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치 있잖아.” 대답하니,
H씨 “오래된 김장김치 말고”
나 “열무김치도 있는데 뭐 하러 또 담아요. 좀 있음 김장할 텐데…….”

H씨 아무 말이 없다.
나와 달리 입맛이 짧은 편인 H씨, 새 김치가 먹고 싶은 모양이다.
작년 김장김치도 아직 한통 넘게 남아 있고 여름에 담은 열무와 물김치도 아직 남아 있는데
새로 김치 담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두어 달 뒤엔 김장도 새로 할 텐데
지금 남아 있는 김치 다 먹기도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나도 더 말하지 않았다.
지겨울 만큼 내리던 가을 장맛비가 그치고
먼데 보이는 산자락과 하늘이 뽀얗게 올라가는 물안개로 이어져 하늘과 땅의 경계가 없던 어느날 오후,
‘배추와 무 다 물렀으면 안 되는데’ 걱정하며 텃밭에 갔다.
걱정했던 것 보다 배추와 무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배춧잎 뒷면에 묻은 흙 털어주고 무 좀 돋아주고 고구마 줄기를 꺾었다.
H씨 고추와 깻잎 갈무리 하는 동안 부지런히 고구마 줄기 꺾었다.
치렁치렁 얽히고설킨 고구마 줄기 들출 때마다 모기 떼 극성을 부렸지만 욕심껏 꺾었다.
반찬거리로 꺾을 때보다 두 배쯤 많은 고구마 줄거리를 손톱 밑이 까매지도록 까서 소금에 절였다.
풋고추, 붉은 고추도 잡히는 대로 한주먹 씻어 소금 뿌려 두었다.
고구마 줄기로 김치를 담을 거다.
김치냉장고에 묵은 김치 쟁여놓고 새로 김치 담는 건 ‘과하다 싶어’ 반대했지만,
요즘같이 채소 값 비쌀 때 더더욱 아니다 싶었지만
아침저녁 선선해지는 바람에 새김치 당기는 H씨 입맛도 이해된다.
나도 그러니까. 그래서 고구마줄기로 김치를 조금 담기로 했다. 밑반찬 준비하듯.
김치랄 것도 없는 양인데 그냥 고춧가루에 다진 마늘이나 넣고 액젓에 무칠까 하다가
‘그래도 김친데’ 하며 한 숟가락 쯤 나오게 밀가루 풀도 쑤고 양파도 갈고 생강가루도 넣어
다시마 우린 물에 양념을 갰다.
소금에 잰 고추는 아직 숨도 죽지 않았지만 물기는 좀 빠졌다.
이만하면 되겠다 싶어 물기 뺀 절인 고구마 줄기와 함께 양념에 넣고 잘 무쳤다.
아삭아삭 씹히는 고구마 줄기와 매운 양념 맛이 싱그럽다. 그런데 좀 짜다.
언제부턴가 냉장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양배추 반토막 얼른 썰어 넣었다.
하루쯤 지나면 간이 맞으리라. 며칠 지나면 고추도 익어 맛이 들 거다.
‘고구마줄기 김치’ 다른 김치처럼 오래 두고 먹을 순 없으나
김치거리 귀하고 비싸지는 장마철부터 가을까지 금방 담아 아쉬운 별미로 즐길 만한 음식이다.





*고구마줄기는 밤고구마, 물고구마, 호박고구마 종류에 따라 색이 다르다.
사진은 밤고구마줄기로 녹색이다. 줄기가 좀 질긴 편이라 음식할 때 껍질을 벗기는 게 좋다.
붉은 자주빛이 도는 물고구마는 상대적으로 연하다. 호박고구마 줄기는 안 먹어봐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