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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토크

즐겁고 맛있는 우리집 밥상이야기

나도 좋아하는 라면땅 라면강정

| 조회수 : 9,794 | 추천수 : 2
작성일 : 2013-06-19 23:45:47

어렸을때  

아주 어렸을때

약주를 좋아하시지 않으시면

지금 나보다도 훨씬 젊으셨던 우리 아빠와

졸망졸망 어렸던 세남매가

함께 좋아하던 군것질이 있었습니다.

우리끼리

출출할 저녁무렵

"해먹자" 부스럭 부스럭 와그작 와그작

하면

엄마는 맛난 군것질을 포기하게 하기엔

2% 부족할만큼의 짜증을 내셨고

우린 아빠의 지원하에

부엌에서 꺼내온 빨간색 봉지라면을

봉지를 뜯지않고

터지지 않게 조심조심 발 뒷꿈치로 밟았습니다.

생라면을 부스러뜨릴 만큼 손힘이 없었거든요

살살

라면이 부서질만큼만 밟아야하는데

어쩌다 힘이 들어가면

봉지가 푹 터져서

옆구리로 라면이 삐져 나오고

엄마 한번 슬쩍 쳐다보고 얼른 부스러기를 후라이팬에 주워담곤 했습니다.

한 두세 봉지 그렇게 라면을 부셔서

후라이팬에 쏟아서는

아빠가 당시 최 첨단 주방도구였던

석유곤로에

석유심지를 쓱 옆으로 밀어 올리고

팔각 성냥을 탁 쳐서 성냥을 켜서 불을 붙였습니다.

석유냄새와 끄름냄새가 나며

곤로에 불이 올라오면

아빠는

라면이 들은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수저로 살살 볶아줍니다.

라면이 노릇해지며 고소한 냄새가 나면

회가 동한다고 하지요??

배속이 요동을 치고 입에 침이 고입니다.

아빠는 뜨거워진 후라이팬에 더 빨리 수저를 저으시다가

설탕을 꺼내 두세수저 휘둘러 넣으시고

다시 한번 라면을 젓습니다.

기름에 노릇해진 라면에 설탕이 녹아 붙으며

윤기가 자르르 해집니다.

석유곤로에 심지를 내려 불을 끄면

석유불냄새와 고소한 라면냄새 기름냄새 설탕의 달달한 냄새가 섞여

우리 세 남매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좀더 식을때까지 라면을 볶아서

깔아둔 신문지에 후라이팬채로

얹어주시면 급한 마음에 얼른 한수저 가져가서

입에 넣습니다.

침이 고였던 입에 뜨거운 라면이 닿으면

치직소리와 달콤한 맛이 동시에 느껴지고

고소함 행복함 아빠와 함께 저지른 말썽이 라면을 더 맛나게 해주었습니다.

이틋날이면 엄마는 잘 길들여둔 무쇠후라이팬이

설탕에 망가졌다고 속상해하셨지만

그거야 뭐 어른들 일이니 어린 나는 알수 없었고

빠듯한 살림에 헤픈 라면값도 절대 모를 일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내가 그때 우리 엄마 아빠보다 더 나이가 들어서도

저는 그 불량스럽던 라면 맛을 잊지 못헤

가끔 코팅이 잘되 망가질 일이 없는

후라이팬에 발꿈치가 아닌 손으로 라면을 가볍게 부수어 볶아먹어봅니다.

먹을게 흔해서인지 아이들은 심드렁하고

옆지기는 칼로리 쎈 설탕범벅을 뭐하러 먹냐고 하지만

저는 라면을 볶을때마다 일곱살 아이가 되어 청년시절 아빠를 만납니다.

지난 일요일

한 프로에서 아빠가 라면을 튀겨 라면땅을 해먹는 모습을 보고

추억 한자락 풀어보았습니다.

**라면땅이 완성되고는 정신줄을 놓았는지 먹기 바빠서
  완성샷 그런건 전혀 염두에 없었어요^^;;
  왠만큼 먹어치우고 제정신이 돌아와보니 그릇엔 부스러기뿐 ㅠㅠ
18 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 1. 필로소피아
    '13.6.20 12:01 AM

    진부령님 라면땅 이야기에 완전 감정이입되어 글을 읽다가

    "저는 라면을 볶을때마다 일곱살 아이가 되어 청년시절 아빠를 만납니다."

    이 구절에서 저도 모르게 콧날이 시큰해 지네요
    저도 어렸을때 라면땅 아빠가 해주셨는데,,,
    주말에 라면땅 해봐야겠네요
    아들녀석이 좋아 할까요? ㅎㅎ

  • 진부령
    '13.6.20 10:13 AM

    라면땅은 아빠가 해주시기로
    약속한 간식인가봐요 ^^

  • 2. 제닝
    '13.6.20 12:07 AM

    ㅎㅎㅎ 그 뜨거운 거 한수저 먹다가 입천장 홀라당..
    저랑 제 동생이 중딩 고딩 때 엄마 없을 때만 해먹던 간식..
    한번 해봐야겟어요.

