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많고 바쁘니까 결론부터...
저...
문재인 후보를 지지합니다.
아, 키톡인데 왜 정치 얘기냐구요?
그쵸,
키톡이니까 음식 해야죠.
제가 누굽니까?
저의 요구르트 아트를 잊으셨나요?
저, 이런 거 만들던 여잡니다.
떠먹는 요구르트에 메이플 시럽으로 그림을 그리던 그런 녀자.
나란 녀자,
응용과 적용을 잘하는... 그런 녀자....
그래서 이번에는 단호박 스프를 끓였어요.
장식은 생크림으로...
요구르트 아트처럼 했더니 약간 촌스러운 삘이;;;;
근데 좀 더 연습하니까...
나름 섹시한 하트가 나오더라구요.
여러분,
제가 누구라고요?
yeah!
필체가 별로지만 좀 더 연습해서...
완 to the 성!
이 사진의 저작권을 유권자 여러분에 양도합니다.
카페, 블로그, 트위터에 펌질 무한 환영!!!
(근데 양심상 출처는 쫌... 응?)
단호박 스프 위에
생크림과 이쑤시개로
한 땀 한 땀...
단호박 스프에 생크림이 확실하죠?^^
믿지 못하실 분들을 위한 확인 컷!
하나 더!
학생인권조례의 정신을 이어가실...
서울교육감 이수호 후보를 지지합니다.
대선과 함께 서울교육감, 경남도지사 선거에도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사실, 오늘...
저 혼자 간직하고 있던 추억 하나를 꺼내려고 해요.
이제는 이 이야기를 해도 될 때가 온 것 같아서요.
동네 근처에 종종 가는 김밥집이 있어요.
대단한 맛집은 아니어도
들고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그런 곳
이 집의 대표 메뉴 계란김밥
(계란김밥 4천원, 우동 3천원)
보다시피 특별할 게 없어요.
소박하다 못해 허술한 느낌마저 들죠?
주문 받는대로
철판 위에 계란 세 개를 탁 깨서 즉석에서 돌돌 말아주는데
먹을 때 따끈한 느낌도 좋고,
귀퉁이에 있는 무짱아찌와 함께 먹으면 그게 별미거든요.
근데
이 집의 진짜 매력은 영업시간에 있답니다.
오전 6시 30분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이 정도면 24시간 영업에 가깝죠?
(일요일 휴일)
게다가 여기 우동이 휴게소 우동 느낌이라 좋아요.
저...
휴게소 우동 먹으려고 만남의 광장 가는... 그런 녀자...
제가 첫 아이 임신 했을 때 '공복이 곧 비상 사태'라서
늦은 밤에 여기저기 많이 다녔는데
진순자 김밥도 그중에 하나였어요.
여긴 아무 때나 가도 되잖아요.
늦어서 안 된다는 말 따위는 통하지 않음ㅋ
요즘은 예전만큼 자주 가진 않지만
출출한 밤에 여길 가면 된다는 생각에 든든하죠.
마치 구석 어딘가 꿍쳐둔 비상금처럼...
근데 갑자기 웬 김밥 얘기냐고요?
거짓말 같았던 2009년 5월 23일
TV 화면을 멍하게 바라보던 그 날
밝고 화려한 연등 때문에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그 날
아이가 어려서 조계사로 조문 간 거 말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더라구요.
TV를 보면서 울거나 분노하거나...
고작,
겨우...
그러고 있는데
언니에게 밤 늦게 전화가 왔어요.
"82 자게에서 보니까 자원봉사자들 먹을 게 부족하다던데... 우리 뭐라도 사가지고 갈까?"
그 때 생각난 게 이 김밥집이었어요.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도울 수가 없어서
마음이라도 전하자 싶었죠.
그래서 언니를 기다리면서...
이런 메시지를 담았어요.
도시락 20개를 들고 대한문에 갔는데,
언론에서 물어뜯던 노무현 대통령이
거기... 그렇게... 있더군요.
그의 죽음을 서거라 부르지 않는 언론
너무 옹졸해서 웃음이 났어요.
이봐, 그건... 너무 후지잖아...
