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에 제가 사는 뉴저지에 큰 허리케인이 온 적이 있었어요.
그때 뉴욕, 뉴저지 일대가 허리케인으로 큰 타격을 입어 세계적으로 떠들석하게 뉴스에 났기 때문에 한국에 계신 분들도 기억하시는 분이 꽤 계실거에요.
밤새 부는 비바람에 유리창이 깨질까봐 무서워 덜덜 떨었는데 다행히 유리창이 깨지진 않았지만 전봇대가 다 쓰러져서는 온 동네가 다 정전이 되었어요.
집앞 전봇대가 쓰러져서 길가 나무에 불이 붙어 삽시간에 불이 번지는 광경을 두눈으로 보면서 911에 전화를 하고...
여기저기 전봇대가 쓰러지면서 스파크가 튀고, 전기줄에 빗물이 닿으면서 스파크가 팍팍 튀는 모습을 바라보는데 정말 무섭더라구요.
그래도 다행히 정전 외에 다른 피해 없이 아침을 맞았는데,
저희집 뒷뜰을 보니 큰 나무가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더군요.
나무가 이렇게 넘어질 정도였으니 바람의 세기가 얼마나 무서웠는지 짐작이 가시는지요.
이 나무가 집 쪽으로 쓰러졌더라면 저희집 데크와 주방쪽이 아주 박살이 났을뻔 했는데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었어요.
나무는 나무고, 일단 정전이 되니 문제가 보통 심각한게 아니었습니다.
이때가 늦가을이었는데 난방이 되질 않아 너무 추웠구요 모든게 불편했졌죠.
전화 안되죠, 인터넷 안되죠, 핸드폰 충전 안되죠, 냉장고 안되니 냉동실에 재료들이 서서히 녹아가죠,
차고 문도 안 열려서 차를 꺼낼수도 없죠, 해가 지고 밤이 되면 온통 암흑이죠..
온 세상이 암흑인 경험은 정말 공포 그 자체였어요.
뉴저지 대부분이 정전이었기에 집안에 설치해둔 경보장치(시큐리티 시스템)도 무용지물이라 도둑이나 강도가 난무했습니다.
특히 쇼핑몰들. 그곳들도 모두 정전이라 영업을 못했는데 시큐리티 시스템이 작동을 하지 않는 틈을 타 도둑들이 아주 물을 만난 셈이었죠.
거리에 신호등 모두가 전멸이라 경찰이 길을 모두 통제했어요.
큰길에 직진만 가능하고 좌회전과 우회전을 못하게 만들어 놨죠.
그래서 집을 지척에 두고도 멀리 멀리 돌아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네요.
수퍼마켓은 냉장, 냉동고가 모두 기능을 못하니 가지고 있던 물건을 전량 폐기하라는 명령이 떨어져서 수억대의 손해를 봤다고 합니다.
식당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냉장, 냉동했던 식재료를 전량 폐기하라는 명령이 있었기에 이때 손해를 견디지 못하고 망한 가게들도 많았답니다.
모든 회사, 학교가 일주일 넘게 클로즈였죠.
그 손해 또한 어마어마 했을거에요.
허리케인 예고를 듣고 제너레이터(자가 발전기)를 구입한 집들이 꽤 있더군요.
(저희는 이렇게 심각할거라 생각 못했기에 구입을 안했었지요.)
이 제너레이터는 기름(휘발유)으로 돌리는데 이때 주유소마다 기름통을 들고와 기름을 사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대단 했어요.
정전이 길어지면서 기름이 동이난 주유소가 생겨나고, 그나마 기름을 파는 주유소는 차 한대당 또는 한 사람당 파는 기름 양을 제한적으로 판매를 할 정도였어요.
주유소에 들어가 기름을 넣으려는 차의 줄이 어찌나 긴지..
그 모습을 보면서 오버스럽지만 전쟁이 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어요.
수퍼마켓에 물건을 사려고 해도 물건이 없고, 밤이면 온통 암흑이고, 춥고, 도둑이 기승을 부리고..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찔합니다.
