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전까지는 향교에 가실때 갓을 쓰시고 지금도 논어 맹자를 따지신다.
아니 팔순을 넘기신 어르신들이 그렇듯이 전형적인 대한민국의 남자다.
남자는 하늘..여자는 땅.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큰일이나고.
아녀자에게 순하게 대하는것도 안되고
그저 남자는" 어험" 하면 모든것이 준비되는..
어머님은 그러한 아버님과 평생을 사셨으니..
어느날.. 그러셨다.
<내가 콧구멍이 두 개여서 살았지..하나였으면 아마 벌써 숨 막혀 죽었다고..>
그런데 시골 구석구석 꽃이 피어있는 작년 가을 아낙네에 천지가개벽할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시골 5일장..
시골 어르신들이 유일하게 빠지않고 치장하고 나들이가는 5일장.
그날도 어머님과 아버님은 장날 행차를 하시고
우리 부부는 들로 나갔을 때..
점심을 먹으려 집으로 들어와 한참 점심 준비하고 있는데
(아버님은 절대 밖에서 점심을 드시지않는다)
무겁게 양손에 시장을 봐 오신 아버님..
아버님은 시장을 잘 봐오시지 않으신데 뭘까하고 있는데..
굳이 꼽자면 당신 드실 담배와 커피정도인데..
거실 문이 열리고 까만 봉지에 담긴 뭉텅이를 내려 놓으신다.
<아버님 이게 무엇입니까>
(어,,그거 젊은가(경북은 며느리를 이렇게 부른다)좋아하는 꽃이다.)
<꽃?예..웬 꽃을 ...>무슨 날도 아니고..무슨 날이라고 꽃 사오실 분도 아니신데..
(니가 꽃을 좋아하여 거실에 사모으길래 생각이 나서 함 사 보았다)
(아직 꽃은 피지않았지만 이쁠란가 모르것다)
사실 시골에서는 굳이 꽃을 사지않아도 사방에 꽃인데 아낙은 이쁜꽃이 있으면
거실에 두고 싶어 하나 둘 모으다보니 아버님은 그러한 며느리를 눈여겨 보신것같다.
아직까지 우리 아버님 평생동안 가족들을 위하여 꽃을 사 보신적이 없다.
평생을 같이 산 어머님께도 시누이들에게도 아들에게도..
그런데 여우같지도않고 곰같은 며느리에게 꽃을 사 오신것이다.
어찌 천지가 개벽할 일이 아니냐..
우리 어머님은 또 뭐라고 하실까?
이걸 아버님이 사 오셨다고 하여야하나,,,
(그래도 당신이 아닌 며느리를 위하여 사 온
꽃을보고 어머님도 여자시니 어찌 샘이 나지 않으실까하는 걱정과..)
막상 어머님이 오셔서 아버님께서 꽃을 사오셨다고하니..
<사람이 맴(마음)이 바뀌면 죽는디...)이러신다.
봉지를 열어보니 꽃이라기보다 무슨 뿌리만 커다란게 두 개 있었다.
화분을 찾아 흙을 담고 물을 주어 심어 두었다.
지금까지 그냥 저냥 자라주길래 물만 가끔 주면서 무슨 꽃일까하고만 있던 차에..


그렇게 아버님이 팔십평생에 처음 사 오신 그 큰 뿌리가 오늘 이쁜 꽃을 피어냈다.
봉오리가 조금씩 올라올 때는 무슨 큰 새 주둥이 같더니만
오늘은 꽃잎을 벌리고는 나보란듯이 거실을 밝히고 있다.
모두 피고보니 큰 나팔같기도 하다.

아버님은 작년 가을에 당신이 큰 마음먹고 사 온 뿌리가 이쁜꽃을 피우니 연신 쳐다보신다.
(당신이 사 오셨기에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것이다. 아직 이런 예가 없었으니)
그 모습을 뵈노라니 시아버지와 며느리사이지만 어른들의 자식을 향한 마음을
조금 또 알아가면서 저녁밥상에는 아버님 좋아하시는 굴김치 한 접시 담아 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