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점심 식사 맛있게들 하셨는지요? 저는 밥, 국, 반찬이 한 상에 차려져서 말뜻 그대로였던 백반을 먹었습니다. 매운 소고기 무국이 잡곡밥과 함께 나왔는데 식은 국을 뜨게 되어 아쉬웠습니다. 몸이 찬 편이어서 그런지, 가을만 접어들어도 밥보다도 푸르르 끓는 국 쪽에 서게 됩니다. ^^
.....요쯤 쓰고 잠깐만, 하곤 하던 일로 돌아갔는데 그새 밤이 깊네요. 까무룩...
늦은 퇴근일 게 뻔해서 일찌감치 전화로 저녁은 알아서 먹으라 해 두었습니다. 김밥 두 줄 사서 우동하고 먹었답니다.
어제 남편이 포도 두 박스를 껴안고 들어왔습니다. 한 박스 사면 한 박스 더 주길래 그랬답니다. 끝물이면 어떠리 맛만 꿀물이다, 그런 표정 써 붙이고서 앉아 아이랑 같이 고개도 안 들고 포도를 먹고 있습니다. 그 곁에서 간단히 제 밥상을 차렸습니다.
아침 밥 남은 것하고, 냉장고 안을 보니 간당간당한 떠먹는 요거트가 있길래 그거 치울 요량으로 단감 반개 썰어서 끼얹어 샐러드, 매실 장아찌, 그리고 지난 추석에 받아 온 알타리 김치랑 오이 소박이 조금씩 덜어내는데...불현듯 김치 단상이........
지금이야 사는 게 이렇지만^^, 김치는 항상 담가서 먹었습니다. 갓 담근 김치는 남편이, 포옥 익은 김치는 저와 아이가 좋아해서 김치만큼은 쉬지도 않고 거르지도 않고 이어가며 먹었습니다.
그렇게, 저희에겐 그 좋은 김치가 하필 먹을거리, 그걸 맛깔나게 하는 솜씨, 그리고 먹음새를, 말하자면 본령으로 삼는 여기서 도마에 오르내리게 되다니, 아 정말 이 필수로 좋은 김치에 왜 어울리지 않는 불미스런 일인가 싶어 유감천만입니다.
수도를 열고 거품 내어 설거지 하는데도 또 생각나는겁니다. 축 처진 오늘의 나처럼 다들 사느라 먹고, 먹자고 살고 그러할 터인데, 왜 그 기본에다 대고 맑네 아니네 소리가 오가게 되었는지 흑백이 분명히 밝혀질 일이다....제 일도 아니거늘 불끈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먹을거리, 씻기, 깨끗함, 믿음, 돈, 가을, 10월.....
부엌 불끄기 전에 퍼질러 앉아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자니 이런 말들과 함께 떠오르는 게 있었습니다(전날 받은 전에 살던 곳 이웃이 보낸 카드 생각이 난 것이겠지만요). 제 부엌에서 나온 건 아니지만 업어온 사진이나마 보아주세요.
저는 크랜베리를 우리말로 넌출월귤이라 한다는 걸 몰랐습니다. 사실 미국 본토 음식이란 건 없어. 다 유럽이나 아시아에서 왔으니까 말야. 하는 소릴 자주 들었는데 그럴 때 대응으로 쓸 만한 답이 크랜베리라는 거, 그것도 이사 가서야 알았지요. 전 세계에서 크랜베리 많이 나기는 북미, 미국이 으뜸이라 하더군요. 따지자면 유럽에서 온 이주민들하고 토착 인디언들에게로 주인 이름은 돌아가야겠지만요.
어디서나 신기함을 자아내는 광경은 있기 마련인데요, 저는 크랜베리 수확이 그리 진기했습니다. 깜짝 놀랄 만큼 기발해 보였어요. 정말 신기했지요. 밑의 얘기 좀 읽으시고 그 아래에 제가 업어온 사진들 구경해 보세요. 저에게만 그런지요...
