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너무 너무 오랜만이네요.
마지막으로 글을 남긴게 작년 6월이니 거의 1년만에 인사를 드리게 되었군요.
반갑습니다. 그간 글을 쓰진 못했지만 방만한 살림살이에 대한 대리만족으로 종종 82의 음식사진들 보며 침흘리곤 했었어요.
한해간 언니주부로서의 일상은 거의 내던지다시피 하고 스쿠버 다이빙에 빠져 사느라 해먹은 음식들은 많이 없지만 사진 정리삼아 간만에 식단공개 나갑니다.
스물 여섯에서 일곱으로 넘어가던 겨울, 제주에서 체험 다이빙으로 스쿠버 다이빙의 세계에 입문해
오픈워터와 어드밴스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설렘과 떨림을 주체하지 못해 종종거리며 82에 글을 썼던게 작년 4월즈음인데
벌써 한 해가 지나 4월이네요.
당근밭의 수확이 한창이던 봄과
개양개비가 지천으로 피어나고 담벼락엔 장미넝쿨이 흐드러지던 초여름까지
제주를 옆동네 마실가듯 드나들며 하잠하고 또 하잠하는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서울에 올라와 잠깐 잠깐 밥해먹을 땐 간단하게 혼자서 먹었던 상차림이 대부분.
카레 덮밥에 초미역국.
찬은 열무김치와 장아찌가 다인 단촐한 아침.
마늘 많이 넣고 아스파라거스 구워서 올려줬지요.
오리 불고기 덮밥에 자투리 채소 넣고 오래 끓여 식힌 된장국.
양배추 적양파 샐러드에 무생채, 데친 케일잎.
사진이 흐릿해서 좀 아쉽지만 아몬드 올려 양배추로 샐러드 해먹으니 참 맛나더군요.
드레싱은 시판 땅콩 드레싱입니다;_; 드레싱 같은거 만들어 먹을 시간이 없었어요.
간만에 집에 왔으니 친구 불러 와인 한잔!
메뉴는 안심 스테이크였네요.
백화점 갔는데 디켄터 세일하길래 그만 충동구매를;_;
샐러드는 무난하게 어린잎과 방울 토마토.
고기 굽는 김에 그릴팬에 양송이와 대파, 아스파라거스 같이 구워주고요.
송고버섯 잘게 잘라 올리브유에 볶아서 같이 냈어요.
하지만 서울에서의 일상은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틈만 나면 제주로 내려가 다이빙을 했습니다.
수면 아래서 바라보는 하늘과, 낮은 파도 위로 내리쬐는 햇살.
사위를 감싸는 호흡소리, 얼굴을 간지럽히며 피어 오르는 버블.
수천의 자리돔이 유영하는 수중아치를 거쳐, 맨드라미 산호의 협곡을 지나고
유유히 조류와 같은 방향으로 일렁이는 백송을 마주하면
아득한 심연의 연속.
눈을 감으면 손에 닿을 듯한 수면 아래의 세계는 저를 정말 미친사람;_;처럼 만들었고
두 계절이 지나는 내내 저는 육지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 버린채 바닷가에서 살았습니다.
태풍이 쳐서 바다에 들어갈 수 없는 날에는
스쿠버 샵 부엌에서 제육볶음 만들어서
강사님들과 소주 한잔하고요.
다음날에도 파도가 잦아 들지 않으면 낙지볶음 만들어 막걸리 한 잔 하고요.
그래도 비가 그치지 않으면 소풍왔다 생각하고 김밥도 싸서
집에갈 생각일랑 접어 버리고 식구처럼 스쿠버 샵에서 지내며 맛난것들도 많이 만들어 먹었습지요.
그렇게 몇 달동안 200회에 가까운 로그가 쌓여 갔고 어느덧 믿을 수 없는 가을.
기온과 수온이 함께 떨어지는 11월이 왔을 때
몇 달을 함께 다이빙 했던 버디들과 눈 뜨면 밥 먹고 하루종일 다이빙만 하는 일정의 여행을 잡아 보홀에 다녀왔습니다.
