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아침~
표고밥이 식탁에 올라왔습니다.
가을에 수확해서 말려 두었던 마지막 표고.
표고물을 우려내다가 밥을 앉혔다고 하는데
색이 참 이쁩니다.
양념장 얹어 비벼 먹다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시방 이게 아니잖어~
뭔가 푸릇한 것들이 땡기는 계절인디......
농장에 도착하자마자
취나물이 혹시 있나 싶어 찾아 나섰더니
이제 조금씩 나오는 중입니다.
마른줄기를 뽑아보니 뿌리에서 새싹이 나오는 중이고 해서
다시 흙속에 묻어 두었습니다.
아무래도 뱃속에서는 시퍼런것들이 땡기고
해서~ 이른 점심에 개울가의 산마늘잎과
온실에서 상추와 열무를 뜯어 왔습니다.
산마늘은 지난번 산불때 밭이 타면서
새싹들이 죄다 탔었는데
그래도 씩씩하게 자라주었습니다.
마님께서 장작불에 고기를 굽는 사이에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처음에는 산마늘쌈, 상추쌈, 열무쌈 이렇게 먹고
그담에는 산마늘이랑 상추쌈
상추쌈이랑 열무쌈
열무쌈이랑 산마늘쌈 이렇게 먹은 다음에
세가지를 한번에 섞어 먹어보고
고 다음에 제일 맛있는 조합으로 먹어야지......
그렇게 이리저리 섞어 먹다보니
아무렇게나 먹어도 죄다 맛있습니다.
산마늘(명이나물)은 작년에 심어두고 첨 먹어보는데
생각보다 맛이 참 괜찮습니다.
안주가 좋으니 소주 한잔 곁들이는데
대낮부터 일은 않고 술이냐는 마님의 핀잔이 이어집니다.
그려~? 나 오늘 일 안해~
사실 컨디션난조로 오전내 몸이 찌뿌둥해서
오후에는 쉬고 밤에 일을 하기로......
몇달만에 기타를 잡아보는지 모르겠습니다.
마침 주문한 기타줄도 오고 해서 끊어진 3번줄만 달랑 갈아끼우고는
고래고래 악을 써대며 지랄발광을 하는 사이에
마님께서 언제 찍었는지 사진을 찍어 두셨네요.
사진을 보니 저누무 허연 이마빡에 구두약이라도 칠할걸 싶습니다.ㅠㅠ
그렇게 발악을 하다 지쳐 잠든 사이에
마님은 별리의 슬픔을 나눌 기회도 없이
온다간다 말도없이 집으로......
오후 다섯시쯤 되어 전지한 밤나무들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지고 어스름한 저녁이 찾아옵니다.
산채에 돌아와보니 문득 눈에 띄는 단호박씨앗~
어느 정신 낫자루빠진 양반이
저거 심어서 단호박 많이 열리면 자기네 보내달라고......
귀신 씨나락까먹는 소리하구있어~
이게 양이 얼만데 내가 뭐 단호박대리농사 짓는 놈이냐~?
모종 50개 내고 50개정도 파종하고
나머지 사진의 봉투안에 든것들은 달구들 몫으로......
닭장에 불을 켜니
눈치빠른 녀석들은 횟대에서 내려와 쪼르르 달려옵니다.
한밤중에 이게 웬떡이냐 하고 먹는 사이에도
대부분의 녀석들은 잠에 취했는지 눈말 멀뚱멀뚱~
여주(쓴오이)며 옥수수 모종을 내고
천막 주변의 나뭇가지들을 정리하고나니 밤 열시.
출출한 감이 들어 아궁이에 불피우고 또 괴기에 소주한잔~
또 열무랑 상추 뜯어오고
돌미나리랑 산마늘은 뜯으러 가기 싫어 포기......
몇점 먹다보니 에이~
남은 고기는 개들 입에 한점씩 한점씩 넣어주며 환심도 사고......
심심하니 또 맥주한잔 하면서 고성방가를 하다보니
아랫집에서 들으면
'아~ 저놈 또 날궂이 하는구나~' 할까 싶습니다.
에라이~ 잠이나 자자~
(맨 아래 사진은 순무우 꽃인데 참 예쁘죠?
청아함이 저희 마님을 닮았습니다. 제눈에 안경이라고......)
온실 한켠에서는 상추와 무우가 이쁘게 자라는 중입니다.
지난번 불에 탔던 표고재배장에도
새로운 식구들의 배치가 완료되었습니다.
원래 500본 정도 접종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종목들이 불에 타는 바람에 간신히 300본정도 접종에 그쳤고
그나마도 불에 그을린 것들까지 사용을 했습니다.
거기서 아예 구운 표고가 나오면 지대루인디~
불길에도 살아남은 표고목에서는
그래도 표고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몇개 따서 입안에 넣으니 역쉬~
입안가득한 표고향과 더불어 혀를 감싸는 감칠맛~
잠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농산물마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흐르는 와중에
진짜 농산물의 맛은 잊혀져 가는지도 모른다는......
이제부터라도 생산자도 소비자도 모두가
인류와 자연이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현명한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겠다 싶은 생각도 듭니다.
오늘은 장작패는 일 말고 이쁜짓좀 해야것다 맘을 먹고
지난번 불에 탔던 개울가를 정리해서
마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나물심을 자리를 부지런히 만들고
마님이 기쁜 마음으로 맛난 아침을 하사해 주시기를 기대했는데......
아침대신에 하사하신 단문의 문자메세지~
'나 지금 못가~'
산채를 이잡듯 뒤져 간신히 컵라면 하나 찾아 아점을 해결하고
거의 아사직전에 적진에서 구출되듯 돌아온 저녁~
너무 배가고파 젓가락을 잡은 손이 떨립니다. ㅠㅠ
그런데...... 또 고기......
"아휴~ 이 고기는 뭐 이리 맛이없냐~?" 라는 투정에
"그래~?" 라는 짧은 답변의 말씀에 이어 잠시후......
다시 후라이팬에 김장김치 넣고 휘휘저어 식탁에 올린 아까 그 고기......
살짝 염색만 시켰네요.
참~ 마님은 재주도 좋으시지......
이젠 질린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