그렇게 후진 사람들이 기득권이라고 행세하는 이 시대가 정말 너무 후지다...
상황실이라고 해도 천막 하나에
지휘부도 없고 오가는 시민들이 봉사를 자처하면서 바쁘게 오가는데
도시락 봉지를 든 저만 다른 세계에 있는 것처럼 다시 멍... 한 느낌...
마치 영화 세트장에 혼자 남겨진 그런 느낌
그 때 어떤 중년의 남성 분이 다가오셔서 가까스로 말을 했어요.
"이거 자원봉사자 분들이랑 나눠 드세요"하고...
언니와 '그나마 이거라도 해서 좀 낫다' 고 얘기하긴 했지만
그 뒤로 가슴 한 구석은 늘 빚진 기분이었어요.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는 세상"
노 대통령 말처럼 그런 세상을 꼭 만들고 싶었어요.
저는 아이 엄마니까요...
바보 노무현,
잘가요...
남은 세상은, 우리가 어떻게든 해볼게요.
함께 도시락 배달을 했던 아이가
조문하는 엄마를 보며
"대체 무슨 일이야?" 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가...
이렇게 훌쩍 자라서
벌써 유치원에 다녀요.
그 사이에 동생도 보고 아주 의젓한 형아가 됐어요.
MB정부 지난 5년.
많은 후퇴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제일은 먹거리 안전에 관한 후퇴였습니다.
2007년 결렬됐던 미국 소고기 수입 조건 협상이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기간 중인 2008년 4월 18일에 타결됐고
그로써 30개월 이상의 소뿐만 아니라
30개월 미만 소의 뇌, 머리뼈, 척수 등 광우병 위험 물질(SRM)이 포함된 사실상 전면 개방이었습니다.
그는 귀국 직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소고기를 먹는 우리 국민들이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을 수 있게 됐다"고...
촛불을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저는 임신 8개월의 임산부였습니다.
시위에 나가니까 무슨 거대한 뜻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 줄 아시는데,
저의 배후는 '모정'입니다.
"안 사 먹으면 그만 아니냐?"
이렇게 말씀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런데
수입이 결정되서 물량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먹고 싶지 않아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소고기 원산지 따위쯤 속여 팔 수도 있고,
소고기가 베이스로 들어가는 냉면 육수
아이들이 먹는 과자 시즈닝에도 소고기 농축액이 양념으로 들어가고
젤리 중에는 소고기 젤라틴을 사용하는 제품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북악산에 올라 '아침이슬'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던 대통령이
광화문 한복판에 '명박산성'이라고 불리는 컨테이너 담을 쌓고
불안한 먹거리 수입을 막아달라는 유모차 부대도 수사 대상에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일본 원전 사고 이후에 해산물에 대한 안전도 불안해졌습니다.
당시에 정부가 제시한 대비는 "편서풍"이 전부였고
최악의 상황에서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는지
국민들이 사전에 어떤 대비를 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국가 지도자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일본의 방사능이 넘어오는 것이 아니니 걱정할 필요없다.
인터넷에 나오는 유언비어는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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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후퇴도 뺴놓을 수가 없죠.
2011년 겨울,
한미 FTA가 비공개 날치기로 처리되자
지상파 9시 뉴스에서 앞으로 미국산 식료품 값이 크게 내려 장바구니 부담을 덜게 됐다며
"9900원짜리 체리가 7900원이 된다"는 리포팅을 내놓았습니다.
재협상으로 경제주권 팔아넘긴 한미 FTA에 사람들이 분노했고,
비준무효를 외치며 거리로 나선 시민들에게 살수차와 물대포로 응답했습니다.
TV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시작한 한미 FTA, 이명박 대통령이 마무리 하겠습니다."라는...
금도를 넘은 광고 카피가 흘러나왔습니다.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권력이 낙점한 낙하산 사장은 공영 방송을 훼손했고,
저항하는 언론인들은 해고와 정직, 대기발령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사상 최대, 최장기 언론사 파업과 징계 받은 언론인의 숫자가 이 시대 언론을 말합니다.