통상적으로 10m가 넘어가는 다이빙을 할 때 체내에 누적되는 질소를 배출시키기 위해 5m 지점에서 안전정지라고 하는 질소배출 시간을 가지게 되는데
저는 다이빙을 하는 순간 중 가장 즐거울 때가 바로 이 안전정지를 하는 동안입니다.
수중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위험요소를 고려하고 그에 따라 메뉴얼에 맞는 다이빙만을 진행하지만 언제나 동반되는 긴장이 풀어지고
블루존에서 심해와 마주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그 순간 느낄 수 있는 평화로움은 세상 어느것과도 맞바꾸기 힘들죠.
발리카삭의 맑은 바다와 형형색색의 열대어들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어느 때보다 정적이면서 관능적인 바다를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200회 기념 다이빙.
비다이버 입장에서는 그깟 다이빙 횟수가 뭐가 대수냘 수도 있겠지만
하루에 많이 해봤자 3번 정도의 다이빙이 허락되고-그것도 날씨가 좋을 때에 한해서-주말마다 다이빙을 하러 바다를 찾는다 해도
한달에 20회를 채우기가 어려운게 현실이라 일반적으로 다이버들은 100회와 200회 다이브 로그를 꽤 큰 기념거리로 삼습니다.
보홀에서 다이빙을 진행할 때 마침 딱 200회째 다이빙에 맞는 날이 있어
저의 강사님들과 함께 동행한 팀들이 수중에서 현수막을 펼쳐 서프라이즈 파티를 해주었는데 그렇게 신나고 좋을수가 없었죠.
수중에서 희귀한 수중생물을 만나거나 날씨운이 맞아 떨어지는 걸 다이버들의 은어로 쌧복 있다고 표현하곤 하는데
저는 참 쌧복이 좋게도 플랜카드를 펼치는 순간 바라쿠다 떼와 거북이를 만나 정말 즐거운 200회 기념 파티를 하고 돌아왔죠.
그렇게 꿈만 같던 보홀에서의 투어가 끝나고
저는 어느새 마스터 다이버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픈워터, 어드밴스, 기나긴 레스큐 기간, 그리고 마스터 다이버.
멋도 모르고 마스크를 사고
제 전용 핀과
슈트를 마련하고
다이브 컴퓨터와
레귤레이터, BC를 차곡차곡 마련하는 동안 어떻게 파산하지 않고 꾸준히 다이빙을 할 수 있었는지 저도 의문이지만
정신을 차려 보니 만 1년도 안되는 동안 빼도박도 못하는 골수 다이버가 되어 있더군요.
스쿠버 다이빙에는 여러가지 매력이 있고 사람에 따라 각기 다른 매력에 빠져 다이빙에 매혹되지만
저번에도 여러번 이야기 했듯, 수면 아래의 세상이 물론 아름답지만 단지 물고기를 구경하고, 산호를 보는 것보다
수중에서 느끼는 그 막연한 감정, 무중력 상태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적막과 공포.
그리고 그 모든것들과 함께 찾아오는 고요가 좋았습니다.
하지만 물 속에서 자기 감정에 몰두 하면서 편안함을 느끼려면 무엇보다 스킬에 대한 연습이 많이 필요한데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다이빙을 하면서 여러번 벽에 부딫히고 또 그만큼 그 벽을 깨가며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것에도 큰 기쁨을 느꼈죠.
제대로 중성부력을 맞추고 편안하게 킥을 차고 바른 자세로 다이빙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레스큐 과정에서 버디의 불안을 보고 그 불안에 잠식 당하지 않으며 상대방에게 평정심을 나누어 줄 수 있는 단계가 되기까지는 참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공기가 고갈되어 가는 버디에게 괜찮다고 내가 호흡기를 나누어줄테니 당황하지 말라고 눈짓으로만 의사소통을 하고 감정을 전달할때는
이 응급상황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진심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 지금 당장 너에게 호흡기를 줄거라는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급상승 하는 초급 다이버에게 도움을 주거나 수면에서 파도에 겁을 먹은 사람을 끌고 배까지 갈 때도
나는 이 상황을 완벽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는 자기확신과 함께 상대방에게 반드시 도움을 줄것이라는 신뢰감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상황에서의 자신감과 자기확신은 단순한 자만심이나 자기과신이 아니라 수많은 실패와 연습을 통해 쌓여 나가는 스킬 그 다음의 것이었어요
뼛속까지 문과생에 운동 신경이라고는 제로, 물도 무서워하고 수영도 못하던 제가
과연 어디까지 배워볼 수 있을까 하는 갈증에 대한 해답으로 내린 것은 바로 강사 시험 이었습니다.
