머니께서도 야외에 나와서 고기를 구워먹으니까 참 좋다고 하셨어요.
돌아가신 아버님 이야기, 음식 준비하느라 수고했다는 이야기 등을 나누며
얼추 점심식사를 마무리하고 있는 와중이었는데....
갑자기 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어요!!!!!! 아놔!!!
큰 아이는 버너를 챙기고, 작은 아이는 음식물을 한쪽으로 모으고
엄마랑 아빠는 짐들을 가방에 챙기며 다들 최대한 빨리빨리 자리를 정리했어요.
들고온 짐을 챙겨서 차에 타고 한숨 돌리려는 순간! 해가 쨍!하고 비춥디다....
집으로 돌아와서 어머님이랑 과일도 먹고 차도 마시다가
어머님은 세시쯤 댁으로 돌아가신다고 일어나셨어요.
저번에 엄마가 주신 만병통치 버섯(사실은 안만병통치 버섯인 은이버섯^^)이랑
함께 넣고 끓여드시라고 대추랑 생강을 챙겨드리고, 선물받은 맛있는 사과랑
북어찜, 농약 안 친 대파랑 용돈도 가방에 넣어 드렸지요. ^^
어머니께서 떠나시니 다시 심심해진 저희 부부는 구일산시장으로 구경을 나갔어요.
명절 대목이라 과일집이랑 떡집, 전집, 족발집 등에 사람들이 북적이더라구요.
3일,13일,23일, 8일, 18일, 28일마다 열리는 5일장도 볼만 하답니다. ^^
이날 가장 손님이 많았던 전집.
아~ 나도 전 좋아하는데... 차례를 안 지내니 전 한조각을 못먹어봤답니다.
두번째로 손님이 많았던 떡집. 송편 1키로에 만원씩 하는 것 같았어요.
뜨끈뜨끈한 송편을 보기만 해도 배가 불러지는 느낌~~^^
추석날 아침에 가족이 오랜만에 조조영화를 한편 보고
친정부모님을 만나러 부지런히 서울로 갔지요.
엄마가 준비하신 음식은 다 맛있어요.
불고기에 죽순을 넣어서 함께 볶은 것이 그렇게 맛있더라구요.
엄마랑 함께 밥상을 차리는데, 엄마가 저한테 미안해하셨어요.
"엄마가 이번에는 너무 힘들어서 갈비찜도 못했어. 애들 좋아하는 게장도 못무치고..."
친정 밥상이 이런 적이 없었는데...그릇이 다 다르고 구색은 안맞아도,
소갈비찜이랑 해파리 냉채랑 양념게장 같은 것은 안빠졌었는데...
16년째 친정아버지 중풍 병수발하느라 힘든 울엄마...
이번엔 차례상 준비와 음식 준비가 좀 많이 힘드셨나봐요.
'미안하긴 엄마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해, 엄마.'
소갈비찜이랑 해파리 냉채랑 양념게장은 없어도,
불고기에 탕국, 잡채, 북어찜에 더덕무침, 나박김치, 고추조림, 깍두기 등
입에 쫙쫙 달라붙는 맛난 반찬들 뿐인데도,
식사하는 내내 엄마의 수고로움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일상.
아이들을 꼬드겨서 미뤄두었던 대청소를 하고.
(얘들아, 꾀안부리고 끝까지 청소를 끝내줘서 고마워~
정리할 게 넘 많아서 난 너희들이 도망가버릴줄 알았숴~^^)
집에 먹을 게 없길래 닭볶음탕을 한솥 끓여서 청소하느라 애쓴 남자 세명에게 먹이고
남편이랑 동네 단골 회집에서 물회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추석연휴를 정리합니다.
명절이 누구에게는 즐겁고, 누구에게는 괴롭겠지요.
누구에게는 기다려지는 날이고, 누구에게는 참기 힘든 날이 될 수도 있겠구요.
82식구님들, 추석. 잘 보내셨나요? ^^
혹시 추석에 일도 많이 하시고 스트레스 때문에 견디기 힘든 날들을 보내셨다면
그 시간의 딱 두배만큼 행복한 일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추석 전날 제사지내고, 추석 명절 쇠고, 추석 다음다음날 시아버지 생신 차린
사랑하는 내 여동생아, 부디 너도 그러길 바란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