크랜베리는 9월에서 10월 말 사이, 그러니까 바로 지금 요때 수확하는데 그 모습이 일품 장관입니다. 습지에서 잘 자라는 성질을 이용했다는 것도 참 기발하고요. 방법인즉슨, 익은 넌출월귤을 손으로 일일이 따는 게 아니라 습지에서 잘 자라는 성질을 이용한 거죠. 낮은 곳에 크랜베리를 기르고, 때가 되면 과수원 전체에 물을 채워서 통째로 몽땅 잠기게 하는 겁니다.
이제 자연의 기발함^^이 끼어듭니다. 우리네 경운기 비슷하게 생긴 타작기로 크랜베리 가지를 쳐 주면, 제 몸 가운데가 비어 있는 크랜베리가 통, 통, 물 위로 떠오르는 겁니다. 그렇게 넌출월귤 강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럼 일꾼들이 저렇게 울타리를 치듯 열매를 한 곳으로 몰아갑니다. 그런 뒤엔 다시 기계로 바람과 수압을 이용하여 겉에 뭍은 지저분한 것들은 날리고 열매만 위로 아니면 옆으로 끌어 올립니다.















꼭대기의 사진에 보이는 저 둥실 뜬 넌출월귤들...자연이 만든 루비의 강 같고, '빨갛다'의 실현 같고...사진들을 워낙에 잘 찍어 두어서 더 극적인지도 모르지만, 보고 있으면 정말 감탄스러워집니다. 크랜베리를 준 자연도 기발하고, 이런 식으로 수확하는 생각을 해 낸 농부도 기발하고, 저리 얻은 크랜베리로 파이를 만들고 쥬스도 만들고, 사과와 버무려 내는 솜씨까지 정말 다들 한 기발합니다. 이 중에 어느 하나라도 덜 기발했다면 얼마나 아쉬울까...싶어질 만큼요.
아이고 이것 좀 썼다고 밤이 깊다 못해 꼴딱 넘어갔네요. 세수도 안 했는데...^^;;;
마무리 코스로 옛 분의, 하지만 전혀 뜻 바랜 데 없는 말씀을 내 볼까 합니다. 딱히 특정 대상이나 무엇을 지칭한다 생각하지 말고 의도 없이 읽어가다 보면 한줄 한줄이 와 닿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끄덕끄덕...하게 되고요.
저희들이 간사해지지 않도록 주인은 객을, 나는 남을, 그리고 내가 나를 잘 감독하면서 장도 서고, 살림도 돋보기하고 자유로 게시도 하고 그랬음 좋겠습니다. ^^
사람을 간사하게 만드는 것들
정약용, 다산논총
-사람이 반드시 간사한 것은 아니지만 간사한 짓이 일어나기는 쉽다.
첫째, 맡은 일이 작은데 재주가 넘치면 간사해진다.
둘째, 지위가 낮은데 지식이 높으면 간사해진다.
셋째, 수고한 것은 적은데 소득이 높으면 간사해진다.
넷째, 나는 제자리에 있는데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자주 바뀌면 간사해진다.
다섯째, 나를 감독하는 사람이 정직하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여섯째, 내 패거리가 아래에 많은데 윗사람이 외롭고 어리석으면 간사해진다.
일곱째,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나보다 약해서 내 잘못을 고발하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여덟째, 다 같이 법을 어겼는데도 서로 버티면서 고발하지 않으면 간사해진다.
아홉째, 염치를 모를 정도로 형벌이 가벼우면 간사해진다.
열째, 간사한 짓을 하지 않았는데 간사하다 하면 정말로 간사해진다.
*사진은 google.com에서 cranberry harvest, cranberry bog, cranberry cooking 같은 말들 넣고 검색한 뒤에 봐 가면서 일이삼등 순서대로 업어온 겁니다. 동영상도 있으니 활동사진^^으로 크랜베리 수확 장면을 보고 싶으신 분들은 구경해 보세요.
내셔널 지오그라픽-크랜베리 수확(짧은 영상)
유튜브-크랜베리 수확(긴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