즐기기 위한 다이빙, 즉 레크레이션 다이빙 기준으로 최고 레벨은 마스터 다이버지만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로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내가 과연 그에 합당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2주간의 합숙훈련을 통해 IDC(강사개발코스)를 거치고 IE(강사시험)을 치게 되었죠.
(저 아니고 강사 후보생 동기들ㅋㅋ입니다. 잠이 부족한 평균연령 32.5세의 아쟈씨들.)
평균 수면 시간 4시간.
이론시험과 제한수역, 제한수역의 실습시험을 준비하는 IDC과정은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잠이 부족해 죽을것만 같았지만 즐겁고 또 새로웠습니다.
어떤 날은 아침 먹고 9시 좀 넘어서 들어가 수영장 폐장 시간인 밤 8시까지 물 속에서 시험 준비를 하고
또 어떤 날은 아직 차가운 바다에서 두시간이 꼬박 넘도록 덜덜 떨며 실습을 마치기도 했었죠.
이론시험에 약한 후보생분들을 위해 후보생들끼리 전문분야의 족집게 과외 선생님이 되어주기도 하고
기계치인 저를 위해 많은 상남자 후보생분들이 도움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피말리는 IDC 기간 동안
저 스스로의 발전 뿐만 아니라 좋은 강사란 어떤 것인가 하는 고민과 함께 많은 배움이 있었습니다.
처음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다른 후보생들과 인사하며 자기는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연유에서 강사 시험을 치게 되었는가 소개 하는 대목이 있는데
거기서 저는 영리강사가 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강사 시험을 통해 다이빙에 대해 더 배울것이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대답을 했었죠.
하지만 지나고 보니 참 부끄러운 대답인 것이
영리적인 목적이든 아니든 강사는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프로라면 그 나눔에 대해서 합당한 댓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일임은 물론이고
다이빙은 늘 버디와 함께 해야 하는 레포츠인데 과연 나 스스로만의 발전이 과연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한참 고민하기도 했었네요.
그리고 대망의 IE!!
시험 칠때는 사진 찍을 겨를이 없었기에 합격증서만 뙇!
함께 시험에 임한 강사 후보생 전원 합격이라는 영광에 정말 얼싸안고 기뻐하며 서로를 축하해 주고
강사시험이 끝난 시간부터 거하게 낮술을 마셨던게 아직 생생하네요.
강사가 되고 가장 좋았던 건 제가 정말 좋아하고 재미있어 하는 이 일을 제가 직접 가르치고 안내 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작년에만 벌써 주변사람들 여럿을 제가 배웠던 센터로 데려가 강습을 받게 했지만
이젠 안가도 돼!! 나한테 받아!! 진짜 재밌어 ㅠㅠ 한번만 해봐!! 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스쿠버 다이빙에 미쳐서
2013년 한해 동안 제주행 편도 비행기만 20회를 타고 총 183일에 이르는 기간 동안 제주에 머물며 200회가 훨씬 넘는 다이빙을 하고도 모자라
2월에 강사시험을 치고 3월에 첫 오픈워터 교육생을 배출하고 나타난 다이버 벚의 다이빙 일대기는 일단 여기까지입니다.
아직은 취미로 하는 강사이긴 하지만 좋은 강사가 되기 위해 되도록 정규적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마성의 영업으로 많은 다이버를 배출할 포부ㅋㅋ를 가지고 있지만 글쎄요.
저의 다이빙 여정은 과연 어디까지 일지 저도 궁금하네요.
그럼 다음에 또 다른 바다 이야기, 그리고 되도록 식단 공개도 함께 해서 찾아 뵐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