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지갑에 동전을 넣다보니...다른 곳은 멀쩡한데, 동전넣는 부분의 바닥에 구멍이 나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들어오지는 않고 하도 나갈 곳만 생겨서,
검정 지갑, 빨강 지갑 다 놔두고, 돈이 잘 붙는다는 초록색 지갑을 꺼내썼던 것인데...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한 채 구멍이 난거죠.
지갑을 바꿔야지 바꿔야지 벼르기만 하다가...며칠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목요일...
머릿속이 하도 복잡하고, 집에 있자니 벼라별 생각이 다 들어서, 기분전환차 골라놓은 디지탈 카메라를 사러간다는 후배를 따라 나섰습니다.
그 후배, 디지탈 카메라 사고, 전 나무로 된 길다란 구두주걱과 통후추, 이과수커피를 샀죠.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거리의 마술사를 만났는데..참 솜씨가 대단하더이다.
버스 정류소에서 지갑을 꺼내, 지갑안에 들어있던 교통카드 겸용 신용카드를 꺼내서 손에 꼭 쥐고, 핸드백 지퍼는 닫았습니다.
버스가 오기에 올라타는데, 순간 사람들이 좀 저를 미는 것 같다는 느낌과 뭔가 제 근처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고, 뒤에서 타려던 사람이 타지 않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버스의 계단, 딱 두계단 올라섰는데, 핸드백이 가뿐한 것 같아서 들여다보니, 핸드백 지퍼는 열려있고, 지갑이 없었습니다.
"어머 내 지갑..."했더니,
근처에 있던 아저씨들이, "아, 타지 않고 바로 내린 사람이 소매치기였다 보다"고 하네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직 출발하지 않은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제가 탄 버스가 출발하는 걸 보고 가려고 기다리던 후배는 영문을 몰라 눈이 휘둥그레지고...
"지갑, 소매치기 당한 것 같아..."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서, 있는 대로 카드 분실신고를 내고...통장분실 신고도 하고...
그리고 나니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그 소매치기 말야...재수 없다고 할꺼야... 지갑은 그렇게 묵직하고 두툼한데..어쩜 그리 들은게 없냐고.."
지갑에 돈이 딱 1만5천원이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부터 돈을 찾아야지 찾아야지 하면, 왜 그리 은행가기 싫던지...
현금 1만5천원, 백화점 상품권 1만원권 3장, 그리고 신용카드 4장, 포인트 카드 3장, 할인쿠폰 몇장, 저금통장, 집근처 주유소의 주유카드...
지갑 자체가 무겁고 두껍고 커서 돈 많이 들은 걸로 보여 찍은 것 같은데... 생긴 건 멀쩡한 여자가 가진 건 왜 이리 없냐고 욕했을 지 모르죠. ^^;;
후배는 자기 때문이라며..속상해하는데..그게 왜 후배 탓인가요? 제 탓이고, 제 운수지....
그래도 손에 꼭 쥐고 있던 카드가 신용카드도 되고, 현금인출도 되고, 교통카드도 되는 거라, 그걸 꼭 쥐고 돌아왔습니다.
오는 길에 동사무소에 들러 재발급 신청을 내려고 하니, 사진이 없어서 안된다는 거에요.
6개월내에 찍은 사진이어야 된다며...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는데...집앞 지하철역에 있는 즉석촬영기 생각이 나대요.
5천원을 넣고, 촬영을 하는데, 경험이 없는 탓인지, 아니면 얼이 빠져서 그랬는지, 아니면 너무 생소한 기계라 작동법을 몰라 당황한 건지...
암튼 버튼을 잘못눌러서, 사진을 잘못 찍었어요. 여백이 전혀 없는 아주 이상한 얼굴로...
그걸 들고 동사무소에 갔더니, 동사무소 직원이 너무 기가 막힌 지...다음엔 거기서 찍지 말고, 보건원 앞이나 구청앞의 사진관에 가서 찍으라고 가르쳐주네요. 요즘 사진관에서 증명사진 찍어도 20분이면 나온다고...
그리곤 집으로 왔는데..집으로 오긴 왔는데..제가 걸어왔는지, 뛰어왔는지, 발이 땅에 닿았었는지 기억나지 않고 아득하기만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머리 손질에 화장까지 하고,
구청 앞 사진관에서 1만2천원 주고 반명함판 사진 다시 찍어서, 운전면허시험장에 가서 면허증을 새로 받았습니다.
운전면허시험장에 가니까...면허증, 금방 해주대요. 새 면허증 틀어쥐고, 은행에 가서 통장 새로 발급받고...대충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나중에 소매치기 당한 소식 전해들은 우리 친정아버지, 허허 웃으시며..
"니가 돈 있어 보이나부다, 몇년전에도 같은 곳에서 소매치기 당하더니..."
2002년 겨울에도 딱 같은 장소에서, 그것도 버스에서 내리다가 소매치기 당했거든요.
그때는 백을 찢고 가져갔는데...당시에도 돈은 2~3만원 밖에 없었는데...지갑이 무지 아까웠어요. 선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명품지갑...
돈이 있어 보여서 소매치기를 당한 건지, 아니면 반쯤 얼빠진 모습을 다녀서 소매치기를 당한건지는 알수 없지만...
아무튼 구멍난 지갑 잘 없어졌다,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4월은 참 잃은 것이 많은 달이었습니다.
이제는 더 잃고 싶지않아서...아니 새로운 씨를 뿌리는 기분으로...오늘 싹채소 재배기랑 씨 몇가지 사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제 맘에도 새싹을 틔우고....싹채소도 잘 발아하기를 빌며...