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했어요. 다들 이미 퇴사 했는데, 후배 한명은 업무 공백 때문에 신청 하고도
아직 퇴사를 못하고, 10월 말로 퇴사 일을 정해놓고 다니고 있답니다. 마음이 참
이쁜 아이죠... 집이 강원도인데, 부모님의 사랑을 담뿍 받고 자란 아이라 휴가 때
집에 내려갔다 오면 떡이며, 옥수수며 잔뜩 짊어지고 와 동료들 한테 나눠 주곤 했어요.

아직 희망 퇴직한 사실을 부모님께 말씀 드리지 못했대요. 퇴직 일정이 워낙 급하게
진행돼서... '넌 금방 새 직장 구할 수 있을테니, 이직 자리 정해지고 나서 부모님께
말씀드려'라고 이야기 했어요. 조만간 꼭 그렇게 될 것 같아서요.
이번엔 밤을직접 따서 잔뜩 보내셨다고, 이렇게 비닐 봉투에 넣어 갖고 왔네요.
빈틈 없이 싸온 솜씨만 봐도 참 야물딱진 아이라는 거 짐작이 가시죠?

밤이 너무 이쁘죠? 딸 먹을 거라고 이쁜 것들만 골라서 보내셨나봐요. 부모님 마음을
생각하니 도무지 홀라당 삶아서 먹지 못하겠더라구요.
그래서 밤조림 해서 다시 선물 했어요. 퇴직할 때까지 책상 앞에 두고, 속상할 때,
열 받을 때마다 하나씩 먹으라구요. 달달한 탄수화물이 피로에는 그만이잖아요.

밤조림은 참 쉬운데, 껍질 까는 게 일이에요. 그런데, 저 밤 까는데는 선수예요. ^^v
제사상에 올리는 건 쌓을 때 편하도록 넓게 과감히 도려내주고, 밤조림 할 때는
버리는 거 아까우니까 좁게 여러번 돌려서 깍아줘요. 그리고, 삶은 밤은 껍질을
벌려서 벗겨주는 느낌으로. 삶은 밤 까서 남 먹여주는 거 딥따 좋아하는데요, 결이
그대로 살아 있어 다들 감탄해요.ㅋ 제 앞에서 밤을 두동강 내서 숟가락으로 파 먹는
사람은 진짜 간 큰 사람이에요. 밤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500g 이에요. 이제 제대로 계량 함 해볼라냐구요? 흐흐, 그건 아니구요, 그냥 해봤어요.
깍아놓은 밤을 보면 일단 쌓고 보는 차례상 차리기 본능.
500g 밖에 안되는데도 까느라 죽는 줄 알았어요. 그래도 야구 보믄서 하니 지루하진
않더라구요.

펄펄 끓는 물을 부어 10분 정도 삶아줘요. 불순물이 올라오면서 물이 뿌얘져요.
야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프로야구 좋아하세요? 전 원년부터 베어스 광팬이거든요.
저희 외삼촌이 원년 오비 주전 선수셨어요. 그래서, 오비(두산 보다 오비 베어스가 더
친근하죠. ^^)가 서울에서 경기를 치르는 주말이면 저희 가족은 항상 김밥 싸서 잠실
구장에 갔답니다. 거의 빠짐없이 관람을 갔고, 야구 관람에서 빠지는 가족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은근한 따돌림을 당했어요. 다음 경기까지.
그런 거 있잖아요. '지난 주말 경기 때 우리 앞에 앉았던 아저씨 진짜 목소리 크지 않았냐?'
이럼서.

밤 애벌 삶는 동안 옆에서 물 50%, 올리고당 30%, 설탕 20% 비율로 넣어 조림물을
만들어 줘요. 젓지 말라고 하는데, 아, 성질 급한 저 막판에 쫌 저었다죠.
엄마를 산소에 모신 날, 외삼촌이 집에 와서 참 많이 우셨어요. 원래 외사촌 지간인데,
어렸을 때 한동안 같이 살아서 친남매 보다 더 우애가 돈독하셨거든요. 엄마 없이 자란
엄만 외삼촌의 어머니인 이모할머니를 더 좋아하셨어요.

한번 끓인 물을 버리고, 찬물로 깨끗이 씻어준 밤에 자작자작하게 잠길 만큼 조림물을
부어줘요. 밤조림의 관건은 '밤이 부서지지 않게'예요. 부서지면 밤도 엉망이 되지만
조림물이 탁해져서 외관상 안 좋거든요. 전 밤을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모셔다 놓고
조려줘요.
그런데, 울 외삼촌 진짜 웃겼다니까요. 화장실 휴지 걸이 위에 '아껴쓰자'라는 글이
붙어 있는 걸 보니 딱 누나라며 우시다가 참이슬을 쓱 보더니, '산'으로 바꿔 오라고. -_-
맥주도 오비 맥주 아님 안 마셔요. 지금도 그때도 다른 팀 코치로 계시는 중에도 두산에
대한 의리 만큼은 영원하신 거죠.