철없는 아이들만 학교에 안간다고 좋아했는데 결국 수업일수가 모자라 여름방학을 늦게하는 결과가..ㅎㅎ
암튼, 그때 정전으로 저희집 냉장고도 비상이었죠.
냉동실에 재료들이 점점 녹아가고 있으니 다 버리게 생겼잖아요.
버리긴 너무 아깝다 보니 어쩝니까, 다 꺼내서 먹어야죠.
그때보니, 참..냉장고에 음식이 너무 많더군요.
이렇게나 쟁여 놓고 살았나 싶었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정전이어도 밥은 먹어야 하니 밥상을 차립니다.
전기 밥솥을 못 쓰니 밥은 냄비밥이구요,
냉동실에 있던 돼지고기를 구원하는 차원으로 김치를 넣고 김치찜을 했습니다.
고기가 많다보니 김치찜 양이 엄청났죠.
그래도 일단 이렇게 만들어 두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으니 커다란 찜솥으로 한솥 찜을 해두었습니다.
계란도 모두 삶아서 간장양념에 조렸습니다.
이게 가장 오래두고 먹을 수 있을거 같더라구요.
생선 있는것도 한끼에 다 구워버리고..
그래도 구워 놓으면 두고 먹을 수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으로 해놓은 음식이 옆에 산더미 입니다..ㅠㅠ
소세지는 챠콜로 불을 피워 다 구워버립니다.
구워 놓으면 오매가매 누군가가 먹겠지 라는 생각으로 구웠어요.
집에 빵도 많고, 쥬스도 많고, 과일도 많고...
냉동실에 또 떡은 왜이렇게 많은지..
떡볶이 떡에, 떡국 떡에..
인절미까지..
인절미도 후라이팬에 구웠어요.
콩고물 때문에 금방 상할까봐요.
떡갈비와 낙지도 녹아가길래 같이 넣고 전골처럼 만들었어요.
맛은 완전 불낙전골입니다.
등산용 램프를 키고 저녁을 먹습니다.
저희집 가스렌지는 정전이 되니 작동을 하지 않아 이렇게 브루스타로 연명을 하고 있구요.
그래도 전골은 맛나게 끓여졌어요.
생선살도 녹아 가길래 빵가루 입혀서 다 튀겨 버렸습니다.
튀긴 생선의 양이 지금 접시에 담긴게 다가 아니란건 짐작 하실겁니다.
냉동실에 생선살은 왜이렇게 쟁여 놨던 걸까요?
정말 해 놓은 음식은 주방에 쌓여 가는데 다들 아무데도 못가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다보니
배가 안고픈거에요.
저는 또 만든게 아까워서 식구들에 먹으라고 자꾸 강요를 하고..
지나고 생각하니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참 심각했어요.
그렇게 열흘이 넘도록 정전이 계속 되었어요.
집에 난방을 못한채 며칠이 지나니 집이 냉골이 되더라구요.밖이나 안이나 기온이 거의 비슷할 정도로요.
너무 추워서 차를 타고 시동을 켜서 히터를 틀어 몸을 녹일 정도였어요.
물을 냄비에 데워서 머리를 감고, 샤워는 엄두도 못내고요.
밤엔 너무 추워서 온 식구가 모두 스키복을 입고 잠을 잤네요. 모자에 장갑까지 끼고 잤답니다.
그러다 정전 12일째 되던 날 전기가 들어왔는데 그때의 그 감격이란..
온 식구가 너무 좋아서 소리를 지르면서 온 집을 뛰어다녔답니다.
그때 뿌리채 넘어진 나무는 사람을 사서 치웠지만 아직도 반쯤 쓰러진 나무는 그대로 있습니다.
이 사진은 요즘 저희집 뒷마당 입니다.
이른 아침이면 이렇게 사슴떼가 놀러오는 아주 평화로운 모습이죠.
요즘도 어쩌다 그때 생각이 날때면 전기를 맘껏 쓰고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새삼 느껴져요.
그리고 냉장고에 음식도 적당히 채울려고 노력합니다.
가끔씩 냉장고를 비워가면서 살 필요도 있겠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