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늘 오랜만이라는 말로 인사를 드렸는데 이번엔 정말 오랜만이네요.
아마 다이빙 강사가 되었다는 글을 쓰고 그 뒤로 식단공개를 하지 않았던 것 같으니 만으로 3년만이네요.
그래도 그간 82는 자주 드나들며 틈틈이 올라오는 글들을 보았는데
마음을 갈무리할 시간이 줄어들고 일상에 많은 변화가 생기면서 글을 쓸 여유가 없었던 것 같네요.
2014년, 강사자격을 취득하고 강습에 재미를 들여가며 한해동안 원없이 다이빙을 했습니다.
첫 교육생, 첫 강습.
열정을 앞세운 실수도 있었고, 쓸데없는 사명감에 불탔던 스물여덟.
수많은 학생을 만나고 헤아릴 수 없는 손님들을 책임지고
수영장에서 바다에서, 제주에서 세계각지의 포인트에서 다이빙 하며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에 갑자기 엄마가 돌아가시고, 차마 다 쓸수 없는 지난한 한 해를 보냈고요.
서른이었던 작년에는 결혼을 해서 신혼여행도 다녀오고 그릇도 샀지요.(결혼의 목적)
몇년이나 지난 일상을 이제와서 어줍잖게 쓰는 이유는 지나간 시간들을 차마 정리하지 못해 괴로운 시간들을 추스르고
새로 산 그릇들도 얼른얼른 자랑을 해야 하기 때문이지요.
반갑습니다. 백년만의 식단공개입니다.
10월에 결혼해서, 남들처럼 결혼식날 출발하지 않고
11월 중순에 출발해 12월에 돌아오는 기나긴 신혼여행을 마친 뒤 12월 중순에 들어온 살림집은 텅텅.
살림살이 하나 준비해놓지 않고 떠난 뒤 돌아온건 끝나지 않는 쇼핑이었습니다.
제주에 집을 구한 덕에 몇주간 택배의 홍수.
식탁도 쇼파도 들어오는데 꽤 걸렸으니 이것도 나중에 찍은 사진인가봅니다.
원하는 가구를 사기도 힘들뿐더러 배송가능한 가구를 발굴,해내도 집으로 받는데는 기본 2주.
택배는 마음비워 놓고 1주면 도착합니다.
그리고 속속 도착하는 그릇들.
1차.
2차.
3차.
과연 몇차까지 왔을까요..
그릇이 채 오기도 전에 식탁부터 와서 있는 그릇으로만 차려본 첫 끼니.
무려 제주시!!에 있는 이마트까지 나가서 장을 봐왔습니다.
저희 동네는 시골이라 이마트까지 한시간이 걸려요. 한식 그릇이 없어 고기나 궈먹자 싶어 안심과 채끝 스테이크 준비.
파스타도 하고요.
조명도 없고, 테이블 매트도 없습니다. 피클도 시판 피클.
맛난던 채끝 등심.
1월 중순이 다 되어서야 책장이 와서 새벽까지 책장 정리도 하고요.
마구잡이로 집어넣고 마음대로 책장정리 완료. 소꿉놀이 좋아하는 덕에 새 살림 들이는 기간이 꽤 즐거웠습니다.
살림만 들인다고 밥을 해먹을 수 있는건 아니지요.
집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장을 보고, 재료를 다듬고
썰고 다지고,
볶고 끓여서
겨우겨우 이 알량한 밑반찬 몇개 만들어 낸 뒤, 설거지하고 또 그릇 정리해야 하는 일이지만. 새살림 꾸려 하니 재밌고 신이 나더군요:-)
오뎅 볶고, 멸치볶음하고. 달래장도 만들었습니다. 브로콜리 데쳐 반찬거리 삼고요.
시시때때로 쳐들어오는 손님 방어용으로 오뎅꼬치 몇개 만들어 놓고요.
손님치레로 매일매일 술자리가 끊이질 않아 겨우겨우 아침 차려 먹는 날이 부지기수.
된장찌개에 남은 김치찌개. 현미밥. 계란찜과 토마토 샐러드. 세화장에서 사온 서대구이. 멸치볶음, 오뎅볶음, 묵은 김치.
제주살면 겨울에 귤이랑 무는 안사도 된다고들 하죠.
물론 제주시에 사는 분들은 남 이야기겠지만 저희는 벌써 이 동네 주민으로 지낸지 햇수로 5년차에 이리저리 아는 분들도 많아 여기저기서 무가 솟아납니다.
심지어는 마당 건너편이 무 밭이라, 무 밭 주인 부부가 지나가다 필요하면 한개씩 빼당 먹으라,고도 하시고요.
얼마전에는 동네 청년회장님이 항에서 얻었다며 갑오징어 반박스를 던져주고 가셔서 손질 삼매경.
갑오징어 얻은 김에, 오삼불고기 하고 오뎅탕 끓였습니다.
겨울의 제주는 다이버에게 비수기라 적적하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한가롭게 보내는 맛이 있지요.