불도 밤이 지나치게 들썩이지 않을 만큼 중간 중간 조절 해주구요.

마지막에 물엿을 조금 넣어 저어줘요. 참 말갛게 잘 조려졌죠? 이쁜 후배 주려고 하니
밤 조림까지 이쁘네.

캬~ 진짜 깍아 놓은 밤톨 마냥 이쁜 것들. 밤톨 맞거든요.

뜨거울 때 유리병에 담아 주어요. 그리고, 엎어 놓으면 밀폐가 완전 딱 되어 안 상한대요.

밤 끓이는 동안 전복장의 완성을 위한 마지막 간장물 끓여주기. 간장게장이나 전복장
간장물 끓일 때 처음 말고는 거품을 걷어 주지 않아요. 불순물이 있을 리가 없구, 저 거품에
게나 전복 향이 배어 있을 것 같아서요. 고수님들, 저 잘하고 있는 거 맞나요?
걷어야 한다면 앞으로는 냉큼 걷을 게요. 홀라당 잘 걷어낼 자신은, 있습니다!

11마리를 담갔는데, 선물은 항상 홀수로 드려야 한다는 엄마 말씀이 생각나 먹어보질
못했어요. 9마리는 너무 단촐하잖아요. 엣지있게 11마리.
맛있겠죠? 그렇겠죠? 향은 아주 제대로던데.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사장님께 드렸는데... 흐흐흐흐. 글쎄 사장님이 저에게 더 큰 감동을.
우리 끼리 비밀로 하자고 하셔서 입은 간질 간질하지만 입 뚝! 사장님의 마음 씀씀이에
너무 감동해서 그저께 하루 종일 배실 배실 웃고 다녔다죠. 전복장이 맛있어야 할텐데..

하나는 하늘만큼 높은 사장님, 하나는 까마득한 후배한테 줄 선물인데, 참 조화롭지 않나요?
재료도 병도 다르지만, 같은 마음이 담겨 있어서 그래요. ^^

회사 식당에서 밥 먹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아요. 어렸을 때는 좋아했는데, 나이 들수록
아는 사람이 많아지니까 식판 들고 연신 인사하는 게 영... 그런데 딱 한가지, 너무 좋아하는
메뉴가 있답니다. 이름도 생소한 치킨 코돈 블루. 포털에 검색해 봐도 거의 정보가 없어요.
빕스 메뉴에 있다는 글이 얼마전 부터 등장하긴 하더라구요. (된다님 댓글 보고 코돈으로
찾아 보니 몹시 많군요. ^^; 그래도 이건 제 개발품 할래요. 흐흐. )
저, 요리하는 여자잖아요. 없음 해보면 되는 거죠! 레시피도 뭐도 없지만 걍 해볼랍니다.

두들겨서 편 후 여기저기 칼집을 내어 준 닭(전 느끼한 거 좋아해서 넙적다리 부위.)에
소금, 후추로 밑간한 후 전분을 솔솔 뿌려줘요.

슬라이스 햄 6장을 잘펴서 깔아주고, 치즈는 한두장 겹쳐서 올려준 후,

이렇게 감싸줘요. 처음엔 그냥 겹쳐서 놨는데, 치즈가 흘러 나오더라구요.
이렇게 하면 전~혀 안 흘러 나오고 이쁘게 자리 잡아요.


나머지 치킨을 겹쳐준 후 전분을 둘러 꼭꼭 눌러 주고, 돈까스 할때 처럼 전분 묻혀
계란물 입히고, 빵가루 입혀주면 끝. 꾹꾹 잘 눌러줘야 벌어지지 않아요.
완성 염장샷은 잠시 미뤄두고.

새우까스도 좋아하는데, 새우 다져서 함박스테이크 처럼 하는 건 영 때깔이 안나요.
그래서 새우를 큰 걸로 골라서 샀어요. 첨에 뉴*아 갔는데, 국물용 멸치랑 딱 친구해도
손색 없을 크기 밖에 없더라구요. 그래서 이마*까지 또 터벅 터벅 걸어 갔다죠.
일산 이마* 넘 싫어요. 싫은 이유 10가지 대라하면 당장이라도 댈 수 있어요. 하지만,
가야 하는 1가지 이유가 너무 커서, 실없는 사람 될까봐 안 댈래요. 가야하는 1가지 이유는...
회사에서 상품권 나올 때 꼭 신세* 상품권이 나온다는. -_-