  • 진부령
    '13.6.20 10:14 AM

    입천장 데고나면 그 느낌...

    그래도 또 까먹고 라면땅만 하면
    얼른 달려들었었어요 ㅋ

  • 3. 루루
    '13.6.20 12:57 AM

    아, 눈물나요. 청년아빠를 만난다는 부분 너무 좋습니다. 저도 얼마전 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이제는 모두 고인이 되신 부모님의 나이가 지금의 저 보다 젊다는 걸 알고는 눈물이 고이더라구요. ㅠㅠ 사람에게 추억이 없다면 얼마나 슬플까요 ㅠㅠ
    저는 저 라면땅 달지 않았던거 같아요 ㅎㅎㅎ

  • 진부령
    '13.6.20 10:15 AM

    설탕 듬뿍 달게할까
    담백한 고소함으로 할까
    지금도 설탕을 들었다 놨다 합니다

  • 4. 오후에
    '13.6.20 9:13 AM

    그렇죠. 라면땅...... 참 많은 이야기 거리를 가진 군것질입니다.

    삼일은 진부령 사일은 서울에.... 눈이 반짝거리게 만드는 소개글입니다.

  • 진부령
    '13.6.20 10:20 AM

    저는 지금 서울서 진부령을 향하는 길위에 있습니다
    서울 촌뜨기 우리 아이들에게 시골집을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탁월한선택이었는데 기름값이 장난이 아니네요

  • 5. 강혜경
    '13.6.20 1:58 PM

    청년의 아빠.....그랬어요

    저희는 워낙에 깡촌 시골이라서...라면도 귀했었구요
    이렇게 여름이 되어오고..
    장마비가 주륵주륵 내리때면...저도 곤로기름 냄새가 아련하니 떠오릅니다

    텃밭에....주렁주렁 달려있던 애호박을 따와서
    비오는 마루에 앉아서....마당에 내리는 비를 보며...지져먹던....애호박전

    정말 아무것도 안넣고.....밀가루에 설탕 쬐끔....넣어서 지져먹던
    그 달콤함........진부령님의 라면땅만큼이나...달콤함...추억이네요

    .....불도 안때는 동네(울엄마 표현으로)로
    가신지도 벌써....20년이 가까워 오는데도.....엊그제 일처럼~~~아련하네요~~

  • 진부령
    '13.6.20 11:26 PM

    저희집도 호박은 꼭 밀가루를 개서 부쳐먹어요
    내일은 마당에 호박하나 따다 설탕 쬐끔 넣고
    부쳐볼께요^^

  • 6. Xena
    '13.6.20 4:28 PM

    진부령님 닉 보고 로긴을 안 할 수가...ㅎㅎ
    그 최첨단 석유곤로 저도 생각납니다!!!
    저희 집에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저는 작동법은 몰랐네요. 심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거였군요...오호 신기...
    전 어릴 때 친구집에서 라면땅을 처음 먹어보고, 이렇게 맛있는 걸 우리 엄마는 왜 안해주실까 했었어요.
    친구집에선 튀겨서 설탕을 뿌려주더라구요. 집에 와서 막 해달라고 졸랐던 생각이 납니다.
    진부령님댁처럼 부셔서 볶아 먹으면 더욱 편하고 맛있겠네요. 먹기도 좋구요^^

  • 진부령
    '13.6.20 11:28 PM

    해보세요
    그 고소하고 달달하고 불량스러운맛 ㅋㅋ
    저는 가끔 국자에 설탕넣고 소다넣고 뽑기도 해먹어요

  • 7. 수수맘
    '13.6.20 6:38 PM

    어릴적 몇번 해먹어본 추억의 과자..다시 만들어먹어보고 싶네요.. 요즘 애들도 좋아할 듯.

  • 진부령
    '13.6.20 11:34 PM

    아이들이 좋아해서
    함께 해먹으면 두배로 맛있을꺼예요
    우리딸은 다이어트한다고
    라면땅 해먹는 엄마랑 안놀아줘요 ㅠ

  • 8. 브라이언
    '13.6.21 6:52 PM

    손으로 부수면 잘게 안부서지죠. 그래서 저는 망치로 살살...

    오븐에 구우면 골고루 바삭하고 고소하게 잘구워집니다. 오븐에 구워보세요.

  • 진부령
    '13.6.26 11:11 PM

    다음엔 오븐에 살짝 구워볼까요^^
    견과류랑 같이 구우면 좀 부티날꺼같은데...
    상상만으로도 기분좋은데요^^

  • 9. 초록좋아
    '13.6.23 2:53 PM

    군침돕니다. 라면 너무 좋아하는데 요즘 건강상 자제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회사라 강정은 못만들고 생라면이나 부숴먹어야겠어요 ㅠㅠ

  • 진부령
    '13.6.26 11:10 PM

    칼로리가 걱정되시면
    어차피 드시는 생라면
    넓적하게 반을 갈라 전자레인지에 30-40초정도 돌려보세요
    바삭하고 고소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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