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때
아주 어렸을때
약주를 좋아하시지 않으시면
지금 나보다도 훨씬 젊으셨던 우리 아빠와
졸망졸망 어렸던 세남매가
함께 좋아하던 군것질이 있었습니다.
우리끼리
출출할 저녁무렵
"해먹자" 부스럭 부스럭 와그작 와그작
하면
엄마는 맛난 군것질을 포기하게 하기엔
2% 부족할만큼의 짜증을 내셨고
우린 아빠의 지원하에
부엌에서 꺼내온 빨간색 봉지라면을
봉지를 뜯지않고
터지지 않게 조심조심 발 뒷꿈치로 밟았습니다.
생라면을 부스러뜨릴 만큼 손힘이 없었거든요
살살
라면이 부서질만큼만 밟아야하는데
어쩌다 힘이 들어가면
봉지가 푹 터져서
옆구리로 라면이 삐져 나오고
엄마 한번 슬쩍 쳐다보고 얼른 부스러기를 후라이팬에 주워담곤 했습니다.
한 두세 봉지 그렇게 라면을 부셔서
후라이팬에 쏟아서는
아빠가 당시 최 첨단 주방도구였던
석유곤로에
석유심지를 쓱 옆으로 밀어 올리고
팔각 성냥을 탁 쳐서 성냥을 켜서 불을 붙였습니다.
석유냄새와 끄름냄새가 나며
곤로에 불이 올라오면
아빠는
라면이 들은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수저로 살살 볶아줍니다.
라면이 노릇해지며 고소한 냄새가 나면
회가 동한다고 하지요??
배속이 요동을 치고 입에 침이 고입니다.
아빠는 뜨거워진 후라이팬에 더 빨리 수저를 저으시다가
설탕을 꺼내 두세수저 휘둘러 넣으시고
다시 한번 라면을 젓습니다.
기름에 노릇해진 라면에 설탕이 녹아 붙으며
윤기가 자르르 해집니다.
석유곤로에 심지를 내려 불을 끄면
석유불냄새와 고소한 라면냄새 기름냄새 설탕의 달달한 냄새가 섞여
우리 세 남매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좀더 식을때까지 라면을 볶아서
깔아둔 신문지에 후라이팬채로
얹어주시면 급한 마음에 얼른 한수저 가져가서
입에 넣습니다.
침이 고였던 입에 뜨거운 라면이 닿으면
치직소리와 달콤한 맛이 동시에 느껴지고
고소함 행복함 아빠와 함께 저지른 말썽이 라면을 더 맛나게 해주었습니다.
이틋날이면 엄마는 잘 길들여둔 무쇠후라이팬이
설탕에 망가졌다고 속상해하셨지만
그거야 뭐 어른들 일이니 어린 나는 알수 없었고
빠듯한 살림에 헤픈 라면값도 절대 모를 일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내가 그때 우리 엄마 아빠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저는 그 불량스럽던 라면 맛을 잊지 못헤
가끔 코팅이 잘되 망가질 일이 없는
후라이팬에 발꿈치가 아닌 손으로 라면을 가볍게 부수어 볶아먹어봅니다.
먹을게 흔해서인지 아이들은 심드렁하고
옆지기는 칼로리 쎈 설탕범벅을 뭐하러 먹냐고 하지만
저는 라면을 볶을때마다 일곱살 아이가 되어 청년시절 아빠를 만납니다.
지난 일요일
한 프로에서 아빠가 라면을 튀겨 라면땅을 해먹는 모습을 보고
추억 한자락 풀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