새우는 손질해서 반을 갈라줘요. 그리고 소금과 후추로 밑간.
이렇게 계란물로 스파하고, 전분과 빵가루로 화장하고, 기름에 샤워할 때까지 얌전히 모양
잡고 있으면 얼마나 이쁠까요? 하지만 이미 죽은 새우가 제 소원 들어줄리 만무하고,
니가 해라, 모양 잡기.
마트에서 장보다 보면요, 꼭 뭐 하나가 맘에 안들거나, 없는 경우가 있어요. 늘상 그런 건
아니고, 어떤 날은 이마* 배추가 실하더니 어떤 날은 아예 없고, 홈플*스 장어가 싱싱해
사러 가면 그날 따라 바다 장어 밖에 없거나 하는. 주말 끝물에는 품절되는 것도 허다해요.
주메뉴 정하고, 머리 속에 장거리들 떠올리며 장바구니 카트 질질 끌고 갔다가 머 하나가
없어 정한 메뉴를 접어야 할때는 참 난감하죠. 무늬만 완벽주의자인 저, 기어이 다른 마트
가서 사고야 말지만, 밥 먹을 시간은 점점 요원해지기 마련이죠. 그래서 생각한 아이디어
인데요.

전분 묻혀 계란 물 입힌 후,

흐흐, 꾀 좀 내봤어요. 이렇게 살짝 익혀 새우전을 해주면 모양이 딱 잡힌답니다.
왜 콜 불러서 택시 타고 가다보면, 아저씨들이 서로 도로 상황 공유하잖아.
- 일산에서 여의도 들어가는데, 1번 도로랑 2번 도로, 어디가 좋은가요?
- 가양대교까지는 최고 속도 나는데, 가양대교 남단에 접촉 사고가 있어서 조금 밀려요.
뭐 이렇게. 장보기 정보도 그렇게 공유하면 어떨까요?
센터로 전화를 건다. '일산 뉴*아 아울렛 갈건데, 오늘 고등어 물이 좋은가요? 봉지굴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럼, 센터에서 회원들 중 일산 뉴*아에서 장보는 사람을 물색
한다. 둘이 연결해 준다. '고등어는 실하고 좋은데, 봉지굴은 생선 총각할테 물어 보니
다음 주에나 나올 것 같다네요' 이렇게 알려주는 거죠.
그냥 너른 일산에서 장보다가 장딴지 굵어질 것 같아 궁리 함 해봤어요. ㅋㅋ

계란을 너무 익히면 빵가루가 잘 안 붙으니까 모양이 잡힐 정도만 익힌 후, 이렇게 빵가루를
사정없이 입혀줘요. 모양 잡기 성공. ^^v (오늘은 '브이'가 난무 하네요. 그래도 소문자로
소극적인 자랑질이니까 쫌 봐주세요.)

새우 까스 성공~ 타르타르 소스 만들라켔는데, 피클이 없어 마요네즈에 마늘 다져 넣고,
케찹 조금 넣은 약식 소스로 대신.


그래도 새우살이 씹히는 게 너무 맛나요. 스테이크나 돈까스류는 썰 때 질감도 중요하잖아요.
다져서 만든 새우랑 비교가 안돼요. 칼질하는 재미가. ^^

저의 역작, 치킨 코든 블루 되시겠습니다. 소스는 역시 타르타르 소스를 만들지 못하여 그냥
머스터드 소스로. 이게 머냐구요? 그냥 치킨 까스랑 머가 다르냐구요?


내공이 남다르잖아요.
정말! 이거 너무 너무 맛있어요. 햄, 치즈, 치킨만 있음 그닥 어렵지도 않구요, 느끼 삼총사가
사이좋게 기름에 튀겨져 어우러진 맛이 얼마나 조화로운지!

아이들이 참 좋아할 것 같아요. 철딱서니 없는 제가 이렇게 좋아하는 거 보면. ㅋ
오늘 플레이오프 5차전, 정말 재미있겠죠? 두산이 꼭 이겨야 할텐데!! (SK팬 여러분 죄송.^^;)
휴가라(지난 주 이어 연짝 휴가네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꼭 일이 생겨요.) 마트에 다녀와야
겠어요. 통닭 튀겨 먹을까.
부관훼리님 글 보니 새벽 안개를 가르며 기차 타고 출근하는 것도 참 재밌겠다 싶더라구요.
힘들라나? 전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이 참 좋아서 회사 다니는 걸 즐기는 편이에요.
걸어서 5분 거리에서 출근하다가 일산으로 이사 오면서 좀 우울했는데, 셔틀을 타니 또다른
즐거움이 있답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녁 7시 경 일산으로 들어오는 길에 노을이 정말
숨이 막힐 만큼 아름다웠어요. 그런데, 해가 길어지니 온통 깜깜하다는. -_-
10월이 삼킨 내 즐거움 돌리도~ 3월이 토해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