아직 그릇이 다 안와서 뭔가 엉성합니다. 밑반찬은 재탕.
다음날 아침. 현미밥에 소고기 미역국. 어제 남은 오삼 불고기. 고등어 굽고 두부 부치고 달래장도 꺼냈지요. 밑반찬은 있는걸로.
살림의 핵심은 어떻게 해야 재료를 안남기면서 티나게 재탕을 안하는가, 아니겠습니까.
어제 저녁에 오삼 불고기 하고 남은 돼지고기로 제육볶음 하고요.
아침에 먹은 미역국에 표고버섯 많이 넣어 표고버섯 미역국으로 재탄생, 먹고 남은 된장찌개에 달래장 하고 남은 달래 넣어 새로 끓인 것 같은 달래 된장찌개로 거듭났습니다.
한라산 한 병 곁들여주고요.
다음날 아침엔 강된장이 된 된장찌개 마지막으로 내고. 생선 한마리 굽고요.
생선 안좋아하는 스텝 먹으라고 소세지 부치고, 남은 계란물로는 계란말이 했습니다.
무가 남아 돌아 무채도 하고 양배추찜도 해서 맛있게 먹고 다같이 출근했지요. 하루종일 손님이 없어서 팽팽 놀았지만요:-/
넘쳐나는 무 처리할 요량으로 굴 두 봉다리 사와서 무 굴국 끓이고요.
소불고기도 재워놓고요.
굴이 남아서 굴 전도 했지요.
있는 반찬에 현미밥. 무 굴국, 소불고기, 굴전.
겨울무가 시원하고 달아서 국이 맛있게 잘 끓여져 뿌듯했던 저녁.
오랜만에 남편이랑 둘이서만 먹는 끼니:-) 집에 늘 손님이 끊이질 않아요.
남은 굴국에 저번에 얻었던 갑오징어 넣어서 시원한 갑오징어 무국으로 둔갑. 갈치 굽고 남은 불고기에 파김치, 무생채.
설날 선물로 소갈비가 들어와서 이 날 저녁은 소갈비찜.
무생채랑 시금치 나물도 새로 하고요.
맛있었는데 사진은 왜 이 모양 이 꼴인지.
소갈비찜하고, 감자채도 볶고 무채랑 시금치 나물까지 새로 해서 저녁 준비 하느라 바빴던 날입니다.
장에서 물미역을 사왔는데 초장에 찍어 먹으니 맛나더군요.
그리고 2차는 와인. 신혼여행 갔다와서 5키로는 찐것 같아요.
다음날 아침. 잘 지은 현미밥에 곰국. 역시 장에서 사온 백조기 꺼내 굽고요.
돌김도 새로 구워 냈습니다. 무생채, 파김치, 묵은지 덕에 겨울 잘 날 것 같아요.
눈이 너무 많이 내리는 날은 외출을 포기하고 집순이가 되기도 했습니다. 비수기에만 누릴수 있는 사치!
새로 사온 수선화 꽂아두고 칩거놀이.
옆동네 표선 들러서 드라이브도 하고요
맛난 빵집 가서 달다구리도 사왔습니다.
새로 산 컵도 개시해보고요.
어떤 날 저녁은 간단히 사먹고 들어와 2차로 집에서 감바스에 와인 마시기도 했지요.
옆동네 맛난 빵집에서 사온 바게뜨.
간단하게 만들 수 있지만 뚝딱하면 나오는건 아니죠.
새우 손질해서 밑간 해놓고 외출한 덕에 먹을 수 있었다는 걸 아조씨 손님들은 알까요 모를까요.
집에 드레싱용 좋은 올리브유 밖에 없어서 살짝 아까웠지만.
맛있게 잘 만들어져서 성황리에 판매된 감바스!
또 어떤 날은 손님 초대해 저녁도 먹었어요. 급하게 차리느라 제대로 된 사진은 없지만.
등갈비찜에 김치찜 만들고요. 냉동되어 있던 갑오징어 잘 해동해서 전도 구웠죠.
2차는 로얄 코펜하겐:^) 사진 찍기 애매한 분위기라 대충대충. 오늘 감바스에는 해동한 갑오징어를 넣어 보았습니다!
다음날 저녁 초대없이 온 손님은 재탕 메뉴:-p
된장찌개 새로 끓이고 반죽만 꺼내 전 한장 부쳐내고요. 남은 등갈비. 드디어 셋트로 산 밥그릇이 입고되어 속풀이 상을 차렸네요.
어떤 날은 혼자 와인. 남편은 영화보고 전 와인 마시며 다이어리 쓰는 시간이 제일 좋아요.
올리브유에 편마늘 살짝 볶다가 약한불에 크림소스 보글보글 끓을때쯤 명란 터뜨려 넣어주면 모든 안주에 잘 어울리는 크림명란소스!
샐러드 위에 뿌려 먹어도 맛있어요.
겨우 한달남짓 살림 살았는데 사진이 엄청 나네요.
앞으로 종종 식단공개와 제주살이 이야기 남길게요. 반가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