공정 방송을 기다리는 시청자로서 이들에게 작은 위로를 건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삼계탕 밥차를 제안했고, 그렇게 모은 성금이 3,500만원이 되었죠.
MBC 구성원들이 파업을 하고, 시민들이 모금 운동을 해도
김재철 사장은 여전히 MBC에 버티고 있습니다.
여당의 반대로 무산된 해임안만 수 차례...
저는 두렵습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뉴스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사실이...
부끄럽습니다.
권력의 비호가 있으면 어떤 잘못을 해도 무사하다는 사실이...
아이들에게 이런 선례를 남기게 될까봐
두렵고 부끄럽습니다.
무관용이 불러 온 용산 참사
지도자의 철학이라는 건
케이크 위에 얹어진 체리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크게 소용은 없지만, 케이크를 꾸미는데 필요한... 생색내기 같은 거...
그런데,
돈과 경제를 제일 가치로 내세운 지도자를 만나니 많은 것들이 변하더군요.
'양심'이나 '가치'는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치부되고
양심 대신 '돈'을, 정의 대신 '권력'을 이야기하는 것이 능력있는 사람처럼 되어버렸어요.
양심과 정의는 성공에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
그것을 쫒는 사람을 바보로 여기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리기 시작하더군요.
뭐든 돈과 연결시키니
대학을 사기업화하고, 취업이 안 되는 인문학과를 없애는 일도 일어났죠.
수도, 의료 민영화도 물밑 작업중인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이 의료 민영화입니다.
얼마 전에 둘째가 감기라서 병원에 갔는데 3일치 약값으로 2,400원 냈어요.
병원비로는 2천원 정도 냈죠.
옷은 물려 입히면 되고,
다른 것도 어떻게 조달 가능한데,
줄일 수 없는 게 병원비잖아요.
민영화라도 되서 보험자 부담금까지 내야 된다고 생각하면
아이 키우는 입장에서 정말 너무 부담스럽습니다.
미국 사는 지인들이 아파도 병원 못가고 끙끙대다가 한국 오면 치료 받는다고 미루는 걸 보면...
복잡한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착잡합니다.
가치와 철학의 중요성에 대해 절절히 깨달은 5년이었습니다.
소통의 부재에 절망한 5년,
사익을 위해 공익을 팔아 넘긴 지도자에게 치가 떨린 5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뒤를 잇기 위해 나온 사람이
'Dictator's Daughter'
할 말이 없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이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자유롭고 싶다며 모든 공직에서 물러났던 그가,
정치 때문에 30년 지기를 잃은 그가,
대선 후보로 우리 앞에 섰습니다.
인권 변호사와 청와대 민정 수석을 지낸 문재인.
그는 성공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특권을 누려도 될 기득권입니다.
그런데
그는 남 위에 군림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눈에 눈물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함께 가자"며 다리가 불편한 친구를 들쳐 업었던 '고등학생' 문재인,
유신 독재정부 박정희, 전두환과 맞서다가 유치장에서 사법 시헙 합격 소식을 들은 '고시생' 문재인,
친구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상대편 젊은이의 실수로 접촉사고가 나자
"사회 초년생인데 이해하고 넘어가자"며 친구에게 조용히 훈수 두던 '인생 선배' 문재인,
사업 실패로 실의에 빠진 친구에게 고시 공부를 권하며 2년간 묵묵히 뒷바라지를 했던 '친구' 문재인,
"중요한 일이 생겨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어린아이의 사진 촬영에 먼저 응했던 '사람' 문재인.
인권 변호사로 보낸 30년...
언제나 사람이 먼저인 인간 문재인
이웃을 위해 함께 사랑을 나누고 노력하는 그를 지지합니다.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사람입니다.
말은 쉽지만 행동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가 걸어 온 길로 미래를 가늠해봅니다.
공권력을 쥐어야 하는 사람일 수 록 그렇습니다.
저는 그가 걸어 온 길을 믿습니다.
또 앞으로 문재인이 걸어갈 길을 지지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운명을 받아들인
문재인이 출격합니다.
2012년 12월 19일,
새로운 대한민국을 꿈꾸는 사람들이 화답할 차례입니다.
기회와 과정이 공정한 세상,
꼭 만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